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차출” 거짓말 후 자원
“코로나에 차출” 거짓말 후 자원
  • 한지연
  • 승인 2020.07.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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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본산’ 대구·경북 주역들-◇최호정 대구동산병원 간호사
예상대로 가족들 거센 반대
퇴근 후 병원 별관서 새우잠
초반엔 모든 게 부족해 ‘쩔쩔’
시민 도시락·편지 응원 ‘힘’
의료진 일상복귀 시 보호를
2차 대유행 대비 준비 필요
최호정 간호사
가족들에게 “코로나 전담 치료 간호사로 차출됐다”고 거짓말 했다는 최호정 간호사.

“코로나19 전담치료 간호사로 차출됐어.”

거짓말을 꺼내던 순간, 가족들의 얼어붙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차출’이 아닌 ‘자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기로 한 것이었지만 차마 사실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처럼 가족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제발 병원으로 가지 말아달라는 애원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반드시 방호복을 입어야만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보다 “환자들을 저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12년차 최호정(여·34) 대구동산병원 간호사는 지난 2월 26일부터 자원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간호하기 시작했다. 가족에 거짓말까지 해가며 자처한 일이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기도 부지기수였다.

병원 내에는 병실, 인력, 장비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신천지 대구교회발 집단감염 사태로 확진자 수가 감당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만큼 폭증하면서 근무환경은 전에 없이 열악해져갔다.

마스크, 방호복, 체온계 등이 모자라 쩔쩔 매야 했다. 일례로 공기정화호흡기(PAPR)가 부족해서 하루 1개 중환자실 간호사 위주로 사용하던 것을 1개를 가지고 몇 주씩을 이용했다.

정해진 프로토콜이 없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고, 모자란 인력에 근무 일정도 수시로 변동돼 정확한 근무 날짜가 제때 나오지 않았다.

쌀쌀하기만 한 2~3월, 한기가 올라오는 시멘트 바닥 위로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대구지역 파견 의료진은 호텔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지역 병원 의료진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감염 위험이 우려돼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개인 수납공간은커녕 잠금장치도 돼있지 않은 병원 별관 한편에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차려 먹기가 힘들고 휴게시간 없이 일을 하는데도 업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최호정 간호사는 “초반에는 정말 무방비 상태로 치료가 시작됐기 때문에 갖춘 것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며 “특히 간호사에 영양사, 청소, 보안요원, 이송 등 각 직종의 업무가 부담됐다”고 말했다.

방호복을 입는 것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려 방호복 안에 입고 있던 옷이 남김없이 젖어들었다.

고단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힘이 되어준 것은 시민들의 응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심하게 위축된 지역 경제에도 사비로 도시락을 보내주거나, 매일 저녁 익명으로 커피를 전달해주는 등이다.

수 없이 쏟아지는 의료진을 향한 응원의 그림, 편지,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졌다.

최 간호사는 “감사하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만큼 많은 관심과 후원이 있었다”며 “그 응원에 보답하는 길은 동료 의료진과 함께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최대한 시민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이어 최 간호사는 2차 대유행 전망에 따른 우려를 표하며 체계적인 확산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대구동산병원 직원들은 지난 2월부터 장기간의 코로나 환자를 치료해왔다”며 “현재 수도권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연쇄감염이 이어지고 있는데, 가뜩이나 피로도 높은 지역 의료진들은 근심이 클 수밖에 없다. 2차 대유행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치렀던 1차 때와는 달라야 한다”고 말문을 뗐다.

병상·인력·장비에서부터 일반 중증환자와 코로나19 치료 의료진 안전대책 등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 간호사는 “방어 단계별 병상 준비 지침과 의료진이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의료진 클린존을 마련해 환자 관찰과 소통이 가능한 시설도 있어야 한다”며 “간호인력, 특히 중증환자 간호 경력이 있는 인력들을 확대하고 충분한 휴게시간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호물품 질 개선 및 재사용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찾고 투명한 방호복 공급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의료진 일상복귀 시 보호방침이나 처우 문제도 구체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호정 간호사는 감염 확산 대응 최일선에 있던 간호사로서 이번 코로나19 사태 병원 현장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며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간호사는 “의료체계의 부족함과 탁상행정의 문제점, 병원 근무 직원에 대한 미흡한 처우 등이 있었지만, 동료 선후배 의료진과 소방 등 공무원, 생활방역에 최선을 다한 시민 등 사람의 힘으로 버텨냈다는 생각이 든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방역에 최선을 다 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개선안이 없는 채로 2차 대유행을 맞이한다면 언제까지 국민성만 믿고 힘겨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국민성에 정부의 제대로 된 정책이 함쳐진다면 더 다급한 상황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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