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J 상경기
[문화칼럼] J 상경기
  • 승인 2020.06.1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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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J는 하루에도 대구-강원-서울-호남 다시 대구 이런 일정으로 무시로 다니는 사람이다. 역마살이랄 것 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꿈꾸는 가치 실현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추진하는 삶이다.

그런 그가 이제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게 되었다. 이런 삶이 어디 J뿐 일까마는 그래도 그의 상경기는 예사롭지 않고 함께 일 해온 동료들에게는 자신들이 해오던 일들이 주류 사회로 젖어 들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게 되었다. 먹고사는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이상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다보니 어느덧 먹고 살 길이 열림과 동시에 꿈을 구체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 것이다.

J와 세상과의 조우는 예사롭지 않았다. 대학을 복학한 뒤 학교인근에서 비디오 가게를 동료와 함께 운영하며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2달마다 여는 영화제를 시작으로 문화기획자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 후 ‘레일아트’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지하철 공연 프로젝트를 전국으로 확산시킨다. 이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예술가들과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아무튼 사회생활의 시작으로 돈을 벌겠다, 유명해 지겠다는 매우 보편적인(?) 로드맵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는 예술의 대중 확산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몇몇 동료와 함께 주위의 지원 하에 ‘예사모’라는 단체 출범에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나 같은 사람보다 예술에 헌신하고자하는 정신이 더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사모의 향배는 그들의 의욕과는 달리 지지부진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 단체를 통한 파급력은 결코 만만찮았다. 그러던 중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두류 락 페스티벌을 3년간 개최하며 락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락의 활발한 활동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녹음실을 겸한 스튜디오를 오픈하며 ‘제임스’라는 락그룹을 결성했다. 앨범 발매와 더불어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J는 락커가 아니라 운영자, 기획자로 활동했다. 이 시절 J덕분에 나도 순하디 순한 락커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들은 음악을 할 때는 포효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정말 순박하고 조용한 청년들이었다. 후일 제임스는 일본까지 진출하게 되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늘 걱정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어렵다 어려워” 이런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의 세계는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음악 외에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그들은? 아무튼 다들 꿈꾸는 소년같이 보였다.

J는 또 한 번 방향을 틀게 된다. 우연히 e 스포츠 페스티벌 부대행사 감독을 맡게 되면서다. e-Fun 대구 글로벌 게임문화 축제 런칭을 통하여 도심 RPG, 게임 캐릭터 패션쇼 개최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활약으로 e-Fun을 전국 최고 축제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여기 까지가 그의 문화기획자 생활이었다. 절치부심이랄까 그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공부를 통하여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놀이의 세계에서 노동의 세계로 진입했다고 할까.

2009년 대구사회연구소에 진입한 후 소셜벤쳐 대회 등을 이끌며 이전 문화기획자 11년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회혁신 활동 영역의 새로운 11년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컨설턴트, 북성로 사회혁신 클러스터 등의 활동을 하면서도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 흐르는 프로젝트를 추구하였다. 즉 문화기획과 사회혁신 이 두 가지의 상이하면서도 공통된 가치를 접목하고자 노력한 그다. 그리고 머리만 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기도 했다. 근교에 논을 임대해 직접 쌀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막걸리를 생산하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20년 이상 J와 나는 형제의 정으로 만나고 때론 함께 일하는 동안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J가 중앙부처 정부혁신 분야의 꽤(?) 고위직 어공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는 그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인디문화, 사회혁신에 관한 일을 하는 그를 인간으로서 존중 했지만 그가 그리는 그림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가 인간의 언어로 외치는 동안 공룡이 된 나는 열심히 듣는 척 했지만 실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미완의 영역에 머물던 그가 새로운 일을 맡아 상경을 하게 되면서 하나의 매듭을 맺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가치를 인정해 준 뒤에야 그것을 알아보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눈을 뜰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 J의 언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더 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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