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돈에 빠져있습니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더욱 모든 역량을 총집결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어느 시대에서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사회 전체가 늘 새로운 자세로 상황을 헤쳐 나와야만 했습니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그의 ‘들오리 이야기’에서 주저앉으면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이미 우리에게 설파한 바 있습니다.
‘들오리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한 떼가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한참을 날아가다가 어느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집 뜰에 집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이를 먹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 들오리는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마침 한쪽 날개가 아파온다는 것을 느꼈고, 잠시 쉬어 가려는 생각으로 집오리가 있는 집 뜰에 홀로 내려앉았습니다.
다른 들오리들이 조금 더 날아가면 호수가 나올 거라고 말했지만 이 들오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 들오리는 집오리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 신나게 놀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그동안 살이 쪄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에이, 내일 날아가지 뭐.” 하면서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들오리는 ‘내일, 내일!’ 하며 많은 날을 마당에서 집오리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서 계절도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들오리 떼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 나의 형제들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구나. 그렇다. 내가 가야할 곳도 거기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난 들오리는 날아오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나 금방 떨어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영 날아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날아야 할 시간에 편안한 삶을 택하면 결국 낙오되고 만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둘레에 이처럼 시간을 낭비하여 낙오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서양 우화 가운데에 ‘닭장 속의 독수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어릴 때에 사냥꾼에게 붙잡혀 와서 닭장 속에서 병아리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독수리라는 것을 모르는 채 닭들에게 머리를 쪼이기도 하고 핀잔을 듣기도 하며 그저 꾸역구역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이 독수리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그 위치를 갈고 닦았더라면 그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정확하게 알고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철새들은 보다 좋은 조건을 찾아 무리지어 이동하게 됩니다. 그 여정이 고달파도 기어이 이겨내어야 비로소 당당한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들오리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헤르만 헷세의 ‘누에고치 이야기’에서도 이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기어이 껍질을 뚫고 나온 애벌레는 본분을 다하게 되는데, 억지로 껍질을 잘라서 쉽게 나오게 해준 애벌레는 끝내 생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무궁한 교훈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늘 둘레의 이야기 속에서 교훈을 찾아내고 실천하여 이 들오리처럼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그의 ‘들오리 이야기’에서 주저앉으면 망하고 만다는 교훈을 이미 우리에게 설파한 바 있습니다.
‘들오리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됩니다.
지중해 해변에 살던 들오리 한 떼가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한참을 날아가다가 어느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집 뜰에 집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이를 먹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 들오리는 무척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마침 한쪽 날개가 아파온다는 것을 느꼈고, 잠시 쉬어 가려는 생각으로 집오리가 있는 집 뜰에 홀로 내려앉았습니다.
다른 들오리들이 조금 더 날아가면 호수가 나올 거라고 말했지만 이 들오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이 들오리는 집오리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 신나게 놀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그동안 살이 쪄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에이, 내일 날아가지 뭐.” 하면서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들오리는 ‘내일, 내일!’ 하며 많은 날을 마당에서 집오리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서 계절도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들오리 떼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 나의 형제들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구나. 그렇다. 내가 가야할 곳도 거기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난 들오리는 날아오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나 금방 떨어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영영 날아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날아야 할 시간에 편안한 삶을 택하면 결국 낙오되고 만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둘레에 이처럼 시간을 낭비하여 낙오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서양 우화 가운데에 ‘닭장 속의 독수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어릴 때에 사냥꾼에게 붙잡혀 와서 닭장 속에서 병아리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독수리라는 것을 모르는 채 닭들에게 머리를 쪼이기도 하고 핀잔을 듣기도 하며 그저 꾸역구역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이 독수리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그 위치를 갈고 닦았더라면 그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정확하게 알고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철새들은 보다 좋은 조건을 찾아 무리지어 이동하게 됩니다. 그 여정이 고달파도 기어이 이겨내어야 비로소 당당한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들오리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헤르만 헷세의 ‘누에고치 이야기’에서도 이와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기어이 껍질을 뚫고 나온 애벌레는 본분을 다하게 되는데, 억지로 껍질을 잘라서 쉽게 나오게 해준 애벌레는 끝내 생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는 것은 그 이야기 속에 무궁한 교훈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늘 둘레의 이야기 속에서 교훈을 찾아내고 실천하여 이 들오리처럼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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