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사이 ‘끝없는 모순’…021갤러리, 정희민 개인전
가상과 현실 사이 ‘끝없는 모순’…021갤러리, 정희민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0.07.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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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미지 캔버스 옮겨
회화성 돋보이는 작품 구사
인류가 느끼는 혼돈 시각화
정희민-작
정희민 작 ‘My Old Faded Pallete’

4IfWeEverMeetAgain
정희민 작‘If We Ever Meet Again’

과거에는 없고, 현대에는 있고, 미래에는 획기적으로 확장될 분야는? 의심의 여지없이 디지털로 대변되는 가상세계가 지목된다. 지금은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가상세계는 미래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치부됐다. 30대 초반인 작가 정희민의 성장기는 가상세계의 태동과 성장기와 궤적을 같이 해 왔다.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이행하던 1990-2000년대 초반에 유년기를 보냈다. 때문에 나의 모든 충동과 선택들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선망이라는 양극단의 욕망을 내재한다. 그 개인적인 상황을 작품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순수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 사이를 무시로 넘나들며 살아간다. 그런 작가가 작업을 막 시작하면서 가상과 현실의 관계를 작업의 주제로 삼은 것은 꽤나 설득력을 얻는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감각 확보에 대한 주제는 사회적인 담론이 된 지 오래인 까닭이다.

“작품을 통해 디지털을 문명 둘러싸고 현생 인류가 당면한 상황을 감각적인 상황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서사가 가상과 현실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표현으로는 비물질 대 물질의 대립이다. 작가는 이 명료한 주제를 명료한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가상세계의 이미지를 물질에 해당하는 평면 위에 올리고 그리는 행위와 현실의 물성들을 중첩하며 절묘한 대척점을 찾아간다. 이른바 물질에 의한 비물질의 구현이다.

이를테면 스크린 안에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작가의 몸 행위로 스크린 밖으로 꺼내어 캔버스에 옮기며 가상의 세계에 공감각을 불어넣으며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정교하게 중첩하고 증식해도 가상세계가 현실세계가 될 수 없듯, 비물질이 물질이 될 수는 없다. 작가가 “작품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비물질이 물질이 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는 멜랑꼴리”라고 했다.

가상이 현실이 되려면 감각을 획득해야 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고, 개념적으로 흐를 개연성이 짙은 형상 확보에는 의욕을 뺀다. 대신 가상과 현실의 중첩 과정에서 물질을 떠올릴 수 있는 촉감 등의 감각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빠지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은유해간다.

“몸을 가진 인간이 디지털 공간에 적응하도록 흘러가면서 겪는 갈등을 감각적인 상황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디지털 이미지를 소재로 작업하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지극히 회화적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한 가상의 이미지를 아크릴, 오일, 에어브러쉬 등의 다양한 물성을 가진 재료로 회화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지우기와 덧대기와 중첩 등의 작가적인 행위에 의해 실재와 가상 세계는 더욱 극명한 대비로 흐르게 된다.

작가에게도, 관람객에게도 논리보다 직관을 발동케 한다. 형상보다 물질적인 요소들의 중첩으로 이질적인 가상과 현실 세계를 대비시킨 까닭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정성을 기울이는 분야는 물성. “서사보다 직관으로 보고 느끼는 작업이다. 재료의 물성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021갤러리 쇼윈도우 공간은 작가의 작업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쇼윈도우 유리 벽면에 디지털 공간에서 확보한 이미지를 드로잉처럼 표현하고, 그 너머의 벽면에는 작가의 신체적 행위로 그린 회화 작품이 걸렸고, 작품이 걸린 벽면은 격자무늬를 벽지처럼 붙였다.

“비물질 이미지와 물질적인 요소들을 뒤섞어 공간감을 확보했지만 멜랑꼴리하다. 그런 상태는 우리가 가상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 겪는 모순과 다르지 않다.” 021갤러리 정희민 개인전은 8월 14일까지. 053-743-021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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