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삶이 일궈낸 색면추상의 세계
서정적 삶이 일궈낸 색면추상의 세계
  • 황인옥
  • 승인 2020.06.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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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인슈바빙 ‘조영선’展
삶의 경험으로 쌓인 감성의 산물
인문학 토대 그림으로 시각화
소소한 일상부터 거대 담론까지
내적 성찰·깨달음 色으로 표상
조영선작Document-
조영선 작 ‘Document-’

색에 대한 감수성은 어린시절부터 톡 톡 튀었다. 유치원 시절, 그림을 그리면 파란 하늘은 초록을, 빨간 과일은 파란색을 칠하곤 했다. 친구들의 눈에는 조영선의 그림이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꼬마 조영선은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다. 색이 그녀를 상상의 세계로 인도했고, 그 세계에서 조영선은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경험했다. “태생적으로 세상을 색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었다. 색에 대한 독특한 취향도 타고난 것 같다”

조영선은 색면추상을 그린다. 다양한 색면을 쌓거나 늘어놓는 방식으로 형태를 구축한다. 그녀가 “마음속의 이미지가 색면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이때 전제가 필요하다. 연상을 위한 서사가 존재해야 한다. 서사가 마음 속에 감상을 일으켜 연상 작용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이미지로 현현한다. 선(先) 서사(敍事), 후(後) 이미지인 것이다. 서사는 사건이나 상황들의 묶음이다. 소설일 수도 있고, 작가의 일상 속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조영선의 그림은 인문학에 가깝다. 작가는 청소년기에 독서와 피아노 연주, 음악 감상을 즐겼다. 그러한 지적·예술적 행위를 통해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그것이 색면추상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으로 구축됐다. 예컨대 사랑에 빠진 남녀는 살구빛면으로, 은밀한 물레방앗간은 회색면으로, 여백은 연노랑면으로 연상하는 식이다. 그 세 개의 색면을 화폭에 구축하면 조영선 산(産) 색면추상이 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인문학책 한권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인생일 수도 있다.”

본류가 인문학이고, 지류가 음악이고, 철학이고, 문학이다. 그림은 인문학을 시각화하는 매개에 해당된다. 성장기 내내 그림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지만, 막상 대학진학 때 불문학을 택한 것도 인문학 중심의 태도가 있었다. “미술이나 음악을 따로 놓고 생각하기보다 인문학 속에서 인식하려고 했어요.”

최근 개막한 갤러리인슈바빙(대구 동구 동덕로) 개인전에 걸린 30여점의 작품은 조영선 산(産) 색면추상들이다. 그녀의 색면추상이 축제장의 만국기처럼 전시장을 물들였다. 코로나 19 시국에 만난 밝고 따사로운 색면들에서 위로와 희망이 넘실댔다.

개인의 산출물은 경험의 산물이다. 조 작가의 독특한 색에 대한 감각 또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감정의 산물이다. 성장기에는 해외에 자주 오고갔던 부모의 영향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타국의 문화를 흡수했다. 일찍부터 여러 국가의 다양한 색들을 경험했고, 덕분에 색에 대해 수용적이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어떤 색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다. “DNA속에 내재되어 있던 색에 대한 독특한 미감과 타국 생활에서 얻은 다양한 색에 대한 경험이 색면추상으로 나온 것 같다.”

조영선의 색면추상은 ‘매혹적’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섹시하기까지 하다. 지금의 온화한 색면을 구사하기까지 먹먹한 시간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녀도 어둡고 둔탁한 색에 취한 때도 더러 있었다. 색면에서 분노나 절망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색이 말랑말랑 해 졌는데, 돌이켜보면 세월이 준 여유였다. “중년을 넘기면서 정리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힘든 인연들도 정리되고, 힘든 상황들과도 맞서지 않는다. 특히 할머니가 되고 손녀를 돌보면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 정화된 마음 상태가 부드러운 색면으로 드러났다.”

조 작가의 색면은 내면의 표현이다. 소소한 일상과 사회적인 거대담론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들이 색면추상으로 가시화된다. 외부로부터 내부로 들어온 현상들이 서로 충돌하며 일어나는 내적 상태가 색면으로 표현된다. 색면이 성찰과 깨달음의 결과인 것.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지만 그 내용은 모두 제각각이고, 내 안의 생각들도 시시각각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어떤 때는 음(陰)이, 어떤 경우에는 양(陽)이 올라온다. 세상은 우주와 같이 넓고 깊기 때문에 다양한 색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 날 그 날의 감정상태가 색면으로 구축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색면추상은 일기와 다름없다. 작가가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숨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내 그림이 아니다. 그러나 감정을 다 드러내기까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미지의 세계’라며 묘한 이야기를 했다. 하얀 캔버스에 첫 붓을 찍은 후부터의 상황은 예측불허이며, 처음 계획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을 ‘미지의 세계’에 비유한 것. “시간이 변하면서 생각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면서 그림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것이 내 색면추상의 매력이다. 나도 모르는 세계는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전시는 25일까지. 053-257-172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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