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莫大於心死)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莫大於心死)
  • 승인 2020.06.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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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대경예임회 회장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박동규대경예임회 회장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아버지 게가 “너는 왜 항상 옆으로만 걷니? 똑바로 걸어보렴.”하고 말했다. 아들 게는 “아버지도 똑바로 한 번 걸어보세요. 그러면 저도 똑바로 걸을 수 있단 말이에요.”하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솝우화이다.

18세기 독일의 교육자 잘츠만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않는 것은 위협으로만 일관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집 아버지는 하나의 입버릇이 생겼다.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이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문을 살짝 닫지 않고 ‘쿵!’하고 닫아도 아버지의 잔소리는 시작되었다. “이 놈들 또 장난치는구나! 누가 문을 그렇게 부서져라 꽝하고 닫니? 또 한 번 그래봐라 ‘가만 안 두겠다!’ 알겠니?”하고 고함쳤다.

식사 때가 되어 손을 씻고 오지 않으면 “이놈들 손 안 씻었구나! ‘가만 안 두겠다!’ 밥 먹지 마!”하고 소리를 질렀다. 모든 일들이 이런 식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했다. 무서움도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다.

사실 그 집 아버지는 마음이 온순하고 자식들을 사랑했다. 말로만 떠들었지 실제로 아이들을 호되게 나무라거나 매를 때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저 말로만 ‘가만 두지 않겠다!’로 일관되게 꾸짖었다.

그 집 아버지는 “너희들은 아버지가 항상 용서해 주니까 무엇이든지 예사로 여기고 있는데 다음에 그런 짓을 또 하면 되게 혼날 줄 알아라. 헛말인줄 아니? 두고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게 될 거야.”하고 뒷말로 맺곤 하였다.

아이들은 전혀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말에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크게 혼나 본적도 없고 정신이 번쩍 들게 매를 맞은 적도 없었다. 아버지의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은 그냥 엄포였던 것이다.

잘츠만은 아이들을 나무라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을 많이 하고 자주 나무란다고 해서 아이들이 버릇을 고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은 위협적인 말이지 민주적이 아니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이다. 민주교육이란 교육방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훈계는 그 당장에 알아듣도록 타일러 처리해야 한다. 백 번 말해도 안 듣는 경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야 한다. 잘츠만은 선진국인 미국의 백화점에서 ‘매’를 팔고 있는 실정을 예로 들었다. 서구의 18세기 교육방법도 우리의 옛날 서당식 교육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듯하다.

가르칠 교(敎), 본받을 효(效), 고칠 개(改), 공경 경(敬), 칠 공(攻), 두드릴 고(敲) 등은 모두 회초리와 관계있다. 한자의 부수가 등글월문, 칠복부수는 모두 회초리를 뜻한다. 옛날 서당에는 학동들의 아버지가 회초리를 지게에 얹어 져다 주면서 자식을 올바르게 길러 달라고 부탁했단다. 유럽은 물론 미국도 아마 그랬던듯하다.

서당에선 훈도(薰陶)교육이 원칙적이었다. 감화를 주어서 행동의 변화를 이끌었다. 회초리의 비치는 전시용이었으리라. 지금 매의 사용은 절대 안 된다. 이 당면한 숙제는 무척 힘들고 어렵다. 어떻든 교사의 몫이다. 마음을 죽인다.

제자 안회가 공자에게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신 데도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전혀 친함이 없는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으십니다. 뛰어난 정치 수완이 없는데도 백성들이 모여들어 선생님을 따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하고 여쭈었다.

공자는 “부애(夫哀) 막대어심사(莫大於心死)이니라.”하였다. ‘무릇 무엇이 슬프다슬프다 하여도,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죽음은 그 다음 가는 슬픔이다. 우리는 한 번 형체를 타고난 이상 만물의 움직임에 순응해야 한다. 나는 나날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간다. 우리는 평생토록 가까운 사람과 팔을 끼고 지내지만 결국 서로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렇게 지나간다. 비록 지난날의 일들을 잊어버린다 해도, 자신에게는 언제나 잊혀질 수 없는 참된 나도 그 중에 존재함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잊혀질 수 없는 참된 나도 그 중에 존재한다.’는 의미부여는 신선하다.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공자도 나날이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갔다. 그것이 순리이다. 결코 마음이 죽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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