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스토리텔링 갖춘 화폭 소재, 감성 ‘톡톡’ 건드린다
상징·스토리텔링 갖춘 화폭 소재, 감성 ‘톡톡’ 건드린다
  • 윤덕우
  • 승인 2020.07.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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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효제문자도
‘효제충신예의염치’ 소재로 그린 문자화…숙종·영조 때 보급
본래 중국서 유래했지만, 표현 방식·양식은 조선서 개발한 것
문자 孝에는 잉어·귤, 悌에는 할미새가…中 고사 상징물 인용
세상이 별스러운 일들로 길 위에 장맛비 떨어지듯 시끌시끌하다. 하나의 사건에 찬반으로 일어나 저마다 자기 말이 옳다고 난리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누구나 지켜야 할 일만 잘 지키면 될 것을….

문자도는 한자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형예술로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 기억나시죠? 어릴 적 특별한 날 먹었던 중국집 짜장면. 그 뻔한 인테리어, 붉은 바탕의 금빛 글씨 福 . 좀 뜬금 없지만 문자도의 단편적 역할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림1. 효제문자도 박승온 작 각 30X40cm 지본채색.
그림1. 효제문자도 박승온 작 각 30X40cm 지본채색.

 


다시 문자도로 돌아오자.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아 시끄러운 세상! 예전에는 어땠을까?

우리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것들을 글씨를 이용한 그림을 통해 의미를 형상화하여 글을 잘 모르는 민중에게 그림을 통해 문자의 의미를 전달하였다. 다시 말해 단지 문자의 읽기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맞추어 가르치는 그림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그림을 윤리 문자도, 혹은 효제 문자도라 부른다.

효제 문자도의 주제는 유교의 삼강오륜의 8가지 덕목을 담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이다. 이 여덟 글자는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간의 우애, 나라에 충성, 사람 사이의 믿음, 올바른 예의, 옳은 것을 좇는 변치 않는 의리, 자신의 분수를 아는 청렴함과 절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배우고 따르도록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문자도는 조선시대 유교 국가로서 윤리 규범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민화의 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18세기경부터 사대부가의 생활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19세기경에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신분질서가 해체됨에 따라 일반 서민들에게 널리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문자도는 대부분 병풍으로 제작되었으며, 효제도(孝悌圖)와 백수백복도(白壽百福圖)가 주종을 이룬다.

그 중에 효제 문자도는 조선시대 주자가 대성한 성리학의 주요 텍스트인 ‘소학’이 조선 사회에 중시된 것을 배경으로 탄생하였으며 ‘소학’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에게 크게 중시되어 ‘대학(大學)’을 읽기 전 아동은 물론, 성인들의 일상생활 규범을 요약한 서적으로 중시되었다. 게다가 조선 초기 왕들뿐 아니라 후기의 숙종, 영조, 정조 등 왕들이 중시하였고, 세자 교육을 위한 중요 교재이기도 했다. 여러 상황을 볼 때, 효제문자도는 숙종과 영조 때 궁중에서 왕세자 교육을 위해 도화서 화원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효제문자도가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된 조선왕조가 성리학의 대성자 주자朱子에게 바친 경의, 주자의 효제충신예의염치 여덟 자 필적이 조선에 전래된 것, 기타 중국의 각종 문자화가 전래된 상황 등을 배경으로 한다. 효제문자도의 성립 시기를 숙종과 영조 때로 추정하는 이유는 초기 효제문자도에 그려진 도상이나 양식이 정조 대인 1797년에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보다 선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열한 예송을 거쳐 성리학이 조선화 된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효제문자도는 이러한 성리학적 규범이 조선시대 왕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것을 보여 주는 시각적 증거이다. 그런데 처음 도화서에서 그려진 효제문자도가 일반 백성들까지 전파되자 양식상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일반 백성들은 딱딱하고 정형화된 도화서 양식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유래했으나 중국에서는 표현되지 않는 조선 양식으로 변화시켰다. 여러 고사에서 채용한 인물, 꽃과 새, 동물, 물고기, 사물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 한국인의 창의성, 미술적 재능을 잘 보여 주는 화제가 되었다.

이제 효제 문자도 글자 속에 들어있는 상징물의 의미를 살펴보자.

“효”는 잉어, 대나무와, 죽순, 부채와 베개, 거문고, 귤 등으로 효도가 표현되었다. “제”는 할미새, 산앵두나무로 형제간의 우애가 표현되었다. “충”은 잉어, 용, 새우, 대합조개로 신하로서 충성이 표현되었다. “신”은 청조와 기러기로 믿음이 표현되었다. “예”는 책을 등에 진 거북이로 예의가 표현되었다. “의”는 물수리 두 마, 연꽃으로 의리가 표현되었다. “염”은 학, 게로 청렴함이 표현되었다. “치”는 토끼, 방아, 달, 매화나무로 부끄러움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문자도는 소재 하나하나에 상징과 스토리텔링이 접목되어 있기에 오늘날 감성시대에 접어든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호감을 갖게 만드는 감성적인 설득의 힘을 갖고 있다.
 

문자도-효
그림2. ‘조상님 가라사데: 어버이 날 낳으시고’ 박승온 작 45X78cm 지본 채색

효제문자도의 첫 글자인 효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효라고 하는 한자어에 잉어와 부채, 거문고, 귤 등등 다양한 기물들이 글자 속에 그려져 있다. 이는 중국 고사의 이야기들에 나오는 상징물로서 황향이 여름 날 부모님이 더워 잠을 못 이루자 미리 잠자리에 부채질하여 시원하게 한 일, 육적이 부모님에게 가져다 드리려고 귤을 몰래 가슴 속에 감춘 일, 손숙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고(당시 쌍두사를 보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었음)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땅에 묻은 일, 자로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쌀을 져 나른 일 등이 인용되어 있다. 효제문자도는 이런 고사에 나오는 인물과 소재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황향의 부채, 육적의 귤과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왕상의 잉어, 맹종의 죽순 등 다양한 소재들이 글자속에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문자도-제
그림3. ‘조상님 가라사대: 형제간에 우애 있고’ 박승온 작 45X78cm 지본 채색

문자도 제(悌)는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하며 제(悌)자에는 할미새와 산앵두나무가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척령이라고도 하는 할미새는 몸길이 15~20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새이지만 사람이나 짐승이 잡으러 다가가면 높이 날아오르면서 울고, 다닐때에도 몸을 흔들어 다른 새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인들은 이 새가 가족, 그 중에서도 형제의 어려움을 몸으로 알리는 충정이 있는 것으로 여겨왔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보이는 할미새의 모습이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바쁘게 움직이며 서로 돕는 형제애에 비유한 시경(詩經)의 글귀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산앵두나무 꽃은 아가위라고도 하는데 아가위는 줄기가 길어 꽃이 아래로 늘어져 꽃받침이 함께 모여 어우러져 피는 모습을 시경(詩經)에서 형제간의 우애에 비유하는 것에서 연유하여 산앵두나무 꽃이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게 되었다.

제목이 효제 문자도라 했으니 급한데로 효와 제에 대한 상징과 그 속에 담긴 뜻을 얘기했다. 나머지 문자에도 이러 저러한 이야기와 상징이 들어있으나 지면상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요즘은 하루종일 뉴스를 들을 수도 있고, 실시간 일어나는 사건으로 희비와 분노의 감정이 수시로 바뀔 ‹š가 많다. 그 옛날보다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 사회구조가 복잡해져서 그런 것인지,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4차 산업의 시대라 그런 것인지.

그래도 사람은 그 예전부터 지금까지 자식에서 자손으로 그 정신이 이어져 오지 않았는가. 필자는 아무리 사람이 많고 사회가 복잡해도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 역시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침 뉴스에는 그 기본이 무너져 누군가는 힘들고, 누군가는 억울하다. 이제 다시 옛날 그림으로 교육을 받자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옛그림으로 그 속에 들어 있는 스토리 텔링으로 잠시라도 우리의 기본은 이렇다라는 것을 환기시켜보고 싶었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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