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
  • 승인 2020.07.0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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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혁
신경과 원장,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외로움과 악플의 고통 속에서 끝내 세상을 스스로 등지고 만 유명 걸그룹 가수 구하라는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남겨 주었다. 구하라가 아홉 살 때 집을 나간 친모는 그 이후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양육의 의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혈연,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하라의 재산 일부를 상속받는 것에 많은 사람들의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와중에 구하라와 비슷한 사례가 전북에서도 일어났다. 소방서 소속 응급구조 대원으로 일하던 딸이 업무상 스트레스성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하자, 32년간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생모가 1억원가량의 유족 급여를 타가게 된 것이다. 국민동의청원까지 하며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소위 구하라 법안을 발의하였으나 안타깝게도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법과는 관련이 없는 의사인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전공의 시절에 겪었던 한 환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 젊은 여성환자가 수술 후 식물인간이 되었고, 재활치료와 욕창치료를 위해 필자가 전공의로 근무하는 과로 전과 되었다. 환자의 남편은 처음에는 열심히 간병을 하였으나 몇 달 후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년간 환자의 노부모가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였다. 소변 관리 및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 간병은 연로하신 노부모에게 쉽지 않은 일 이였다. 수년간의 긴 의료소송 끝에 환자측의 승소로 병원으로부터 수 억원의 보상금을 받아 퇴원하여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였다. 2-3주 후에 노부부가 병동에 찾아와서 간호사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음식을 주면서 몇 일전에 딸이 사망하였다고 말했다. 이후에 들은 얘기로는 어이없게도 의료사고 보상금 중 많은 액수가 이혼은 하지 않은 채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돌아갔다고 한다.

긴 시간 자식을 간병하느라 노부모의 한층 깊어진 주름과 나날이 구부려가는 허리를 보았기에 필자는 당사자가 아님에도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법이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담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구하라법 폐기에 이토록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공정하지 못함에 분하고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구하라와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한번쯤 겪어야 했던 불공정함에 대한 자신만의 억울함이, 혹은 방관자로서 느껴야 했던 비겁함에 대한 죄책감이 우리 모두를 구하라가 되어 분노하게 하는 것이다.

또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족의 의미가 많이 달라진 경향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가족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핵가족 또는 1인 가족이 늘어가게 되면서 그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시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도 있지만 철저한 외면을 받기도 한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에 공정한 평가를 법이 최소한이라도 해주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에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그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구절이 있다.

구하라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족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다. 그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인지, 우리가 선택하고 노력해야 될 수 있는 ‘특별한 인연’ 인지를 말이다.

21대 국회에서는 부디 구하라법의 통과함으로서 그 질문의 답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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