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못 막은 유행성출혈열, 이호왕 박사가 해결하다
미국도 못 막은 유행성출혈열, 이호왕 박사가 해결하다
  • 김종현
  • 승인 2020.07.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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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다 - (21) 한민족의 방역 DNA
6·25 전쟁 시기 유행성출혈열 발발
美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등 230명
공조 프로젝트 펼쳤지만 해결 못해
이 박사, 1975년 쥐의 폐장서 단서 발견
바이러스 분리 후 백신 개발도 성공
병원균 규명·진단법·치료제까지
‘삼위일체’ 이룩한 전무후무한 사례
노벨생리의학상-한반도
전세계적인 코로나 19 확산속에 동양의 질병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한민족의 방역 DNA가 주목받았다. 그림 이대영

최근 말라리아치료에 있어 클로로퀸이란 화학약품에 내성을 가진 병원균이 속출하자 식물이 가진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에 관심을 돌려 신약 제조에 나섰다. 물론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수천 년 전부터 진통제로 사용해온 양귀비꽃의 아편(opium)을 들 수 있다. 아편의 주성분은 모르핀으로 ‘아픔에서 벗어나 꿈꾸는 상태’로 안심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서 모르핀(morphine, C21H23NO5)이라고 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의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는 버드나무 잎으로 통증을 치료했다. 우연히 거북이에게 물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뱀이 버드나무에 몸을 비비는 걸 보고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즙의 성분이 진통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버드나무 껍질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아스피린의 원료인 살리실산이다.

독일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 1868~1946)이 1899년 바이엘제약회사에 근무하면서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C9H8O4)’을 합성하는데 성공함으로서 ‘아스피린’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아스피린은 세계 최초의 정제 의약품으로 식물 신약의 기원이 됐다.

또한 1820년 키나 나무껍질에서 키니네(quinine, C20H24N2O2) 성분을 추출해서 만든 말라리아 치료제는 1860년경 금계랍(金鷄蠟)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조선 말기 유학자 황현(黃玹, 1855~1910)이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서양에서 금계랍이 들어온 뒤로 사람들이 눈곱만큼 먹어도 학질이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우두가 들어와 어린아이들이 잘 자라고 금계랍이 들어와 노인들이 백수를 누린다’는 유행가가 퍼졌다.”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런 키니네도 말라리아의 내성으로 더는 듣지 않았다. 이후 효과가 더 뛰어난 클로로퀸이 개발되었지만 그마저도 저항성이 생겼다. 중국의 투유유 교수는 새로운 치료 물질을 찾기 시작했으며 1971년 개똥 쑥에서 아르테미시닌(artermisinin, C15H22O5)이라는 말라리아 치료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로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우리는 기원전 100년경에 이미 오늘날 백신(vaccine)에 해당하는 종두법(apocalypse)을 사용했다. 우리 선조들은 병원균(種菌)을 직접 인체에 주입하는 접종법(接種法)을 가장 과감하게 사용했다. 종두법은 오늘날 우리들도 잘 아는 방법인 약화한 세균을 직접 사람에게 접종하는 인두법(人痘法)과 소와 같은 가축에 접종해서 약화한 종균을 사람에게 2차 접종하는 우두법(牛痘法)이 있었다.

초기에는 환자의 고름이나 상처 딱지를 채취해 전파력을 약화시키고자 건조해 분말로 만든 다음 은관(銀管)을 사용해 더욱 세력을 저하시킨 뒤에 그 종균가루(vaccine)를 코로 흡입하게 하거나 팔 등에 상처를 내어서 접종했다. 이는 1568년 중국의 만전(萬全)이 쓴 ‘두진심법(痘疹心法)’에도 기술되었다.

이후 인두법이 개발되었는데 환자의 고름에서 얻은 세균을 살균성 금속인 구리(銅), 주석(朱錫), 비소(砒素), 나트륨(natrium) 등에서 약화한 다음 팔에 상처를 내어서 직접 접종했다. 이와 같은 인두법(variolation)은 중국을 통해 오스만튀르크(터키)까지 전해졌고, 1717년 터키주재 영국대사 부인인 매리 몬터규에 의해 영국에 전해졌다. 인두법은 효과적이었으나 위험성이 있어 보다 안전한 대안으로 1796년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우두법(牛痘法)을 만들었다.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까(vacca)에서 얻은 종균이라는 의미로 백신(Vaccine)이라고 했다.

광해군은 역병 대유행을 물리치고자 어의 허준(許浚, 1539~1615)에게 동양 의서를 편찬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 의학 대백과사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이 1610년 완성됐다. 이 소식을 들었던 중국은 대국체면을 살리고자 1740년 청나라 오겸에게 명해 두진심법요결에 한민족의 접종비법(vaccination)을 소개했다. 이후 종두법은 서양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역수입돼 1798년 정약용이 편찬한 마과회통 1828년 판본 부록인 종두기법에 처음 소개했다. 한편 1879년 지석영(池錫永, 1855~1935)이 일본을 통해서 우두법을 도입했다.

현대로 넘어오면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 적군보다 더 많은 병사의 생명을 빼앗아간 것은 유행성출혈열(hemorrhagic fever with renal syndrome, HFRS)이었다. 이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미국의 블루킹스 연구소 및 미 육군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2명과 230명을 투입해 거액의 공조 프로젝트를 펼쳤지만 아무런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1975년 이호왕 박사는 형광현미경으로 쥐의 폐장을 눈여겨보다가 해결 단서를 발견했다. 이듬해인 1976년 바이러스를 분리해냈으며 ‘한탄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1988년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렇게 이호왕 박사는 병원균 규명, 진단법 및 치료제(vaccine)까지 삼위일체를 끝마친 세계 최초병리학자로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겼다.

200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종욱(1945~2006) 의사가 80여 명의 후보자를 물리치고 제16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2003-2006)에 임명되었다. 1963년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대에 낙방한 뒤 절망감을 달래기 위해 입대했다. 병역을 마치고 한양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때 읽었던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처럼 살고자 뒤늦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해 1976년 졸업했다. 재학시절 한센병 환자를 위한 의료 봉사를 나갔다가 한센병 연구에 삶의 방향이 꽂혔다. 1981년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나병치료(treatment of leprosy)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 보건학 석사학위를 얻었다. 남태평양 사모아의 린든-존슨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현지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이때 세계보건기구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1994년 예방백신 국장을 거쳐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그는 세계 아동 백신 운동 사무국장으로도 일하며 저개발 국가의 소아마비와 결핵병 퇴치(Stop Tuberculosis)에 힘썼다.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에는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3-by-5 Project’를 추진했다. 2006년 5월 22일 과로(inner injury of brain)로 쓰러져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2011년 모교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사후에 명예 의학 박사학위를 서훈했다. 늘 “서양 코쟁이들과 싸우는 덴 그들의 고전(古典)이 최고 첨단무기다.”라고 말했던 그의 손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카뮈의 페스트(Pest)가 쥐어져 있었으며, 원어 테이프를 따라 입으로 낭독하곤 했다.

최근 코로나19가 지구촌에 확산하자 한국방역(K-quarantine)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 국외 문화연구원(gbcs.or.kr)의 분석에 따르면 1월 20일부터 4월 31일까지 42개국 436개 언론사에서 8천690건의 보도기사를 쏟아냈는데, 5천589건이 한국 코로나19 방역(K-방역)을 모범사례로 방출했다. 동양의 질병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한민족에게 방역 DNA가 내재해 있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사실 2015년 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때에는 질병관리본부(CDC, Korea)의 담당관들이 징계를 받았다. 이로써 ‘어떤 재앙이나 환란을 극복하는 비결은 유비무환’이란 교훈을 얻었다. i) 지난해 10월 30일 질병관리본부는 민방위훈련에서 ‘무명의 질병 대유행(Nameless Pandemic)’이란 시나리오에 기초한 대비훈련을 했고, ii) 지난 1월 20일 첫 번째 확진 사례(confirmed case)가 발생하자, 1월 27일 서울역사(驛舍)에서 방역관련자 및 바이오벤처 기업 등 20여 명의 실무자를 모아 진단키트 개발에 대해 긴급회의를 개최, iii) 2월 4일부터 2월 14일까지 4개 회사에 진단키트가 긴급 승인됐으며, iv) 2월 15일 코로나바이러스를 분양해 신약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곧바로 들어갔다. v) 마스크 착용을 권장했으나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 사례가 나온 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환자가 폭증함에 따른 초기엔 구매 혼란을 불러와 타이완의 마스크 배급제와 ‘전자 울타리(electronic fence, 電柵)’라는 확진 사례추적(conformed case tracing)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신천지교인의 확산도 2월 29일에 741명을 정점으로 기세가 푹 꺾였다. vi) 자가 진단(self-test), 자가 격리(self-isolation), 확진자 동선(전파동선 및 지정격리장소 이탈)을 관리하는 응용시스템을 만들어 ‘전자 방역(electronic quarantine)’을 완비했다. vii) 검사 시간을 줄이고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2월부터 승차 검진(drive-thru test)을, 3월부터는 도보 검진(walk-thru test)을 개발해 시행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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