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하는 민주당, 브레이크는 없는가
독주하는 민주당, 브레이크는 없는가
  • 승인 2020.06.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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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시인·전 계명대 겸임교수
6월은 신록이 푸르름으로 물들어가는 계절이다. 나무들은 잎사귀마다 햇빛을 가득 담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들판으로 나가봤다. 며칠 전 모내기를 한 논에 벌써 벼 포기들이 사람(‘활착’의 경상도 사투리)을 해서 작은 어깨가 딱 벌어졌다. 물만 잘 대면 풍년은 ‘따 논 당상’이다.

문득 어린 시절 가뭄이 들어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천수답 때문에 애태우던 생각이 떠오른다. 작은 골짜기의 도랑물 하나에 20필지도 넘는 천수답. 만일 힘이 세다고 한 사람이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댄다면 열아홉은 수확을 할 수 없다. 서로 살기 위해 자연히 물대는 순서와 시간을 정하는 합의가 중요했다. 그리고 도랑가에 나무판을 세우고 이 질서를 지켰다.

그런데 세계가 한 지붕으로 살아가는 인터넷시대에 예전의 시골농부보다 못한 작태가 연출되고 있다. 180석에 가까운 민주당은 다수의 힘을 내세워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제멋대로 주물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상호존중과 합의의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한가뭄에 힘세다고 내 논에만 도랑물을 모두 끌어댄다면 염치없는 짓이 아닐까? 맹자는 사단설(四端說)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당명 앞에 붙은 ‘민주’란 말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독주를 멈춰야 한다.

당면한 안팎의 사정이 농업이 주된 시절의 ‘한가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계경제가 침체되어 2%대로 경기가 하강곡선을 긋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까지 겹쳐 경기가 마이너스로 아예 꽝꽝 얼어붙었다. 영세자영업자들의 한탄이 ‘임대’로 펄럭이는 거리의 현수막처럼 허공을 자른다. 이쯤 되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당은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그런데 천심(天心)을 아랑곳 않고 오만함이 도를 넘는다. 1987년 이후 33년만에 제1야당을 참여 시키지 않은 채 단독 원(院) 구성을 해버렸다.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더구나 상임위원장 선출에 이어 김대중 정부이후 여당을 견제하는 대의정치의 합리적인 장치였던 ‘법사위원장’마저 꿀꺽했다. 13년 이상 야당이 맡는 게 관행이고 원칙으로 굳혀 온 것을 굳이 독식해야만 했을까? 2009년 노영민 통합민주당대변인(현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몇 되지도 않는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2012년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차기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은 “법사위는 여당이 일방 독주를 못하게 하도록 길목을 지키는 위원회인데 지금까지 관행대로 야당에 줘야 한다”고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는 것을 보면 민주당이 독재를 하겠단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가 총선 49.9%의 득표율을 가지고 이를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고, 아집이다. 언제 어느 국민이 다수당이라 해서 맘대로 하라고 했는지 묻고 싶다. 민주당은 사바나의 ‘하이에나’가 아니다. 이성보다 감성과 자가도취에 빠진 지도부의 몰각 때문이라고 본다. 금태섭 의원과 같이 당론을 벗어난 표결을 하였다고 징계하는 정당은 OECD 국가 중에는 없다. 3/5이 넘는 의석을 가지고 무엇이 그리 급하고 쫓겨야만 하는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통합당 국회의원들의 행동거지가 영 마뜩치 않다. 앞장서서 잘못을 꾸짖고, 때론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하는데 자라처럼 목을 내었다가는 금세 등딱지 속에 감춘다. 무엇이 그리 무서운가. 할머니 치마폭을 잡고 마실(‘마을 나들이’의 경상도사투리) 나가는 아이 같다고나 할까? 솔직히 이 일이 원내대표 사의표명 하나로 끝낼 일인가.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하면서도 당사나 국회의원 사무실 어느 곳 하나 검은 조기(弔旗)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적당히 성명 발표 한 줄 하고, 시간을 번 후에 이속 챙기기에 나설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대표직 사의도 어차피 반려될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내질러 보는 것이라는 세간의 풍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남은 상임위원장 몇 개 얻어 끼리끼리 손 가리고 웃을까봐 걱정이다. 정치인은 그렇다 치자. 정의를 위해 송곳 같은 펜을 들어야할 언론조차 펜 끝이 무디어버린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기관이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정치학과 법률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의 시국선언 하나 없다. 민초가 또 거리로 나와 직접민주주의를 부르짖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러는 사이에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쳐든다. 북한은 줄잡아 200억원 가량의 혈세가 투입된 멀쩡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예전에는 천재가 닥치면 임금님부터 자신의 부덕이라 여기고, 하늘에 제사 지내며 반성부터 했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국정을 되돌아보고,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왜 우리는 겸허함은 고사하고, 휘두르려고만 하는 것일까? 이렇게 천재와 인재가 겹쳐 백성이 도탄에 빠졌는데 민주당은 독주의 페달을 멈출 기미가 없다. 벼랑으로 구르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화합과 협치의 큰 정치가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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