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공짜는 위험하다
[박명호 경영칼럼] 공짜는 위험하다
  • 승인 2020.07.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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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99.5%, 13.6조 원, 0.2%. 5월 4일부터 한 달 동안 실행한 국가재난지원금의 지출성적표다. 지난달 행정안전부(6월 7일 집계)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률이 가구 수 기준으로는 99.5%, 지원 금액은 13조 6천억 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당초 총 예산의 20% 가량의 기부금을 예상했지만, 실제 기부금은 총 예산의 0.2%인 282억 원에 그쳐 목표치의 백분의 일에 불과했다.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해 서둘러 집행한 재난지원금의 지출 결과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거의 모든 국민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자신들이 이미 긴급재난을 당했다고 믿거나,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재난지원금의 사용처다. 즉 지원금으로 무엇을 사고, 어디에서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끝으로 재난지원금 지출이 기대한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큰 예산을 투입한 국가재난지원금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쉽지도 않다. 그러나 이번 정책이 ‘반짝 소비’에 그쳐 그 효과가 이미 끝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부재정정책에서 가장 치명적인 고비용저효율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난 구호금은 당연히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책에 따르면전 국민이 예외 없이 코로나19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따라서 국민 모두가 구호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말 모든 국민이 구호금을 받아야할 처지에 놓인 피해자인가.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이다. 더구나 많은 지원금이 긴급구호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곳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언론보도를 보면 상당수 사람들이 지원금을 ‘공돈’으로 여기고 긴급재난의 해소와는 거리가 먼 소비를 했다고 한다. 물론 지원금을 어려운 이웃이나 단체에 기부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가의 자전거를 사거나, 비싼 와인이나 한우를 사 먹는데 썼다고 한다.

지원금으로 소고기를 사먹었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재난지원금이 긴급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구호금으로써의 정당성을 얻고 효과를 실현하려면 지원금은 응당히 기초생활비 지출에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골목상권을 비롯한 소상공인 점포들의 매출이 늘어나고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인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 점포의 매출이 늘기는커녕 면세품 재고 판매에 따른 해외 명품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희한한 일도 있었다. 최근 통계를 보면 5월 한 달 동안 반짝 좋아졌던 매출이 6월에 들어서면서 침체를 보이면서 골목상권의 경기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그래서 위기극복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은 내수 경기를 호전시키는데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소기업벤처부의 주도 아래 내수 진작을 위한 또 하나의 거국적인 행사가 지난달 26일부터 열리고 있다. 이달 12일까지 계속되는 이른 바 ‘대한민국 동행세일’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유통업체와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해 거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대형마트는 초저가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전국 633개 전통시장과 상점가도 동참한다. 우리 고장에서도 지난달 26∼28일 3일간 동대구역 광장에서의 현장행사를 시작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이 행사로 내수 수요가 크게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는 서민경제를 살리고 소비를 진작시켜 나라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장사가 잘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사는 상인이 하는 것이고, 구매 결정은 소비자가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이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정책당국은 장사와 소비에 어려움과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부족한 점은 채워주고 불필요하거나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적시에 해소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올바른 소비환경을 만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지도력’이 가장 중요하다.

나라경제는 생산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앞장 서야 살아난다. 수출도 그렇고, 고용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힘도 결국은 기업에서 나온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시적, 단발적 소비촉진 이벤트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나 거국적 가격할인행사는 장래의 소비를 조금 앞당겨 구매하게 하는데 불과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칫 소비자들의 공짜심리만 부추길 수도 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인생에서 대가 없는 공짜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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