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볼 수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멀리서 볼 수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 윤덕우
  • 승인 2020.07.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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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연화도(蓮花圖)
詩 ‘애련설’ 흠모작 ‘향원익청’
만개하거나 오므리거나
엇갈리게 그린 앞뒷면까지
연잎의 다양한 얼굴 보여줘
연잎 담은 병풍, 행복을 빌다
물고기는 풍족한 생활을
오리 한 쌍은 정다운 부부를
날으는 제비는 천하태평 기원
사람들은 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김춘수의 시에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마도 예전부터 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시인의 사명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화에는 은자(隱者)를, 모란에는 부귀(富貴)의 뜻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연꽃에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의미를 준 사람이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돈이(周敦?·1017~1073)가 연꽃이 만개하는 날 붓을 들어 연꽃의 덕을 칭찬했다.

그것이 ‘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애련설 愛蓮說)’이다. 주돈이에 의해 연방죽에서 이름 없는 풀꽃으로 뙤약볕을 견디던 연꽃이 ‘군자의 꽃’이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주돈이가 언명한 연꽃의 정의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다투어 주돈이의 정의에 공감을 표시했다.

연화도를 그리다보면 꼭 등장하는 싯구이니 같이 감상을 해보자.

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愛蓮說) - 주돈이(周敦?)

물과 땅에서 나는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晉陶淵明獨愛菊)/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했으나(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予獨愛蓮之)/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出於?泥而不染)/ 맑은 물 잔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濯淸漣而不妖)/ 속은 비었으되 밖은 곧아(中通外直)/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不蔓不枝)/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香遠益淸 亭亭淨植)/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可遠觀而不可褻翫焉)/ 나는 말하겠다(予謂)/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菊花之隱逸者也)/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요(牧丹花之富貴者也)/ 연은 꽃 중의 군자라고(蓮花之君子者也)//아(噫)!/ 국화에 대한 사랑은(菊之愛)/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적이 드물고(陶後鮮有聞)/ 연꽃에 대한 사랑은(蓮之愛)/ 나와 같은 이가 몇 사람인고(同予者何人)/ 모란에 대한 사랑은 많을 것이 당연하리라(牡丹之愛宜乎衆矣)

주돈이는 중국 북송시대의 대 유학자로서 송나라 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연꽃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으니 당연히 그 영향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여기 주돈이의 애련설에 화답한 그림이 있다.
 

향원익청-강세황
<그림1> 강세황 작 향원익청 견본 채색 52.5X 115.5cm 간송미술관 소장.

향원익청(香遠益淸)’의 제시(題詩)에서도 역시 ‘염계’라는 호로 주돈이를 칭하고 있다. 그림에 새겨쟈 있는 시의의미는 다음과 같다.

‘염계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린 연꽃 역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표암(濂溪先生謂蓮可遠觀不宜褻翫余則曰畵蓮亦宜遠觀焉. 豹菴)’

그림 ‘향원익청’에는 두 포기에서 자란 꽃과 잎사귀가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다. 세로로 긴 그림은 한여름 연못에서 어린아이 키만큼 웃자란 연꽃의 긴 줄기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형식이다. 앞쪽의 연꽃은 활짝 핀 상태로, 그리고 뒤쪽의 연꽃은 봉오리를 오므린 상태로 그려 연꽃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묘사했다.

한 줄기에서 솟아오른 널찍한 연잎 또한 앞면과 뒷면을 엇갈리게 표현하여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 백련임에도 불구하고 흰색 연꽃잎의 끄트머리에 붉은색을 찍어 발라 한껏 고매한 운치가 묻어난다. 배경에 흐릿하게 등장하는 수초와 뿌리 부분에 듬성듬성 펼쳐진 어린 연잎도 한여름 연못의 싱싱함을 전해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물며 연잎 위에 기어 오른 청개구리까지 발견하게 되면 금세라도 연꽃 아래서 퐁당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실감 난다. ‘향원익청’을 그린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주돈이의 ‘애련설’에 대한 흠모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그 뜻을 무시하고 감상용으로만 한정해서 본다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몇 해 전 필자는 서울 DDP에서개최된 간송미술관 특별전에서 “향원익청”을 실제로 보았다. 역시 원본을 감상하는 감동은 라이브 콘서트를 직접 보는 것의 현장감과 진배없을 것이다.

까만 상자에 그림에 스폿 트라이트 조명 하나만 비추고 너무나 신비스럽고 우아해서 그 그림 앞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자 이제는 불교에서의 연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불교에서의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는 꽃이며, 불교의 가르침을 잘 알려주는 상징이다. 이렇듯 연꽃은 불교의 상징인 만큼 그림, 경전 등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요,

혹시 ‘옴마니반메홈’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없으신가요?

누구나 한번쯤 들어 들어봤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옴마니반메홈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라는 건 모르시는 분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연꽃 그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발견한 또 하나의 빛나는 문장이다.

민화 연화도 속의 연꽃은 불교와 유교의 상징과 달리 다양한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연꽃이 어떤 소재와 같이 등장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진다.

물총새가 연밥을 쪼으면 다산과 출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연밥에 촘촘히 박힌 씨들은 귀한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인하득우(因何得藕)’를 의미하고, 그 씨를 쪼는 행위는 출세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연꽃과 물고기가 그려지면 해 매다 넉넉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기를 기원하는 ‘연년유여(連年有餘) ’를 뜻한다. 연꽃의 연(蓮)은 이을 연(連)자와 물고기 어(魚)자는 여유로울 여(餘)자와 중국 발음이 같아 바로 바꿔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연꽃과 물고기는 우의적으로 매년 풍요롭기를 바라는 의미가 된다.
 

행복한여름의연화도
<그림2> 박승온 작 행복한 여름의 연화도 지본채색 54X70cm 개인소장.

제비가 연꽃 위를 날아가는 그림은 천하가 태평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축원하는 ‘하청해안(河淸海晏)’의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형식의 연꽃 그림을 한 병풍에 담아 방안을 장식한다면 그 방의 주인은 “행복의 연못”에 사는 것이다. 연화도에는 연잎과 꽃뿐만 아니라 오리, 물고기, 새들이 함께 등장하는데 대부분 한 쌍으로 표현된 생물들은 정다운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이러한 이유로 연화도는 우리 민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 조형적 표현도 다채로웠다.

이제 곧 연꽃의 계절이 시작 되겠지. 길을 지나다 연못을 만나게 되면 목을 빼고 꽃봉오리가 열렸는지 살펴보게 된다.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진한 초록빛을 띠는 큰 연잎들 사이로 흰 연꽃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긴 줄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시원해지고 빨리 그 풍경으로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은 조급증마저 든다. 바빴던 하루를 마감하며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연꽃이 피어나길 기다려 보며 필자도 행복한 연못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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