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책읽기
공원에서 책읽기
  • 승인 2020.06.2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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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젠더와 자치분권 연구소장
주민들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마을공동체 활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민들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 행정적인 계획에 의한, 주민자치센터의 수고로 만들어진 자리라 통장과 관변단체의 대표자들이 많다. 이들은 정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동네 행사에 참여한다. 봉사가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사업에 도움이 될까싶어 시작했던 일이 거의 전문적인 직업 수준이다.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제를 찾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주민참여예산 동지역회의도 이들이 없으면 거의 진행되지 못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지역의 다른 주민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혹시 몰라서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특정 주민의 과대표성도 문제이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139개 전 동에서 읍면동지역회의가 이루어지지만 담당공무원은 만났던 주민들은 여전히 마을에 다른 주민이 없다고 한다. 올해도 대부분 통장을 비롯한 지난해 그 단체 회원이 참여할 것이다. 마을 동아리는 몇 개 더 만들어졌을지. 새로운 주민은 몇 명 더 올지 기대와 우려가 함께하는 순간이다.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는 시간엔 무리지어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 까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청년들, 어르신들, 해가 지면 공원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가족들. 이들이 마을에 관심가지고 함께하면 바로 마을공동체인 것을.

책 한권 들고 공원으로 나섰다.

공원에서 책읽다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다보면 통하는 지점이 있을테니, 마을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이웃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입소문을 낸 덕분에 동네 어린이공원에 대여섯 명이 모였다. 각자 책 한권씩 들고. 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의 ‘만나자 사업’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일단 만나자. 만나야 인사라도 하고, 이야기라도 나누지. 공원 앞 까페 아저씨, 이웃 동네 후배, 친구 등이 모였다. 각자 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다가 시간되면 모여서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내 손에 쥐어진 책은 노란 표지의 ‘지방에 산다는 것’.

내가 오늘 이 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지방에 사는 지방인으로서 지방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다. 지금부터 해외여행이 아니라 지역여행을 하고자 한다.

누구나 기회를 가지면 역량이 커진다. 권한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지방인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 일반주민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활동으로 청춘을 묻어버리고 지금 후회하고 있는 청년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활동이 필요하다, 나이드는게 두렵다는 이야기로 우리는 각자 공원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만난다. 다음 모임엔 다른 책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 다음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이들어도 괜찮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책을 들어 보이는 이웃동네 친구는 존중받는 노인을 위한 인권에 관심이 많다. 노인이 인권적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인 인식과 대책, 개인적인 준비와 자기 수행이다. 나이 드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벼슬도 아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해보다 한 살 더 먹었구나. 나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나이듦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구나.

공원에서 주민을 만나고 나면 그 다음엔 뭐하지?

뭐든지 해보는 것이다.

만나다 보면 뭔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걸 함께 해볼 것이다. 같이 준비하는 과정이 곧 만남의 결과 아닌가.

공원에서 책읽기. 이제 공원은 휴식의 공간을 넘어 새로운 도전의 공간이다.

코로나19 이후 동네공원은 몸과 마음이 숨쉬게 만드는 삶의 공간으로서 더 중요해졌다. 도시의 질은 공원의 질에 비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공원이 많은 지역은 질병율도 낮다고 한다. 살기 좋은 지역은 공원도 많다는 말이다.

생활정치와 함께 공원이라는 공간은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할 도시의 공간에서 생활정치를 실현해보자.

공원에서 책을 읽고, 주민들을 만나고, 함께 마을 일을 작당할 후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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