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한가운데 덩그러니…500살 된 천연기념물 ‘생사의 기로’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500살 된 천연기념물 ‘생사의 기로’
  • 채영택
  • 승인 2020.06.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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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 (26) 황목근을 생각하며
세금 내는 나무
나무가 인근 토지의 주인
주민들이 공동경작 실시
창출된 수익은 장학금으로
기구한 사연
원래는 인근 마을 당산목
홍수에 집터 모두 없어져
주변 모두가 논으로 변화
배수 안돼 매년 가지 썩어
최근의황목근모습
최근의 황목근 모습. 가지가 말라있어 초라하게 보인다.
 
황목근
우레탄폼을 긁어 내고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해 쇠 구조물로 보강해 놓은 황목근 모습.

얼마전 안동과 예천을 갈 일이 있어 마침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세금 내는 나무인 석송령과 황목근을 다시 찾아보고자 방문한 적이 있다. ‘세금 내는 나무’란 나무가 토지의 주인이면서 그곳 행정관청에 사람처럼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나무다.

황목근(천연기념물 제400호) 안내판에는 「이 품종은 느릅나무과의 한 품종이며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3.2m, 키가 15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목근을 붙여 주었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이 되었다」 라고 되어있다.

2019년 작년에 황목근을 찾을 당시 나무의 생육 환경과 상태는 매우 위중해 보였다. 황목근은 바로 팽나무인데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에 속하는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분포하는 나무다. 포구나무라고도 하며 토질은 약간 습한 곳에서 잘 자라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 부분에 주로 분포를 하는데 남해안 쪽의 섬이나 제주도에 주로 많이 자생한다.

팽나무는 가을이 되면 주황색 작은 열매를 맺는데 새들의 먹이로 사용되는 이조식물(먹이식물)로 그늘은 물론이고 마을 어귀나 포구에 심겨져 마을의 안녕과 바다 멀리 떠난 고기잡이 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이 나무 근처에는 성황당이나 당집을 지어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또 매년 마을 동제를 지내온 민속적 신목으로서 인식되어온 민족수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당산나무라고도 한다.

홍만선의 산림경제 구황편에 의하면 “2월 이후에 전채(田菜)·산채(山菜)·단엽(檀葉) 팽나무 잎·귀엽(葉) 느티나무 잎·호엽(蒿葉)은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곡식가루를 버무려서 먹어야 하며 곡식가루를 섞지 않고 먹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나 곡식이 좀 있을 때부터 미리 준절(준節)하여 잡물(雜物)을 섞어 먹어서 갑자기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고 되어있듯 팽나무 잎은 굶주린 백성들의 끼니가 되어 가난한 시절을 이길 수 있었다.

2019년 당시 예천 황목근을 보기 위해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나무 주변은 온통 논이었다. 즉 논 한가운데에 나무가 덩그러니 심겨져 있는 형국이었다. 한눈에 봐도 뿌리는 배수가 안되어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듯하였다. 정상적인 팽나무의 잎이 아닌 왜소하고 빛바랜 광택이 없는 잎으로 활기를 잃어 보였다. 주변에 일정한 생육 공간을 마련해 놓았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결국 물빠짐이 원활하지 못한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건축재인 우레탄폼으로 외과수술을 해놓았지만 틈 사이는 온통 갈라지고 우레탄이 밖으로 삐져나와 그야말로 수술은 최악의 모습이었다.

황목근은 천연기념물이다. 천연기념물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기념물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식물에 대한 규정을 좀 더 살펴보면 ‘한국 자생식물로서 저명한 것 및 그 생육지와 석회암지대, 사구, 동굴, 건조지, 습지, 하천, 호수, 늪 등 특수 지역이나 특수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식물군·식물군락 또는 숲, 그리고 문화·과학·경관·학술적 가치가 큰 수림, 명목, 노거수, 기형목이거나 생활·민속·의식주·신앙 등에 관련된 유용식물’ 일 경우 지정을 할 수 있다. 또한 입목을 중심으로 5∼100미터 범위 안에는 천연기념물의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를 하도록 되어 있다. 황목근의 경우도 이러한 기준에 의거한 최소한의 보호는 하고 있지만 문제는 항상 무논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해의 아픔이 채 가시기 얼마전 다시 황목근을 찾았다. 너른 들판에 홀로 서서 씩씩하게 버티고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주간으로부터 올라온 가지가 완전히 말라 있었고 또 다른 수관부 위쪽의 가지도 말라 있었다. 상태는 더 나빠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외과수술 부위의 우레탄을 말끔히 제거하고 나무의 썩은 부위도 깨끗하게 제거해 놓은 상태라 그동안 우레탄 폼에 의해 나무의 내부가 더 많이 썩어 들어가 틈이 생겨 밑둥의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버렸다. 그래서 가운데에는 쇠 구조물을 넣어 흔들림을 방지하고 윗부분의 가지가 쳐져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김줄과 쇠기둥을 여러군데 보강을 해 놓은 상태였다.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마른 가지에서 내년이면 싹이 나올수도 있으니 그대로 존치하였는지 멀리서 보면 마른 가지 때문에 더욱 초라하게 보였다.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무, 이곳에 사는 토박이 한 분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대략 정리해보면 원래 나무가 있던 주변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제를 지냈으며 밑둥의 원래 가지는 하나만 키워야 하는데 처음부터 여러 가지를 동시에 키우다 보니 지금처럼 가운데가 썩으면 빈 공간이 많이 생겨 풍도(風倒)나 가지 부러짐의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엄청난 홍수로 원래 물길이 바뀌면서 마을에 집터는 없어지고 결국 논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팽나무는 물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고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면서 매년 가지와 주간은 썩어 들어가는 불행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라고.

팽나무의 물리적 운명이 바뀌면서부터 우레탄에 의한 수술은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부나 지상부는 늘 과도한 수분에 노출되어 있다. 외과수술은 수간에 이미 가득한 수분의 이동을 고정하여 부후의 촉진을 돕는 결과가 되어 지금처럼 썩은 부분이 확대되어 큰 공간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나무 주위에 수분이 상존하더라도 바람에 의해 마르기도 하고 흡수되기도 하며 부후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상처 제거후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살균제와 살충제 그리고 방수처리를 통한 자연친화적인 치료가 다른 여타 노거수나 보호수 등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생물문화재의 특성상 나무의 수명이 다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마는 것이 또한 생물문화재의 특징이다. 건축물이나 구조물의 경우 훼손되거나 파손이 되면 수리나 재축 등을 통해 영구히 보존한다. 이곳 황목근의 경우도 지역민의 특성상 나무를 사람으로 여겨 인격체로 존중했으며 그러한 정신이 500년의 역사와 함께 고스란히 나무에 스며있을 것이다. 건물에도 법인격을 부여하듯 생명에도 물격이 아닌 인격을 부여한 이곳 예천의 인본주의 정신은 후대에 소중히 보전되어야 할 유산이다. 나무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요, 정신적 산물에 대한 부정을 나타낸다.

황목근 옆에는 2세목을 키우고 있는데 이는 생물의 특성상 언젠가는 수명을 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을 비롯하여 지방기념물, 그리고 노거수 보호수까지도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종자를 채취하거나 후계목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전체 천연기념물 552점(2017년 기준)중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59점으로 이중 노거수는 168점이나 된다.

얼마전 문화재청이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좀 더 잘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이버 상에 ‘국가문화유산포털’을 만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식물 문화재에 대한 발굴과 보존에 대한 노력은 많을 것이라 보지만 그와 더불어 천연기념물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 또한 더욱 성숙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천의 천연기념물나무,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금 내는 나무라는 독특한 격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과 황목근은 지역에서 내세울 수 있는 매우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 없다.

특히 이번 황목근을 보면서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좀 더 세밀한 안내를 통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나무가 소유하는 땅의 모양과 주민의 공동 경작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내용, 나무가 들판 한 가운데에 자리잡게 된 배경과 역사, 그리고 따뜻하고 인정미 넘치는 설화와 전설, 이 모든 것의 스토리가 하나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로 자리매김할 것인즉 누군가는 이 일에 오롯이 뛰어들어 너른 벌판의 뜨거운 흙을 붙잡고 있는 황목근의 끈질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세세히 그 일생을 기록해 남겨야 하지 않을까.

 

 

임종택<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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