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와 애독자의 두 얼굴
구독자와 애독자의 두 얼굴
  • 승인 2020.07.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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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장마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던 것일까? 비닐우산 하나조차 덮어쓰지 않은 채 우체통 바닥 아래 널브러진 채 온몸이 젖어 떨고 있는 그를 맞이한다. 수년을 하루 같이 새벽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어제 일어난 일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며 나의 하루를 열어준 그였다.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혹여 귀퉁이 한 조각이라도 찢어질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앞면을 펼쳐 든다. 안면이 없다. 처음 보는 전혀 낯선 다른 이가 놓여 있었다.

“하루쯤이야 뭐, 착오가 있었겠지”라며 며칠을 그렇게 두고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름이 다른 이가 배달되어 왔다. 수년을 봐 왔지만 단 한 번도 이유 없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적이 없었던 예의 바른 그였는데 더군다나 그만 보자는 말 한마디 헤어지자는 이별의 기미조차 눈치 채지 못했던 터였다. 시간이 갈수록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만 장맛비처럼 내 맘에 쏟아져 내렸다.

신혼 시절, 메말라가는 땅 위에 후드득 빗방울 듣기 시작하면 풍겨오던 흙냄새처럼 오래된 기억 하나가 훅 끼쳐온다. 덤으로 챙겨주는 자전거에 맘을 빼앗겨 그를 받아들인 적이 있다. 온갖 달콤하거나 쌉싸름한 구설로 어르고 달래며 제발 한 번만 받아주면 안 되겠냐는 배달직원의 딱한 사정을 모른 체할 수 없어 그의 원대로 ‘그럼 딱 석 달만’이라며 들이기로 했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 막상 그만 보겠다고 하니 안면을 싹 바꾸었다. ‘올 때는 맘대로 왔으나 갈 때는 맘대로 갈 수 없다’라며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대문짝만하게 ‘신문 사절’이라고 써 붙였다. 그런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체통 안을 무단침입한 채 자리하고 있거나 새벽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모닝콜에 발맞추어 도둑고양이처럼 담장을 넘어와 대문 안 바닥에 놓인 따스한 병 우유를 베개 삼아 일수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큰 대자를 하곤 누워 있었다.

더는 찾아오지 말라며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받고도 시치미를 떼기 일쑤였다. 하물며 덤으로 받은 자전거를 처음처럼 그대로 해서 돌려 달라며 엄포를 놓았다. 이미 몇 번을 고랑에 처박히고 벽에 부딪혀 자빠져 낡아버린 그 자전거를…. 몇 개월을 그렇게 지루한 장마처럼 억지를 부렸다. 오십이 넘도록 살아오며 맺은 인연 중 그와의 인연은 몇 안 되는 나쁜 기억의 한 컷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국장님을 만나기 전까진 적어도 오랫동안.

전화가 왔다. 국장님이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라며 미안해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째 대구신문이 아닌 다른 신문이 계속 들어 와 어떻게 된 일인지 전화를 드리려고 하던 참’이라며 말씀을 드렸더니 국장님이 운영하는 지국과 내가 사는 곳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가까운 지국으로 넘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끝까지 도와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라고만 되풀이 하신다. 뭐가 그리도 미안한 일인지 국장님은 나의 최고 독자였는데…. 얼굴 한 번 뵌 적 없고 핏줄도 지인도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저 내 글이 맘에 들어 도와주고 싶었다는 그 맘 하나로 일방통행처럼 받기만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오히려 내가 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글을 써 오는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가끔 잊은 채 농땡이를 부린 적도 있었다는 것이 뒤늦게나마 깊은 후회로 남았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덮는다고 했던가.’ 국장님과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신문, 달구벌 아침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 달에 두 편씩 내 글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주변에도 널리 알려 읽을 수 있도록 하라며 잊지 않고 매번 여러 부를 챙겨 주셨다. 더군다나 ‘글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라며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신문까지 더해 보내 주었다. 물론 어떤 대가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한 밥 한 번 대접하지 못한 채 국장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물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한 영원한 애독자로 남겠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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