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
순명
  • 승인 2020.06.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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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왜 이리도 마음이 불안할까

계모의 트렁크 속에서 죽어간 아홉 살 아이

못난 아비의 학대로 죽음을 택한 스물 한 살 여자

나와 그들을 묶는 끈

그것이 무서워 도망치려 하고

끈은 더 죄어오고

가까이 다가선 그들의 얼굴, 숨소리

내 몸은 절망으로 점점 검어진다

신은 왜 이런 세상을 창조했을까

욥의 한숨과 비탄을 비웃는 자 화 입을진저

환난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은 자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법

오, 고통의 구덩이를 기어 나올 때

기쁨이 비로소 주어지나니

겹겹이 쌓인 비극의 기억을 아무리 헤쳐도

비밀의 문 열쇠는 없다

철저한 자기버림을 할 때에야

계시가 들려오니

순명은 인간의 숙명이어라

◇ 신평= 1956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판사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공익로펌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한국헌법학회 회장, 한국교육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철우언론법상을 수상(2013)했고, 저서로는 ‘산방에서(책 만드는 집 12년刊)’, ‘일본 땅 일본 바람’,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등이 있다.

<해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 앞엔 피할 수 없고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고비들이 있다. 오직 신성한 사랑만이 세계에 대한 인식의 열쇠를 수여한다. 이 세계, 인간은 신성한 사랑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시무시한 폭력이 된다. 배우고(有爲的 행동) 덜어내는 과정(道)을 통해 남이 정해놓은 과거의 것,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과 잣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볼 수 있고, 자신만의 표현과 창조를 할 수 있다. 보고자 하는 것을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아야함이 매우 중요하다. 보이는 것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가능케 하는 영역의 것은 더욱더 볼 수 없게 된다. 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는 그 전체성을 볼 수 있어야 세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썩는 냄새가 나면 당장 덮개를 열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헤매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어떤 일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비로소 고쳐진다. 좌절의 순간에서 땅이 단단히 얼어붙어도 때가 되면 싹이 오른다. 인간은 최악의 조건하에서도 영적인 자유와 존엄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어떠한 역경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파도를 보지 말고 파도 너머 멀고 깊은 바다를 응시하자. 사람 마음을 단단하게 굳히는 것도 덤덤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시간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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