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문을 만나 끝나고
길은 문을 만나 끝나고
  • 승인 2020.06.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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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시인

길은
문 안에 들어서지 않지
달려 간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할 뿐
궁금하여 목을 길게 늘여도

까치발은 창문 앞에서 멈추어
초인종을 누르고
손마디를 옹송거려 비위를 맞추어도

길은
늘 문 앞 거기까지만
낮게 내려앉아
땅바닥에 낙서나 하다가
서성대느라 구부러지고
급하게 돌아가다가
내처 한달음으로 내질러버리기도 하지
달음박질은 늘 숨이 차
좁은 건물 사이로 숨어들어
넥타이를 풀고 허리띠를 풀고

분주한 발걸음에 지친 등을 누인다
그래도 밀려오는 피곤함보다
질척이는 어둠을 창문은 제 덩치만큼만 밀어내는데

길은
문 앞에 누웠다가
술 더께로 더욱 어깨가 야윈 사내 발목을 흔들어
타박하듯 던지는 위로 한 줄기
이 자리 그대로 있으마고
손을 내민다

◇유영희= 통영 출생. 월간 <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 ,한국문협, 통영문협, 수필과비평작가회의회원, (현)수향수필문학회 회장. 수필집 <옹기의 휴식>

<해설> 유영희님의 시‘길은 문을 만나 끝나고’은 3연으로 된 중시(中詩)에 해당되겠다. 2연의 9행과 12행 그리고 3연의 3행은 이 시의 백미다. 시어들이 참신하고 정갈하다. 연암 박지원의 <답창해2>에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오.’와 같이 사물을 보고 밝힘에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눈 먼 사람보다 못하다면 이는 곧 눈뜬장님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갈파했듯이.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면 도로 눈을 감고 온 길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시 또한 그러하다. 시의 정의를 이처럼 일렬요목하게 밝히고 있다. 다시 위 시 ‘길은 문을 만나 끝나고’로 돌아가 보자. 길은 본연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길과 사물의 길이 있으니 우리에게 무한(無限)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따라서 어떤 사물의 근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쓴 시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데 유영희님의 시는 시어들이 정갈하고 정금빛처럼 반짝인다. 이는 시인의 역량이 아니겠는가. 시어는 항상 신선해야 하고, 시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이 시인의 본분이다. 따라서 앞에서 거론했듯이 3연 3행의 길은‘술 두께로 어깨 야윈 사내 발목을 흔들어’다는 문장은 얼마나 참신하고 신선한가. 독자로 하여금 시를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이 무한하다. 앞으로 시의 정진이 더욱 충만하길 기원하는 바이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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