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갤러리, 7월 11일까지 홍명섭 ‘토폴로지컬 레벨’展
을갤러리, 7월 11일까지 홍명섭 ‘토폴로지컬 레벨’展
  • 황인옥
  • 승인 2020.06.25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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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폭 5m ‘거대 원고지’
리놀륨판·스테인리스로 제작
정형화된 형태 비틀어 디자인
“견고함의 상징물을 밟는다면
기존 질서 밟는것과 같은 것”
불편한 상황 만들어 개념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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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섭 개인전에 설치된 원고지 형태의 작품.

미술가홍명섭
홍명섭 개인전이 을갤러리에서 내달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400자 원고지가 벽면과 바닥에 포진해 있다. 글쓰는 공간에 있어야 할 원고지가 전시장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바닥에 설치한 작품은 ‘level casting’, 부제는 ‘바닥이 되다(becoming a floor)’다. 500개의 리놀륨판들과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들로 만든, 가로 5미터와 세로 5미터 10센티에 달하는 거대한 ‘원고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레이저 광선으로 원고지의 형태를 드로잉처럼 구축하고, 중앙을 절단해 비스듬히 기울여 놓은 작품도 있다. 작품명 ‘de-veloping the circle’인데, 기운 각도 때문에 착시 현상이 목도된다. 작가 홍명섭(72·사진)의 최근 개막한 을갤러리 개인전에 소개된 작품들이다.

바닥 설치된 작품은 무심코 밟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림자를 가진 입체가 아닌 탓에 바닥 마감재로 오인하기 딱 좋다. 평면 위의 원고지 형태도 오리무중이기는 마찬가지. 정형화된 원고지의 일부를 비스듬하게 비튼 이유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에게 “작품이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내 작품에 대해 나도 궁금하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다.

“나의 매력을 내가 모르듯이 내 작품을 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근원을 말할 뿐이다. 작품의 매력은 관람자가 찾아야 한다.”

전시장 바닥에 구현한 설치 작품에서 작품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원고지를 비스듬하게 비튼 평면에서는 불변의 권력처럼 보이는 견고한 개념을 조롱하는 듯하다. 무릇 정상의 비정상화는 처음에는 불편한 법이다. 작가는 바로 이 공식에 따라 작품을 구현했다.

작가가 이에 대해 “예술의 극단성”을 언급했다. 직선의 한쪽 끝은 위안과 쾌락과 안락함이 있다면, 다른 끝에는 불편함과 갈등과 껄끄러움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가 보기에 예술은 양극단에서 어느 한쪽을 지향하는데, 작가 자신은 “후자에 속한다”고 했다. “예술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오락에 가깝다. 무릇 예술이라면 불편함을 조성해서 일상의 안락함을 깨줘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삶의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

철옹성 같은 권위도 언젠가는 깨진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부단한 도전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홍 작가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를 ‘사건철학자’라 명명했다. 작품이 누군가의 의식을 새롭게 일깨우는 ‘사건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가정할 때, 사건을 시각화하는 작가는 ‘사건철학자’에 해당된다는 논리였다.

“견고하게 구축된 개념의 상징물처럼 보이는 ‘원고지’를 밟고 지나가면 기존의 질서를 밟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특정한 생각에 빠져들고, 그것이 또 다른 생각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홍명섭은 고정화된 권위에 도전장을 던지며 독자적인 예술영역을 개척해 왔다. 이때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분히 개념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내 작품은 개념 미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물감이나 파레트 대신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 그에게 개념은 주제를 풀어가는 도구일 뿐 개념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증폭이다. 개념은 생각의 증폭을 위해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개념을 이용해 ‘사건’으로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생각의 증폭을 이끌고, 종국에는 기존의 관념을 새로운 관념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흐름이 흡사 정-반-합이라는, 갈등과 대립의 과정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한 헤겔의 변증법을 닮아있다. “개념적 사고를 통해 또 다른 사고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동일한 작품을 다양한 전시장에서 선보여왔다. 한 공간에서 전시가 끝나면 해체하고, 다른 공간에 전시한다. 이때 조립과 해체, 그리고 재조립이 수반된다. 재료와 작업방식, 형상이 같다면 동일한 작품이다. 그러나 홍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해온 자신의 작품을 “같은 작품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하다”고 언급했다. “해체 했다가 다시 조립할 때 작업하는 나의 상태도 달라지고, 주변상황들도 미세하게 차이가 생긴다. 내 작업은 말하자면 ‘차이로서의 반복’이다. 수평이라는 실제와 관념이 물질과 운동으로 지속(기억)되고 현현되는 반복,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반복이다.” 그는 작품의 자리이동을 통해서도 ‘신작’과 ‘구작’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개념 비틀기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을갤러리 개인전 제목이 ‘토폴로지컬 레벨(topological level)’이다. ‘토폴로지컬(위상학)은 물체를 변형시켰을 때 물체가 가지는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것으로(여기에서 변형이란 휘고, 잡아 늘리고, 내려 누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변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원을 변형시켜 삼각형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삼각형과 원은 위상학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위상학은 탄성적인 유연한 사유가 전제되어 있다.

위상학은 홍 작가 작업의 핵심 토대다. 조각이나 설치 작품이 모두 위상학을 근간으로 한다. 작가는 탄성적인 사유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위상학을 근간으로 기존의 권위를 건드린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버선을 지어서 뒤집으면 마술처럼 바느질 흔적이 사라지고 매끈한 면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위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경복궁 근정전 뜨락에서 만난 바닥돌의 배치들에서도 신기했다. 그 기억들이 위상학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 같다.”

위상학의 탄성적(彈性的)인 면에 끌려 작품으로까지 끌어들였다. 그러나 사실 작가는 탄성적 사유자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길눈이 어두워 한번 간 길도 처음 가는 것처럼 생소해하고, 쇼핑을 해도 동선을 따라 효율적으로 하기보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가 토폴로지컬한 구조에 끌린 것은 아이러니지만 “토폴로지컬한 사유에 재능이 없어서 오히려 끌렸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나는 탄성적인 사유와는 거리가 있지만 작업을 통해서 언어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토폴로지컬한 상상과 사유를 대뇌에 직접적 자극으로 호소해 보려는 욕망이 강한 것 같다. 그것을 통해 기존의 관념에 의문을 이끌고 싶었다.” 을갤러리와 류병학 독립큐레이터가 공동기획한 홍명섭의 ‘토폴로지컬 레벨(level casting)’전은 내달 11일까지. 문의 053-474-4888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홍명섭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제4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 초대받으면서 국내외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다. 1995년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획전 ASIANA, 독일 슈투트가르트 펠바하 95국제 소형조각 트리엔날레, 폴란드 바르샤바의 아르스 폴로나 갤러리 2인전, 95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2003년 이탈리아 사보나 비엔날레, 2006년 스위스 빌 국제전, 2007년 독일 대사우 rainbow mapping projec 등 국내와 국제전에 초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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