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한숨
  • 승인 2020.06.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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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사람은 하루 동안 이만 육천 번 정도의 숨을 쉰다고 한다. 사람마다, 그리고 활동하는 양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일 분에 열여덟 번, 한 시간에 천 백번 정도 숨을 들였다 내보낸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쉰다는 이만 육천 번의 숨 중에서 우린 하루에 한숨을 몇 번이나 쉴까.

한숨을 쉰다고 해서 일이 더 잘 풀린다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나는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나면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 안도감과 함께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손뼉을 치거나 발을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는 일처럼 숨과 숨 사이, 가끔 쉬는 한숨은 정박을 찾아가기 위한 엇박자가 아닐까.

삶이 엇박자라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럴 땐 쉼표가 필요하다. 한 박자 쉬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에만 급급해 평상심을 잃고 급하게 서두르게 되며 섣부른 결정을 하게 된다. 그것이 엇박자를 계속 엇박자이게 만드는 일인 줄도 모른 채. 엇박자라고 생각할수록, 찾아오는 고통의 순간을 숨을 고르듯 자연스레 흘려보낼 순 없을까.

코로나 19 이후,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유난히 한숨이 잦았던가 보다. 하루는 딸아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선 “엄마, 한숨 좀 그만 쉬면 안 돼? 인자부터 엄마가 한숨 쉴 때마다 한숨에 만 원씩 벌금을 받던지 아니면 엄마가 한숨 쉴 때마다 나도 그럴 끼다.”라고 한다. 몇 달째 쉬고 있는 딸아이 역시 힘들 텐데……. 문득 돌아보니 그 속 또한 오죽할까 싶어 아무런 해답을 줄 수 없었다. 다만 이 엇박자 같은 삶의 고비를 잘 견뎌내길 바라는 마음뿐.

고희영 작가가 쓴 ‘엄마는 해녀입니다’라는 그림책에는 모녀인 두 해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느 날 깊은 바닷속 커다란 전복을 발견하고는 욕심을 내어 주우려다 그만 숨을 놓칠 뻔 한 딸에게 엄마 해녀가 이렇게 말을 한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놓게 되어 있단다. 그 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리고 간단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한숨의 사전적 의미는 축 처지는 느낌으로 걱정을 담아 내쉬는 숨, 후유, 어휴 등으로 표현이 된다고 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 넣듯 몸에도 마음에도 한, 숨이 부족할 때가 있다. 숨이 찰 때는 덜어내고 숨이 모자랄 때는 딱 필요한 만큼 한숨을 채워 넣는 일, 들숨과 날숨을 고르게 쉬는 일, 숨과 숨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엇박자를 벗어나 정박자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졸리거나 힘들거나 배가 부르거나 무료할 때 무의식적으로 입이 벌어지면서 일어나는 하품은 ‘깊은숨’을 말하지만, 한숨은 크고 자유로운 숨을 말한다. 고장 난 모닝콜처럼 계속 입을 벌려 놓고는 한번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모르는 한숨이 가끔은 병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내 몸인데도 내 뜻대로 그치질 않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처럼 코로나 19가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때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미국에 사는 85세 할머니인 나딘 스테아가 쓴 시가 생각난다. ‘긴장을 풀고 경쾌하게 살며 더 철없이 굴고 이젠 모든 것에 덜 심각해 질 거야’라는.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후회,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걸’하는 후회, 하루의 끝, 한 해의 끝, 결국 인생의 끝에서 가장 많이 한다는 그런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라도 한 숨 한 숨 고르게 쉬며 종종 한숨도 쉬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러 딸아이와 함께 동사무소를 향해 대문을 나선다. 다시 한숨 한 번 쉬어 본다. 가볍게, 경쾌하게, 즐겁게.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라는 책 속의 문장을 풍선껌 불 듯 오래도록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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