초보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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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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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드디어 차를 샀다. 차를 샀지만 걱정이 되었다. 50을 넘긴 나이에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결론은 ‘잘 할 수 있다’이다. 홍희보다 9살이 많은 언니도 55세쯤 운전을 배워 혼자서도 고속도로도 다니고 야간운전도 잘 해내고 있다. 그러나 홍희는 자신이 혼자서 운전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차를 혼자 운전하기보다는 차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분을 본 적이 있었는데 홍희도 같은 심정이었다. 괜히 샀나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점점 늦어질 것이고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이었다. 무섭고 힘들더라도 시작을 해야 했다. 혼자서 엄마에게 빠른 시간에 가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남편에게 도움을 받았다. 막걸리와 북어, 실 한 타래를 사서 간소한 의식까지 치른 그날부터 작은 사고가 났다. 자주 가던 칼국수 집에 천천히 가고 있었다. 좁은 길이었다. 홍희는 첫 날부터 차량 통행이 많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은 홍희가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인양 망설이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맞은 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그 차가 옆으로 난 길로 비켜주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올 것 같아 홍희는 쌩하고 달렸다. 그 순간 오른 쪽에 멈춰 있던 차 사이드미러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사이드 미러는 깨진 곳은 없었고 휙 돌아가 있었다. 반대편으로 돌리니 돌아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차 주인이 오더니 자동으로 접혀졌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수리를 해야 한다며 홍희 전화번호를 물었다. 남편은 자동차보험회사에 연락했고, 1시간을 기다려 보험회사 직원이 와서 정리를 했다. 45만원 수리비가 들었다고 연락이 왔다. 의욕이 꺾였지만 다음 주 다시 운전연습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노선버스가 홍희 차 사이드미러를 살짝 부딪쳐갔다. 버스가 차 가까이 올 때 부딪칠 것 같아 공포스러웠다. 두 번 연습 나가서 두 번 사고가 나니 무서웠다. 그로부터 7개월간 운전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방전이 되지 않도록 간간이 운전을 하며 투덜댔다. 운전 안 할거면 왜 샀냐고 말이다.

새해 2월이 되어 새 마음으로 다시 운전에 도전했고 매일같이 유튜브 운전 강사의 설명을 듣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운전연습을 했다. 하루 하루 실력이 쌓였다. 토요일 아침 7시 차량 통행이 적은 날 혼자서 직장까지 갔다. 주차도 이론을 먼저 배우고 실전에 성공했다. 아침 출근을 해볼 용기도 생겼다. 운전 시동을 걸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별 사고는 없었다. 자신이 운전을 해서 출퇴근하는 것이 상상조차 안 되었는데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여전히 무서웠다. 홍희와 띠동갑으로 나이가 적은 직장동료는 차를 산지 3주만에 출퇴근을 했고, 혼자서 야간운전, 낯선 길을 네비게이션을 따라 잘 다녔다. 자신이 너무 겁이 많아 못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가까운 마트에는 갈치 한 마리가 12,900원이었는데 조금 더 먼 마트는 네 마리에 9,900원 한다고 하여 용기를 내서 낯선 길을 갔다 왔다. 다음 날에는 아들을 태우고 출근을 하려고 했다. 아직 오른 쪽으로 차를 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시도하기로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아들을 태우고, 아들에게 능숙하게 운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평소보다 빠르게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순간 맞은편에서 차가 왔다. 당황했고, 오른쪽으로 비켜주었고, 반대편 차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엑셀을 밟았다. 그 순간 차가 찌익익 벽에 부딪쳐 찌그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놀라 정지를 했으나 이미 앞 범퍼는 너덜너덜해졌고, 전조등은 눈알이 빠진 것처럼 덜렁거렸다. 아들은 버스를 타고 학원을 갔다. 찌그러지고 덜렁거리는 앞 범퍼 그대로 출근했다. 토요일 범퍼를 교체했다. 돈이 들었다. 차는 새 차가 되었다.

운전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있다. 홍희는 겁이 많다. 연습을 하면 못 하던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알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 차근 천천히 자기의 속도를 지켜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속도를 따라 가고, 남이 원하는 속도대로 가고, 남이 가라고 한다고 가려고 한다면 사고가 날 수 있다. 홍희는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느리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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