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할 권리와 실패할 권리
도전할 권리와 실패할 권리
  • 승인 2020.06.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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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20대 중반까지 나는 정신없이 부초처럼 이곳저곳을 떠다녔다. 그러다가 하나의 큰 사건으로 긴 방황의 끝을 마치고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순간 이후부터 늘 나의 좌우명은 한결같았다. 좌우명은 책 어딘가에 본 글귀였는데 그 글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 글은 R.H 휼러의'배짱으로 삽시다.'에 나오는 글이다. "나는 아무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겠다." 막혔던 하수구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나는 늘 성공에 목표를 두고 완벽히 준비하여 실패하지 않으려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 책이 던진 메시지. '완벽하지 않아도 돼. 그냥 도전 해'
이 글이 나의 좌우명이 되고 난 후 나는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으려 했던 소극적 태도에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그냥 도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의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외국에 이민을 가면 많이 배운 부모보다 아직 말도 서툰 아이들이 더 말을 빨리 배운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이들이 쉽게 영어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단어만 알고 있어도 바로 말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해서 영어에 어느 정도 익숙한 부모가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배울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부모가 아이들보다 외국어 실력이 더 늦은 이유는 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크다. 그냥 단어로 말해도 되는데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하는 이유다. 가령 물 한잔을 원할 때 그냥 "Water"라고 해도 소통이 되는 것을 완전한 문장으로 요청하려니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아이가 유난히 또래에 비해 말이 늦은 아이들은 문장을 완전하게 구사하려고 머릿속에 다 생각해보고 말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이 그랬기 때문이다. 자기 오빠는 돌이 되기도 전부터 말을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서 100일째 아빠, 엄마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딸은 두 돌을 지나고, 세 돌이 다가오는데도 말을 옹알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부모로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 늦는 아이들도 있다는 생각으로 특별한 검사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세 돌을 지난 어느 날부터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그것도 단어 형식으로 짧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문장으로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돌아보면 늘 내 삶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떤 것이든 도전 자체가 두려워진 상태였다. 도전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이 핑계, 저 핑계, 오만가지 핑계를 대어가며 도전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도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내가 스스로가 만든 것이었지만 변명을 약간 해보자면 그건 학습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동안 어른들이 도전 앞에선 나에게 하던 말 "하려면 제대로 해라."라는 말과, 실패 후 고개 숙인 나에게 "성공도 못 할 거면서 왜 도전해가지고"라는 말. 그 말에 나는 도전은 성공의 가능성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으로 학습되었다. 당시 나는 성공할 자신도 없었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늘 도전을 미루었던 것이다. 언젠가 준비가 다 된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나는 도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군가 그때 내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얘기해줬더라면. 준비 안 되어도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좀 더 편하게 도전하지 않았을까.
도전은 성공할 확률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도전하고 넘어지고,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도 이젠 안다. 그래서 이전의 나처럼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우리에겐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는 도전할 수 있는 권리와 실패할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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