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낙동강399
노인-낙동강399
  • 승인 2020.07.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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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수

초겨울 햇살 아래 마른 낙엽 졸고 있다

한 점 물기 없이 다 증발한 무심한 빛

늪으로 오도카니 앉은

허연 강의 빈 껍질

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린 눈은

한 생애 굴곡 굽이 어드메쯤 멈췄을까

담장 위 까치밥보다

더 작게 웅크린 강

◇서태수=《시조문학》천료, 《문학도시》 수필, <한국교육신문> 수필 당선, 수필집 『조선낫에 벼린 수필』 외, 낙동강 연작시조집 『강이 쓰는 시』 외, 평론집『작가 속마음 엿보기』, 낙동강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외

<해설> 긴긴 어둠의 강을 건너 겨울이 들면 추억은 화병 속에 응고되고, 마른 망각의 부스러기들을 터는 자국마다 그리움을 닮은 무늬들이 부풀어 오른다. 한때는 무언가의 일부였을 허연 강의 빈 껍질들은 지상으로 내려온 별. 이 세상으로 오기 전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슬픔의 무게를 재는 시간, 외로움을 알리기 위해 우리도 강이 되는 걸까. 그 옛날 강바람 솔솔 불어오면 아기 울음 재우고 아궁이 삭정이 타는 소리도 묻혔다. 저 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 언어의 무게를 빼는 일. 오직 강물 위로 떠오르는 것들만이 내 섬이 되었다.인생은 곧고 쭉쭉 뻗은 길만 가다가, 예측 못한 곡선길이 생에 한번 이상은 나타난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강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도움 받아서라도 회생할 수 있을까, 힘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외쳐야 했다. 낯설지만 따뜻한 손길이 선뜻 내손을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노라면 감정이나 느낌보다 진실이 중요하지만, 사람이 감정이 메마르면 비인간적이라고 한다. 감정과 느낌만을 중요시하면 진실을 외면하게 되어 악의 길로 접어드는 지름길이 펼쳐진다. 너와 나의 악은 끝이 없었다.인간의 세계와 맞닿은 곳은 꿈의 세계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이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에게 더는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게 사람이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하지 말고,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하자. 그러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은 우리들이었다. 인간의 진정한 꿈은 삶 그 자체를 꿈꾸는 것이다.-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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