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치료제의 필요충분조건
의학적 치료제의 필요충분조건
  • 승인 2020.07.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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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대구 마크원외과 원장
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저는 현재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한방첩약급여화 시범사업’과 관련하여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사로서 매우 궁금합니다. 우리 지역이 외산 바이러스에 침몰 당하는 것을 절대 방관할 수 없어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달려와 소명을 다했던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여러분 덕분’이라는 감사 인사가 귓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런 정책을 시도하는 현 보건복지부의 모습에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 정책이 왜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만 하는지, 지루하지 않게 의과대학 저학년생 두 명이 토론하는 형식으로 기술해 볼까 합니다.

A양: 내 말은, 무슨 ‘기(氣)’라고? 그런 것이 과학적 논리가 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아.

B군: A! 나도 네가 과학적 논리를 중요시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기’의 존재는 나름 타당한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구. 5천년의 중국 역사가 우리 한의학의 신뢰성을 담보해주고 있어. 예컨대, ‘홍국’은 중국에서 1,200년간 사용됐어. 생각을 해 봐. 스타틴계 약물에 부작용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高)지질혈증(흔히 콜레스테롤이 높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홍국을 쓰고 있고 효과도 있단 말이야. 특정한 학설을 간편히 무시해버리기 전에, 열린 마음을 가져 보라구.

A양: 내가 한 말이 무조건 한의학을 무시하는 걸로 들렸다면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리고 네 말도 맞아. ‘홍국’은 전통적 치료법이 어떻게 현대의학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야. 적절한 ‘동료심사(peer-review)’와 잘 설계된 ‘무작위 임상시험’을 통해서 말이야.

B군: 흠……, 약간 비꼬는 것 같은데? 근거중심의학 얘기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하지만 과연 ‘근거’를 구성하는 게 뭔지 누가 결정할 수 있지? 너한테 그럴 권한이 있니? 한방약을 포함한 많은 대체의학 치료법들의 효과는 이른바 ‘전체론적인 것’이고 나름의 ‘삶의 양식’과 관계되어 나타나는 거야.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 그런 복잡한 효과까지 다 입증하는 건 불가능해.

A양: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면, 그런 ‘삶의 양식’이 적어도 ‘의학적 치료제’로서 적극적으로 홍보되거나 환자들에게 처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근거’는 중요한 것이고, 그 ‘근거’에 가까이 가는 길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야. ‘과학적 방법론’은 어떤 물질이 사람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지 밝혀낼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도구야. ‘감정’과 ‘편향’을 체계적으로 없애주니까. 그게 없다면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치료사들의 주장들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어. 나는 지금 그런 보완대체의료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얘기하는 건 아냐. 하지만 그것들을 동료심사가 이뤄진 ‘근거중심치료(evidence-based therapies)’와 동급으로 다루는 건 일종의 혹세무민이라고 할 수 있고, 잠재적으로 매우 치명적이라고 생각해.

B군: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할 이야기를 고민한다)

작자 주: 대화내용 중, B군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오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5천년의 중국 역사가 우리 한의학의 신뢰성을 담보해주고 있어.”(사실 점성술은 침술보다도 훨씬 역사가 유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성술이 침술보다 더 타당한 것도 아닙니다) 둘째, 군중에 호소하는 오류-“ ‘기’의 존재는 나름 타당한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구.” 셋째, 인신공격을 통한 논점 이탈 오류-“근거를 구성하는 게 뭔지 누가 결정할 수 있지? 너한테 그럴 권한이 있니?” 넷째,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여 변론하는 오류-“통제된 실험을 통해서 그런 복잡한 효과까지 다 입증하는 건 불가능해.”

※ 대화에서 소개된 고지질혈증 치료제인 스타틴과 한약재인 ‘홍국’에 대한 부연설명: 콜레스테롤 억제제인 ‘스타틴’은 토양 미생물들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몇몇 균류에서 발견되었다. 즉 전통적으로 홍국(紅麴, 곰팡이를 발효시켜 만든 중국식 쌀로, 술을 담그는데 쓰임)이 한약재의 하나로 사용되어왔다는 사실은 ‘홍국’과 관련된 특정 균류에서 스타틴 성분을 발견한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홍국을 스타틴에 대한 의약품 분류상의 대체재나 건강기능식품으로서 그대로 섭취했을 경우, 그 조악한 부수적인 추출물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위험이 수반될 수 있으며 다량의 활성 성분들을 광범위하게 변화시키면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독성과도 섞일 수 있다. 치료제로서 인정받으려면 과학적인 성분분석과 임상연구를 통한 근거 확보가 왜 필수적인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위 글은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of Ethics ‘Virtual Mentor’ 2011년 6월호에 실린 Kimball Atwood의 ‘“CAM” Education in Medical Schools - A Critical Opportunity Missed’ 중 일부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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