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암전
  • 승인 2020.07.0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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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숙

초겨울 추위가 매워지기 시작하면 짝이 없는 사람들은 외투를 찾듯 짝을 찾는 눈이 커지네. 지하 동굴 안은 달려 올 뜨거운 전동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서성이네. 의자에는 세월이 뺏어간 무게에 몸이 졸아든 할아버지, 할머니 나란히 앉아있네. 할아버지는 큰 서류가방을 안으셨고, 할머니는 큰 보퉁이를 품으셨네. 날씨로 인사를 묻는 할아버지 호기심이 두근거리는데 할머니 대답은 벽에 걸린 오랜 모자 같네. 할아버지 옛날이야기가 길어지고 할머니의 텃밭이야기, 띠 이야기, 나이 이야기들이 굴비 엮듯 함께 엮이고 있네. 할아버지 갑작스런 대시가 시작되네. 홀아비인 자기의 새끼손가락이 되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 하네. 마른하늘에 날벼락 이라는 듯 할머니 놀란 토끼 눈이 공중에 떠올랐네. 삐죽 튀어나온 입은 자크로 닫혀 버렸네. 할아버지 물음표는 모두 되돌이표가 되어 돌아가고 할머니 돌아앉은 등 뒤에는 찬바람만 휘잉 날아오르네. 먼데서 전동차가 힘차게 들어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지네. 그러나 달려간 곳은 서로 다른 칸이었네. 열차가 덜컹대며 떠나고 할아버지 기대와 할머니 외면도 같이 떠났네. 우연히 흘러온 겨울 이야기는 빈 의자에 기적 소리만 남기고 산산이 흩어졌네. 지하 동굴 속은 암전이 되네.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네.

◇설현숙= 한국시민문학 협회 낭송부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대전 ‘아침의 문학’ 시 낭송대회 최우수 상을 비롯해 전국 자치센터 동아리 대회 사극 대상 등을 수상 한 바 있다.

<해설> 인간은 영원한 경이이자 수수께끼다. 인간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잠시 희망을 접고, 길을 찾기 위해 잠시 길을 헤매는 우리네 삶. 원하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두려움이 파먹은 속은 빈 땅콩 껍질일 뿐이다. 부디 망각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우리는 충분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죄의식이나 수치심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내 이름으로 된 잘못된 열정을 용서하자. 어둠 저켠으로 향하는 시간, 새로이 안전지대가 끝나는 지점으로 가면, 내 섬들은 그리운 것들을 세며 물속에 잠긴다. 외로움은 오차범위 안의 표적일 뿐, 오지 않을 것들을 기다리며 인간이란 무엇일까. 설원에 울음을 묻는 늑대처럼 외톨이가 되어도 기어이 살아남은 것들이 기특하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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