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과 변주 사이
원형과 변주 사이
  • 승인 2020.07.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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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매주 금요일 밤 우리의 귀를 호강 시켜주던 팬텀싱어 시즌3가 끝이 났다. 이 프로그램은 음악적 아우라가 대단한 젊은이들로 인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한편 오페라에 헌신하는 일부 선배들은 아쉬움을 동시에 표했다. 첫째도 소리, 둘째도 소리, 셋째도---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음악성이 너무 좋다. 소리보다는 가사, 선율 그리고 그 곡의 색채감을 표현하는데 훨씬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게다가 하나같이 멋진 외모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런 한편 미래 한국 음악의 보석들이 너무 일찍 크로스오버 영역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것은 바람직한가. 혹 이것이 오페라의 진면목을 호도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들을 많이들 한 것 같다.

결과는 카운터 테너 포함 성악가 4명으로 이루어진 ‘라 포엠’이 우승 했다. 그러나 생방송으로 진행된 결승 최종 라운드 보다는 한 주일 전 방송된, 결승 1라운드 무대의 ‘라비던스’가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 소리가 어우러진 이 팀의 음악은 크로스오버의 전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이 팀은 젊은 국악인 중 나름 팬 층을 형성하고 있는 고영열 외에는 각자의 영역에서 아직 미완의 대기(?)인 참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음악적 완성도가 대단한 다른 그룹의 멤버들에 비해 맨 파워가 약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비던스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 고영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남도민요 흥타령은 우리 소리, 우리 음악이 가진 상품성, 매력을 만개 시켰다. 평소 무심히 듣던 이 노래의 새로운 면모를 우리는 영접했다. 결승 라운드 총 12곡의 노래 중 이 곡이야말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 한 기념비적 음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소 작위적인 모습이 없지 않았지만 오직 음악,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그리고 우리 소리가 이렇게 화성적이고 화려해 질 수도 있다는 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승 팀 ‘라 포엠’은 소리에는 자신 있는 멤버들답게 변신을 거듭했다. 거의 대부분의 크로스오버 팀들이 극한의 고음으로 끝을 맺는 것과는 달리 결승 1라운드에서 보여준 ‘자우림’의 노래를 속삭이듯 불러 잔잔하지만 진한 여운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점이 다른 팀과의 차별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멋진 상남자 전설의 테너 유채훈과 정상(?)의 바리톤 정민성이 다른 두 비범한(?) 멤버를 감싸 안아, 남다른 안정감과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강점이었다.

팬텀싱어 시즌 1,2에 비해 이번에 유달리 기량이 뛰어난 참가자가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솔로 중심의 예선 라운드는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진행 될수록 즉 앙상블 중심으로 갈수록 오히려 각자가 가진 빛이 조금씩 바래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범한 솔리스트가 평범한 앙상블 멤버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일부 팀은 빛나는 성악가가 있음에도 다소 평범한 크로스오버 음악의 한계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러한 하향 곡선이 결승 1라운드를 거치며 급격한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웠다.

아무튼 이러한 멋진 무대로 인해 언택트 시대의 금요일 밤,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은 틀림없다. 다만 나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었다. 크로스오버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의 모든 재료 즉 선율, 가사 그리고 화성까지 대부분 달콤하고 아름다워서 중독성이 강하다. 반면 클래식은 인공 조미료가 빠진 음식 맛? 너무 지나친 표현인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원 재료가 훌륭한 음식은 양념을 가볍게 하더라도 씹을수록 점차로 깊은 맛이 올라온다. 그러나 이러한 맛을 모르는 사람 즉 온갖 양념으로 맛을 낸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이는 진정한 미각의 세계에 들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의 빛나는 멋진 후배들이 크로스오버에 일찍이 도전하는 것에 다소 걱정이 드는 것이다. 좋은 무대가 귀하니 영역을 넓혀 보겠다는 것에 잘 해보라고 등을 두드려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저렇게 좋은 소리와 음악성으로 다소 심심한 맛이라도 마다하지 말고, 진득이 곱씹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술가들은 살아서 보다는 훗날 그의 세계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당대의 흐름을 따랐으면 보다 쉽게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예술관을 지키느라 삶의 고난쯤이야 아랑곳 하지 않았다. 끝끝내 그대로 묻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 틈에서 별들이 쏟아났다. 오늘 날 우리는 그 별빛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공립 예술단체는 변주에 맛들이지 말고 원형에 천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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