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자' 경계에 선 이방인의 위태로운 시간 여행
'프랑스 여자' 경계에 선 이방인의 위태로운 시간 여행
  • 승인 2020.06.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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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이혼 후 20년만에 돌아온 한국
韓·佛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한 ‘미라’
과거와 현재·꿈과 현실 뒤섞인 연출로
뿌리 내리지 못한 그녀의 정체성 표현
프랑스여자

아무렇게나 걸친 티셔츠와 청바지, 깡마른 몸의 여자가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다. 이내 그 골목길은 프랑스 파리의 골목길로 바뀐다. 여자의 분위기는 서울보다는 파리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러나 파리에서 여자는 이방인 같아 보인다. 여자는 현재의 서울과 과거의 파리를 오가며 끊임없이 떠돈다. 4일 개봉한 영화 ‘프랑스여자’ 이야기다.

젊은 시절 공연예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배우를 꿈꿨지만, 파리 유학 후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정착한 미라(김호정 분)는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다. 남편과는 이혼한 후다.

한국에서 미라는 20년 전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재회한다. 영은(김지영)은 영화감독, 성우(김영민)는 연극 연출가가 돼 있다. 그리고 2년 전 세상을 떠난 후배 해란(류아벨)에 대한 기억도 떠오르지만, 그 어느 것도 선명하지 않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가운데 미라는 자신도 모르게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되고, 과거와 현재도 뒤엉킨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라의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뒤섞으며 모호함을 유지한다. 이 모호함은 어딘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미라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미라는 한국과 프랑스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해 있지 못하다.

미라는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남편과 이혼 후 불안감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이 온전히 프랑스인이 아닌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미라는 이방인이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미라가 곧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프랑스여자’라고 생각한다. 미라는 한국 여자와 프랑스여자, 그 사이에서 맴돌 뿐이다.

영화는 나아가 갑자기 재난을 등장 시켜 재난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미라와 같은 경계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표현하고자 한다.

다만 이 연결고리가 관객이 쉽게 납득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는 모호함은 미라의 이방인 정체성을 나타내는 무기인 동시에 이 느슨한 연결고리를 변명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불친절하고 난해한 내용, 연극적인 장면과 배우들의 연기 톤에서도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연출에는 눈길이 가지만, 과도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 역시 든다.

존재만으로도 정말 어딘가 프랑스 느낌이 나는 김호정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 김지영과 나이 쉰에 전성기를 맞은 배우 김영민의 연기도 영화에 잘 녹아들어 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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