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극 첫 도전…“연기 스펙트럼 확장 계기로”
역사극 첫 도전…“연기 스펙트럼 확장 계기로”
  • 황인옥
  • 승인 2020.06.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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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월명’ 여옥역 배우 이수정 인터뷰
“현대적 감각 톡톡 튀는 시대극
백제 유민의 여성지도자 역할
작품 걸맞는 리더상 깊게 고민”
공연 위해 경주에 장기 체류
“쉼없이 연기와 노래 연습 중
배역 가리지 않고 롱런할 것”
뮤지컬월명_여옥역이수정배우
 

“원수의 나라 신라왕이 개최하는 향가 오디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치욕이다.”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이 국난 극복을 위해 서바이벌 경연인 ‘신라 향가 오디션’을 펼친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백제 유민의 지도자인 여옥이 발끈한다. 백제를 집어삼키고 자신들을 유민으로 전락시킨 “신라왕이 주최하는 경연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분노가 차올랐다.

창작뮤지컬 ‘월명(月明)-달을 부른 노래(이하 월명)’에서 여옥의 옷을 입은 이수정은 천년도 훨씬 전의 백제 유민 여성지도자에 완벽하게 젖어들었다. 몸짓에는 강단이 넘쳤고, 얼굴에는 결단이 회오리쳤다. 여옥은 한국 시가 사상 가장 오래된 노래인 공무도하가를 지은 고조선의 인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백제 유민의 지도자로 각색됐다.

지난 25일 저녁, 공연을 앞둔 이수정은 “여성이지만 백제 유민의 지도자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며 여옥 캐릭터를 소개했다. “신라 시대에도 여성 리더는 있었어요. 선덕여왕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여옥이라는 캐릭터는 대중들이 잘 모르고, 그래서 여성으로서 어떤 지도자상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이 작품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두 개의 해가 뜨고 혼돈에 휩싸인 국난 극복을 위해 ‘신라 향가 오디션’을 열어 노래로 하늘을 감동시켜 하나의 해를 물리치는 과정을 그린 창작 뮤지컬. ‘신라’ 문화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경주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최종 결승전에 남은 신라최고의 향가 뮤지션 월명과 백제 최고의 소리꾼이자 백제 유민마을의 지도자인 여옥. 여옥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제 유민의 지도자라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신라 향가 오디션’에서 우승하고 좋은 노래로 하늘을 울려 하나의 해를 사라지게 하면 “백제 유민의 터전과 자유를 제공받는다”는 조건을 걸었고, 결국 여옥은 원하는 것을 얻으며 백제 유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한다.

일찌감치 뮤지컬에 진출한 이수정은 “스토리를 노래에 함축해서 보여주는 뮤지컬에 매료되어 일찍부터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녀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뮤지컬연기를 전공했다. 졸업 이후 음악극 ‘인선왕후’, 연극 ‘세상에 이런 가족’, 뮤지컬’힐링 인 더 라디오’, 마당극 ‘낭천별곡’,인형극’할머니의 이야기치마’ 영화 ‘엑시트’ 등의 작품에서 열연을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해 왔지만 제대로 된 역사극 도전은 ‘월명’이 처음이다. 역사극인 만큼 서사와 음악이 묵직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대본을 받아들자 예상은 빗나갔다. 시대극이라고 하지만 고대가요, 힙합, 댄스, 발라드 패러디와 현대적인 안무, 그리고 서바이벌 경연이라는 콘텐트 등 현대적인 요소들로 톡 톡 튀었다. 시대를 초월한 재미가 넘실 됐고,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신라의 역사와 문화라는 역사성은 끝까지 밀고 가는 고집도 있었다.

“시대극과 현대음악이 어우러진 ‘월명’은 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가 될 만큼 다양한 매력으로 뭉친 작품이에요.”

월명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서울 출신들이 대다수다. 이수정 역시 서울에서 ‘월명’ 공연을 위해 경주에서 장기체류 중이다. ‘월명’은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으로 넘어가던 지난달 12일부터 시작해 11월 28일까지 공연이 잡혀있다. 이수정은 “연고가 없는 경주에서 한 작품에 장기적으로 매달릴 수 있어 집중도가 높다”고 했다.

“천년 고도 신라가 주는 고요함이 있고, 또 숙소와 공연장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패턴으로 저 자신이나 연기에 대한 성찰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 점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

여옥은 강인하고 책임감 있는 여성인데, 여옥의 옷을 입은 이수정은 영락없는 여성 리더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조차 공동체의 안위를 보장받는 일에 활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지도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성격은 “강하고 여린 면이 공존하지만 여린 점이 많다”고 했다. 여린 이수정이 강인한 여옥을 만나 전혀 다른 이수정을 선보이고 있는 것. 바로 이 지점이 “배우여서 행복한 이유”라고 했다.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여러 인생을 사는 느낌이 배우가 가지는 매력인 것 같아요.”

연기와 노래 연습은 쉬는 날이 없다. 배우에게 연습은 ‘밥’과 같다는 철학으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생명의 에너지원이 ‘밥’이듯, 배우의 에너지원으로 ‘연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그녀가 “최고는 못되더라도 완벽을 향해 가고 있다”고 했다. “큰 배역에 대한 욕심 보다 배역 구분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고,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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