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된 분청사기 화풍이 부른 암흑과도 같은 풍경…대구신세계百 갤러리 차규선 초대전
진화된 분청사기 화풍이 부른 암흑과도 같은 풍경…대구신세계百 갤러리 차규선 초대전
  • 황인옥
  • 승인 2020.06.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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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기법 적용한 신작 17점 공개
흙, 물감처럼 쓰고 물감, 가루로 대체
기존 모노톤보다 더 어두운 방향으로
“밤일 수도, 여명 전의 암흑일 수도”
자연 담되 작품명 ‘화원’으로 통일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태 지향
들여다 보면 산수화 분위기 ‘넘실’
“한국화 향한 경외심 자연스레 표출”
차규선작화원
차규선 작 '花園‘ 227x181cm. mixed media on canvas 2020.
 
월간미술-차규선-018
차규선 작가가 “자연을 통해 우주를 그린다”며 신작 ‘화원’에 대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월간미술 제공

작가 차규선으로부터 작품 이미지 한 장이 문자로 날아들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외마디 탄성이 흘렀다. 산 풍경을 그렸는데, 휴대폰을 뚫고 나올 만큼 기세가 등등했다. 대구신세계백화점 갤러리 개인전에 걸린 작품 ‘화원(花園)’ 시리즈에 대한 첫인상은 보는 즉시 반사적인 탄성을 이끌어 낼 만큼 강렬했다.

◇ 새로운 변화가 돋보이는 신작 소개

차규선 초대전이 대구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11일 개막한다. 대구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변화된 화풍으로 그린 신작들만으로 17점을 모았다.

변화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통로라고 할 때, 작품의 변신은 무죄를 넘어 세상의 풍요를 이끄는 에너지원이 된다. 이 점에서 차 작가의 이번 전시는 전환기적인 의미를 가진다. 작가의 전매특허인 ‘분청회화’와 다른 방식의 작품들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전시이기 때문.

그러나 작가는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이번 변화는 긴 작업 인생에서 또 하나의 단계를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애써 겸양해 했다.

이번 신작들에는 의미있는 변화들이 그득하다. 우선 기법적인 변화가 눈길을 끈다. 분청사기 기법을 차용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흙을 물감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렇다고 ‘분청회화’와의 결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작업의 진화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차단했다. “분청사기 기법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흙을 다루는 기술이 늘었다. 그러면서 흙을 좀 더 자유롭게 사용하게 됐다. ‘분청회화’는 그것대로 더 연구할 여지가 있다.”

물감의 다변화도 시도했다. 액체 물감 대신 물감의 재료인 가루 자체를 사용한다. 매화나 진달래꽃을 표현할 때 가루 상태로 살짝 뿌리는 식이다. 이 기법은 현재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어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태로 보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2점의 작품에만 이 기법을 적용했다. “그리지 않고 가루로 뿌리니 더 자연스럽고, 대상이 강조되는 효과도 생겼다.”

색의 변화도 먹먹하다. 전작들에도 모노톤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먹빛이나 흙빛 등으로 어두움의 강도를 훨씬 짙게 했다. 짙은 모노톤이 때로는 그윽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차규선표 서사를 최적화하고 있다. 작가는 “원하는 이미지의 극대화를 위해 색은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색을 많이 사용해서 원하는 그림이 나오면 색을 쓰고, 또 그 반대의 경우이면 색을 뺀다.”

이번에 사용한 잿빛 암흑에 대한 감성은 신비로움과 강렬함이다. 작가 역시 “시크한 암흑”이라고 표현했다. “밤일 수도 있고, 여명이 오기 전의 암흑일 수도 있다. 코로나 시기여서 이런 시크한 색이 나왔는지 모른다. 곧 다가올 찬란한 새벽에 대한 염원일 수도 있겠다.”

회화의 기본 재료인 캔버스도 개혁적이다. 2017년에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의 전시작 설치작품의 오브제 천을 잘라 캔버스로 제작했다. 설치 작품에서 만들어진 구겨진 표면을 그대로 사용해 매화를 그렸는데, 전작의 매화 그림들과는 또 다른 맛이 스며들었다. “자세히 다가가서 보면 천이 구겨진 표면이 드러난다. 덕분에 그림에 더 많은 이야기가 생겨났다.”

작품만으로 보면 그는 자연주의자다. 그리는 소재가 대부분 자연. 매화나 산, 나무 등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작품의 제목은 ‘화원(花園)’으로 통일했다. 말 그대로 ‘꽃동산’인데, ‘이상향’을 의미한다. 작가가 꿈꾸는 이상세계에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도 포함된다. 이때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그의 세계관이자 우주관에 해당된다. “옛날부터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자연에 귀속된 존재라면 인간은 자연에 거스르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

◇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향해 걸어온 화가의 길

그림은 어린시절부터 그의 곁을 맴돌았다. 말랑말랑한 땅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나뭇가지로 낙서를 했다. 미술대학에 진학해 구상화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도 곧잘 들었다. 호평을 받고 있는 화풍이라면 계속 끌고 갈 법도 한데, 그는 일찍 변화의 길을 모색했다. 구상화를 버리고 ‘분청회화’라는 듣도 보도 못한 화풍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배들이 잘 그리는 구상화를 두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다며 말렸다. 그러나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컸다.”

‘분청회화’는 흙을 고착안료와 섞어 캔버스 표면에 바르고, 그 위에 아크릴 등의 흰색 물감을 뿌리거나 덧칠한 다음 나무주걱, 나뭇가지, 부러진 붓 등으로 표면을 긁어내는 기법으로 그린 차규선표 회화다. 2001년 호암미술관에서 개최된 ‘분청사기 명품전’에서 만난 ‘분청사기조화수조문편병(粉淸沙器彫花樹鳥文扁甁)’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시킨 작업이다. 1995년 첫 개인전 이후 5년 남짓 흐른 이후에 만난 큰 변화였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은 나를 옥죄는 부자유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택했다.”

‘분청회화’로 크게 주목받은 것은 2009년에 열린 포스코미술관(서울) 개인전 때였다. 100호 이상의 대작 50여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였지만, 작품 판매라는 면에서 보면 성공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애매했다. 그렇다고 무의미한 전시는 더욱 아니었다. 이 전시가 그의 작가 인생의 일대 전환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 포스코 전시 이후 좋은 공간에서의 전시 기회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국내 유수의 장소들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었다.

차규선에게는 ‘좋은 전시’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떤 작품을 보여 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녹여낸 전시를 지향한다. 그런 전시가 그가 믿는 ‘좋은 전시’다. 좋은 전시는 역시 좋은 작품과 관계된다. 차 작가는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꼽았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이 첫 번째 관람객인 셈이다.

그가 “남들이 명작이라고 하면 기분은 좋겠지만 내 눈에 차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 앞에 정직해야 한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내 그림은 내가 아는 지식과 세상을 보는 눈, 내가 보고 듣고 읽은 것이 녹아든 분신이다. 내 분신인데 나와 다른 나를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분청회화’라는 독특한 기법을 어렵게 터득해야 했던 간절함은 ‘차규선스러움에 대한 갈증’으로부터 왔다. 산세를 힘차게 표현해낸 신작, 분청사기 기법으로 그린 눈 내리는 숲속 풍경, 흐드러지게 핀 매화 등 소재는 다양하지만 작품들에서 공통된 정서가 담겨있다. 조선의 산수화와 시대적인 간극은 부정할 수 없지만 안견이나 겸재 정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차 작가가 이에 대해 “내 그림은 한국화”라며 싱긋 웃었다. “서양의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지만 내용에서 ‘한국적’”이라며 “한국인으로서 주체적인 그림, 이것이 차규선 스러운 그림”이라고 밝혔다. “18세 조선화가들을 좋아한다. 내 DNA 속에는 우리 그림의 우수성이나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새로운 재료에 도전하고, 재료를 제압하고,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하는 능력은 조금은 타고 났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작업적인 면에서 오히려 둔재에 가깝다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1년에 두 번의 개인전을 하고, 그때마다 신작들을 발표했던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열심히 그려야 좋은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신념을 항상 가졌다. 개인전 2번 하면 1년이 훌쩍 지나갈 정도로 열심히 그렸다.”

차규선의 회화는 아름답다. 오물을 뒤집어쓴 누더기 같은 현실세계와는 정반대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눈을 유혹한다. 혹자는 예술은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지만 차 작가의 귀에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는 나무나 꽃, 산, 숲에서 웅비함과 신령스러움 본다. 그 아름다운 자연에서 우주를 보고, 화폭에 담는다.

“복잡하고 힘겨운 일상에서 예술 속으로 빠져들어 힐링하게 해 주는 것도 예술의 역할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사회참여적인 것도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표현해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도 있다. 그것이 예술의 정화기능이 아니겠나?”

세상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원동력은 실력이다. 화가에게 실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어가는 힘이다. 차 작가가 지금까지 전업작가로 살아온 것에 비춰 보면 실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화업 인생 25년간 개인전을 36회 개최한 중견이다. 이제는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할 때라는 이야기다. “그림은 사각 틀 속에 담아놓은 또 다른 세계다. 예술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향해 계속 달려갈 것이다.” 전시는 7월13일까지. 대구신세계백화점 갤러리. 053-661-150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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