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 승인 2020.06.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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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피어리 결혼정보 대표·교육학 박사
그해 겨울이 가고, 새 봄을 맞이할 설레임도 잠시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나타나 하루아침에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과학 공상영화에 나올법한 믿기지 않은 눈앞의 현실에 인간의 무기력함과 한계에 절망하고 방황했다. 세상을 단숨에 삼켜버릴 듯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당혹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새로운 경험은 서로를 경계하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2월 중순경 대구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세상의 이목이 대구로 집중되었다. 대구시민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심지어 대구지역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 조치 된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조선시대 역병(전염병)이 돌면 성밖으로 국민들을 쫓아내고 격리시켰다는 기록이 떠올랐다. 거리는 한산하고 도시는 적막함으로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불안을 가중시켰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미국에 사는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고 또렷한 어조로 나를 설득시키고 있었다. “친구야,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너의 성격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래. 너는 분명 사태의 시급함을 인정하지 않고 네 방식대로 아무런 대응도 안 할 거 같아 불안해. 대구가 이대로 가다가는 봉쇄 당할지도 모르니 마트에 가서 쌀이랑 라면 등 부식거리를 좀 사두어, 그리고 스트레스 받고 긴장 될 때는 달콤한 쵸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 그것도 좀 사고…” “그래 고마워,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께.” 나는 친구의 진심어린 걱정은 고마웠지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대구가 괴물도시처럼 언론에 비추어져 부산을 떠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했다. 나 혼자 살겠다고 사재기를 한다 한들 집 밖의 세상이 무너져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대구시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부에서 곧 대응책이 나올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가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힘들수록 시민들이 차분히 힘을 모아 같이 해결해야 된다는 평소의 지론이었다. 마음속으로 그동안 냉동음식이나 꺼집어 내어 요리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다섯 살짜리 여아가 마스크를 하고 동그란 눈을 뜨고는 종알거렸다. “코로나 무서워요 마스크 끼고 기침 나오면 손으로 코 막아야 돼요.” 젊은 엄마가 교육을 잘 시킨 것 같았다. 타지방에 있는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님이 걱정되어 ‘부모님의 탈대구’를 원했으나,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손사레를 쳤다. 본인 걱정보다 자식들이라도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내 걱정은 말고 당분간 대구에 오지도 말고 전화로 안부나 물으면 된다.”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곳곳에서 스스로 절제하고 동선을 체크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이 나타났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들로 남녀간의 안타까운 해프닝도 주변에서 벌어졌다. 결혼을 앞둔 처녀총각이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서로 탐색하다가 만남이 뜸해지면서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자연스럽게 헤어진 커플도 발생했다. 문자 메세지로 서로 마음을 나누다가 상대의 애틋한 마음을 알고 급진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라는 구호가 맞아떨어졌다. 뉴욕에서 잠깐 한국 부모님댁에 온 자녀들은 2주 자가 격리기간 동안 대구시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동받아서 영상으로 해외에 소식을 전했다. 미국 친구들이 햇반이나 각종 반찬, 생수, 신선한 과일까지 택배로 자가 격리자들에게 보내준 생필품 사진을 보고 ‘한국 브라보’를 외쳤다. 이제 코로나19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완화되었다. 기 듯 사는 삶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 공동체의 소중함, 국가관 등이 재정립 되었다. 일상의 소소함과 그리움이 그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신록이 우거진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오늘도 불타는 청춘들은 대구의 새로운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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