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과 톈안먼 사태를 보는 눈
6·10 민주항쟁과 톈안먼 사태를 보는 눈
  • 승인 2020.06.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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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박사
과거 한국과 중국에서는 2년여의 시차를 두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1987년에 발생한 6·10 민주항쟁이고, 중국은 1989년 6월 4일에 발발한 텬안문 사태이다. 시장경제를 채택한 한국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강조한 중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자칫 오류를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오랫동안 공유하는 역사와 문화적 공통분모가 넓고, 또한 집권 세력이 지향하는 가치 등을 감안해 본다면 지금까지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왜곡된 것은 없었는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과 반성의 기회를 갖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10일은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일이었다. 6·10 민주항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발생한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그해 5월 18일 전두환 정권에 의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5월 27일 야당과 종교 단체 그리고 재야 세력 등은 민주화 요구 결집을 위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으며, 6월 9일 시위에 참여한 연세대 학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6월 10일에 개최된 국민대회는 전국 2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했다.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 겸 대통령 후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평화적 정부 이양, 김대중 사면 등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했다. 이후 직선제 개헌을 기반으로 하는 6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6·10 민주항쟁은 학생과 노동자, 농어민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해 직접선거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쟁취했으며, 인권탄압,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의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누적된 모순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중국 현대사에서 피의 일요일이라는 불리는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덩샤오핑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빚어진 유혈 사태다. 이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1989년 4월 15일 개혁파 지도자였던 후야오방 전 당 총서기의 사망 이후 대학생들은 그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민주화 요구 집회를 열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식인, 노동자 등 일반 시민에게로 확산되자 덩샤오핑 지도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탱크와 장갑차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며 무차별 발포한 사건이다.

덩샤오핑은 극좌모험주의자들이 추진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실패를 경험한 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덩샤오핑은 흑표백묘론을 통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념과 상관없이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라고 했다. 이와 같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 경제는 연평균 11퍼센트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은 도시와 농촌 간 소득격차와 도시내 노동자들 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1876년 개항으로부터 시작돼 식민지와 6·25전쟁 등 불행한 역사를 겪었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국제사회가 평가하는 '동아시아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마찬가지로 중국도 명나라 시대부터 싹튼 자본주의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구미열강에 유린당했으며, 1921년 공산당 창당, 1949년 신중국 건국,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주창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시장경제를 채택하면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그림자를 민주화를 통해 걷어냈으며,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나타나는 그림자를 해소하기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문 정권의 주도세력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며, 이들은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산업화 시대의 부정적인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역사 단절를 통해 민주화의 공을 독점하려고 한다. 반면 시진핑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시진핑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이어오면서 역사 공유를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화라는 물적 토대가 없는 민주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주도세력에 비해 우월감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또한 역사를 단절이 아니라 연속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민주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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