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로또 청약, 로또 취업에 분노와 좌절
[이효수 경제칼럼] 로또 청약, 로또 취업에 분노와 좌절
  • 승인 2020.06.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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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로또 청약’, ‘로또 취업’이 연일 언론을 달구고 있다. 로또는 능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단순히 운으로 횡재를 노리는 복권이다. 로또 청약, 로또 취업이 핫이슈가 된다는 것은 내 집 마련이나 취업이 개인의 노력 및 능력과 관계없이 운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든 내 집을 마련하든, 스스로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로또 청약, 로또 취업에 분노하는 것은 정부가 주택시장과 노동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집과 일자리에 로또를 만들어 예측 가능한 공정한 경쟁질서를 붕괴시켜 성실하게 노력해 온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이 횡재를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와 집이다. 내가 성실하게 노력하면 일자리를 잡을 수 있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과 주택시장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을 교란시켜 집과 일자리가 운에 의해 좌우되면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불안해지게 된다.

정부가 분양가를 시세에 비하여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통제하면서 ‘로또 청약’이 나타났다. 재개발 지역 주민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몇 년씩 노력하여 오래된 아파트를 마련하여 재개발이 되면서 깨끗한 새 집에서 살 수 있다는 큰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개입하여 분양가를 턱없이 낮추면서 재개발 대상 지역 주택 소유자는 오히려 재개발 분담금을 많이 내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재개발 아파트 청약에 운 좋게 당첨된 사람은 분양가가 시세에 비해서 턱없이 낮기 때문에 당첨되는 순간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벌게 된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역차별을 받는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이다.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근본적으로 주택 공급을 줄이고 주택 수요를 늘려서 주택에 대한 초과수요를 증가시키게 된다.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가 클수록, 일확천금의 시사 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려들게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22번에 걸쳐 주택정책을 발표했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가 강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집값은 크게 오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재임기간을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중윗값 기준, 한 채당 가격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1천500만 원(-3%) 하락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1억 3천400만 원(29%) 상승했는데, 문재인 정부 3년(2017년 5월~2020년 5월) 간 3억 1천400만 원 (52%) 폭등했다”라고 밝혔다.

‘로또 청약’과 더불어 ‘로또 취업’ 또한 핫이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일어난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인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의하면, 6월 25일 현재 문재인 정부 3년간 공공기관 비정규직 9만 1천30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는데, 올해 3월 기준 공공기관 임직원 수의 21.8%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특히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사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로또 취업’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경험을 쌓아서 정규직으로 진입하기 위한 디딤돌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은 한번 빠지면 정규직으로의 탈출이 매우 어려운 함정이다. 정규직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은 완전히 분단되어 있고, 임금, 근로조건, 고용안정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규직 노동시장은 치열한 공개경쟁을 거쳐서 진입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공개경쟁절차를 밟지 않고 간단한 면접이나 서류 전형으로 입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이 이처럼 극도로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무작정 전환하면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공정경쟁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공정한 공개경쟁이 보장되어야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성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여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 기업은 공정한 공개경쟁을 통해서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공정경쟁질서가 무너지면 빽이나 연줄이 없는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어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비정규직 전환자가 원래 정규직보다 많고 두 집단 사이에 임금, 근로조건의 차이가 크므로, 정규직 전환 후 노노갈등이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다. 정규직 전환자들은 근로조건 및 사내 복지의 동일 수준 보장과 임금격차 축소를 강하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공항공사의 노동비용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고, 공기업 총액임금제하에서 원래 정규직 일자리 감소와 처우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과 같은 정치적 접근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공부문에서 현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사전적으로 직군별 직무급 임금체계를 확립하고, 공개경쟁 절차를 거쳐서 진행해야 한다. 연공서열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고 단순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률적으로 전환하면 취업 공정성이 붕괴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기업은 인력 관리에 심각한 문제를 두고두고 안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실질적 감축은 고용 및 임금 시스템 등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는다면서 주택시장에 깊이 개입하고 비정규직을 줄인다면서 노동시장에 깊이 개입했지만, 오히려 집값은 급등하고 비정규직은 증가했다. 정책 실패를 넘어 ‘로또 청약’, ‘로또 취업’ 이슈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시장의 가장 기본 질서 원리인 공정경쟁질서마저 흩트려 놓으면서 성실하게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었다. 경제문제를 경제 원리가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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