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군의 아들’ 로널드 로스, 말라리아를 정복하다
영국 ‘장군의 아들’ 로널드 로스, 말라리아를 정복하다
  • 김종현
  • 승인 2020.07.15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 노벨상을 품자 - (23) 모기와 노벨생리의학상
인류 최대의 적, 모기
로마 수세기 걸친 전염병 원인
알렉산더 대왕도 모기 물려 사망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자
전투보다 모기에 더 많이 죽어
현재도 매년 100만명 목숨 잃어
말라리아와 싸운 영웅
로널드 로스, 1857년 인도 출생
군의관 된 후 말라리아 연구
노벨생리의학상-말라리아균
인류를 괴롭힌 말라리아균의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탔다. 그림 이대영

모기는 ‘인류 최대의 적’으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기에 대한 인류의 증오와 원한은 대단한 듯하다.

동양에선 ‘모기 보고 칼 빼기(見蚊拔劍)’, 서양에서는 ‘모기에다가 대포를 쏜다(Firing a cannon against a mosquito)’는 속담이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 멀게는 세계정복에 나섰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of Macedon, BC 356~323)이 BC 323년 인도 정복을 눈앞에 두고 모기에게 물려서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후의 명작 신곡(神曲)을 쓴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도, 영국의 독재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 ~1658)도 모기로 생명을 잃었다.

도시 로마(Roma)는 늪지대로 모기 서식의 최적지였다. 마르쿠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106~43)는 그곳을 역병의 도시(Urbs plaga)라고 했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Aphrodite Temple)이 있는 도시, 고린도(Corinth)가 모기로 인해 황폐화하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 왕국이 1431년 이후 사라져 1850년 6월 프랑스 가톨릭 신부 샤를 에밀 뷔요(Charles Emile Vuilot)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419년간 땅속에서 묻혀 있었다. 그곳이 저주받은 유령의 도시(Haunted City)가 된 건 모두가 모기에 의해 죽었거나, 아니면 살고자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모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Panama Canal) 건설을 포기해야만 했다. 즉 1881년 건설을 시작했으나 모기로 인해 1천 200명이 사망하자 1884년 중단했고, 이후 미국이 인수해 완공했다. 가깝게는 제1, 2차 세계대전 전쟁 중에 모기로 죽은 사람이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100배는 많다. 의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도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인류가 모기로 인해 생명을 잃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시민은 수 세기 동안 모기로 인한 전염병에 시달렸다. 로마제국 말기 이탈리아를 정복하고자 침공했던 훈족(Hunnen)이 몇 차례 포기한 것도 말라리아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훈족은 로마를 모기에 의해 전염병이 창궐하는 ‘나쁜 공기(Malum caeli)가 자욱한 나라’라고 했다. 나쁜(mala) 공기(aria)라는 이탈리아어가 합쳐져 말라리아(malaria)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게르만(German)도 여러 차례 로마를 침략했으나 끝내 말라리아 장벽에 막혀 영원한 수도(item aeternam)로마를 손아귀에 넣지 못했다.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모임으로 열쇠가 있어야 들어가는 방을 의미하는 콘클라베(Conclave)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도 모기의 먹잇감이 되었다. 1048년 교황 다마소 2세(Damasus PP. II)는 선출된 지 23일(1048년 7월 17일~8월 9일) 만에, 그리고 1590년 우르바노 7세(Urbanus PP. VII)는 2주 만에 선생복종(善生福終)했다. 1623년에는 각국에서 소집된 추기경 10명이 발병해 8명이 사망하는 등 대략 10세기 이후 교황 130명 가운데 22명이 모기로 선종(善終)했다.

17세기 남아메리카로 선교를 떠났던 선교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말라리아였다. 페루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선교사들도 말라리아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곳의 원주민들이 말라리아에 걸리면 ‘키나’라는 나무껍질을 달여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병에 걸려 몹시 심한 갈증을 느꼈던 한 원주민이 키나 나무 둥치 주변 물웅덩이의 물을 마셨는데 마법처럼 열이 내려간 뒤로 키나 나무껍질을 말라리아 치료에 써왔다고 한다. 그러다 1630년경 유럽에 말라리아가 유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교사들이 키나 나무껍질 가루를 유럽으로 보냈으며 사람들은 이를 예수회 나무껍질(Jesuit bark) 혹은 예수회 가루(Jesuit powder)라고 불렀다. 영국 국왕 찰스 2세(Charles II)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이 가루를 먹고 회복했으며, 중국에도 전해져 청나라 황제 강희제(康熙帝)도 말라리아에서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키니네 가루는 맛이 너무 써서 좀 더 쉽게 섭취하기 위해 탄산수에 섞어 마셨는데 이것이 토닉워터(Tonic Water)의 시작이다. 토닉워터에 진을 넣어서 만든 것이 바로 진토닉이다. 진토닉(Gin Tonic)은 영국 제국주의를 확장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1820년 나무껍질에서 알칼로이드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키니네라 이름을 붙였으며 중국에서는 음을 따 금계랍(金鷄蠟)이라고 했다. 1856년 윌리엄 퍼킨(William Henry Perkin, 1838~1907)은 최초로 키니네의 분자구조(C20H24N2O2)를 밝혀냈다. 그 후 88년이 지난 1942년 하버드대학교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 1917~1975)가 키니네 인공 합성에 성공한다. 그는 유기합성의 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1956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한편 대영제국은 키니네(quinine)를 전략 약품(strategic drug)으로 앞세워 알렉산더 대왕이 실패했던 모기의 왕국 인도의 철옹성(鐵甕城)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인도인들에게는 그렇게 신비한 키니네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인도사람들에게 말라리아는 천벌로 여겨졌다. 그런데 1902년 인도에서 출생한 영국의 병리학자이자 기생충학자인 로널드 로스(Ronald Ross, 1857~1932)가 “말라리아와 싸워 이길 기반을 마련하고 유기체의 비밀에 접근해서 대처 방법론을 규명”했다는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는다.

로널드 로스는 1857년 5월 인도 히말라야산맥 남쪽 기슭 알모라(Almora)의 작은 마을에서 영국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명의 자녀 가운데 장남이었던 그는 8살에 영국으로 보내져 와이트(Wight)섬의 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라이드 초등학교(Primary schools at Ryde)를 다녔다. 1869년에는 스프링 힐 기숙학교(boarding school at Spring Hill)에 들어갔으며 어릴 때부터 문학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873년 17세 때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입학시험에 1위를 차지했지만, 런던의 성(聖) 바솔로뮤 병원 의학교(St. Bartholomew’s Hospital Medical College)에 입학한다. 1875년에 졸업했지만, 의사 시험은 통과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기 여객선의 의사로 일하던 그는 다시 의학 공부에 매진해 1881년 인도의 군의관 시험에 합격하고 육군 의과대학에서 4개월간 훈련을 받은 후 인도에 군의관으로 부임한다. 1883년에는 방갈로르 주둔지에 부임했다. 이후 영국으로 잠시 돌아온 그는 1888년 6월부터 1889년 5월까지 외과 의사로서 왕립 의과대학의 공중보건학 졸업장(Diploma in Public Health)을 받고 연구 휴가를 얻는다. 평소 말라리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클라인(Emanuel Edward Klein, 1844~1925) 교수의 세균학(bacteriology) 강의를 수강했다.

군의관으로 종사하는 동안 자투리 시간을 내어 말라리아에 관한 연구를 했다. 1892년 말라리아 중간매체 모기, 특히 아노펠레스 모기(Anopheles mosquito)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고, 1893년 결국 모기의 침샘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을 발견했다. 그날 노트에는 “오늘은 신을 달래는 날. 내 손안에 놓인 상체, 놀라운 것, 칭찬 받다. 그의 비밀스러운 행위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난 네 교활한 씨앗을 발견했어. 오! 백만 살인의 죽음. 나는 이 작은 놈을 안다(O million-murdering Death. I know this little thin).”라고 적혀있다. 1894년 알퐁스 라브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 1845~1922)과 패트릭 맨슨(Patrick Manson, 1844~1922)의 학설을 기반으로 전파과정의 생태환경을 뒤집어 살폈다. 1902년 리버풀대학 열대 위생연구소(Liverpool School of Tropical Medicine) 교수로 임명, 1912년에는 런던대학 부속병원(London University Hospital) 열대병 의사가 되었으며 1926년에 자기의 이름을 딴 로스 연구소(Ross Institute and Hospital for Tropical Diseases)를 설립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