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우울
흐린 날의 우울
  • 승인 2020.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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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엽 조정찬

비 소식 일기예보
가끔은 틀렸으면 좋겠다 여겼지만
예보는 역시 맞는 게 낫겠다

우중충한 시야
결단을 내리지 못한 빗방울들
첫 낙하 공수대원들 마냥 늘어서다

장미 서둘러지고 있다
변덕스런 장마야 와 봐야 알고
비 맞은 꽃잎 더 이쁘기만 하던데

김치전 부쳐 놓고
실없는 이야기 주절대다
귀 찢는 하드 락에 마음 찢긴다

찔끔대는 빗방울 속
갈무리되지 못한 아집 터져 나와
또 다시 욱신거리는 수술자국

믿음 옅어진 세상
갈수록 비어가는 주머니에
머릿속 덩달아 하애지는데

장대비 쏟아지면
모든 것 채워지고 붙으려나
저 멀리 먹장구름 한 떼 몰려온다

◇조정찬= 1955년 전남 보성군 출생. 서울법대 및 대학원졸업. 21회 행시합격. 법령정보원장역임. 저서:신헌법해설, 국민건강보험법, 북한법제개요(공저) 등.

<해설> 우주 삼라만상은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을 행복하게 보호하려 한다. 운명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는 삶의 본질을 통찰해 얻게 된 무욕과 허정[虛靜]의 세계로 포괄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의 일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늘 여전해서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별세계(別世界)를 구경해도 일상의 부재(不在)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한다. 먼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면 익숙한 장소들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제아무리 즐겁고 신나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누구나 일상(日常)을 그리워하고 일상에서 안식을 찾기 때문이다. 모든 일엔 박자와 가락이 있다. 자기감정을 다스리고 고난도의 훈련과 연마를 거쳐야, 인생의 박자를 제대로 탈 줄 아는 고수(高手)가 될 수 있다. 박자를 잘 타는 것은 제 기분대로, 멋대로가 아니다. 흘러간 박자 보다 앞에 오는 박자가 중요하다. 이미 놓쳐버린 지나간 박자에 허둥대면 앞에 오는 가락마저 놓치기 쉽다. 모든 존재는 필경 티끌로 돌아간다. 자신의 생을 천천히 거둬들이며 갈무리하는 바람 속에서 ‘부질없음’과 ‘비어 있음’을 발견한다. 세계 안의 모든 존재에게 닥치는 ‘조락과 소멸성’ 정서는 운명에 대한 순응에서 비롯된 맑은 슬픔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빛을 좇아 살았다면, 후반기에는 그림자를 돌보며 살아야 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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