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에 새긴 마음 한 조각…호반갤러리, 남학호 초대전
조약돌에 새긴 마음 한 조각…호반갤러리, 남학호 초대전
  • 황인옥
  • 승인 2020.07.21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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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돌멩이 가져와
구도 다채롭게 연출·작업
표면에 새긴 하트·나비…
“무생물이 ‘생명’되는 순간”
석심생명
남학호 작 ‘석심(생명)’

조약돌을 그린 시간이 자그마치 30년.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데, 남학호의 조약돌 사랑에는 유통기간도 비껴간 듯 하다. 오죽하면 화실 당호까지 ‘돌을 가까이 한다’는 근석당(近石堂)으로 지었을까? 가히 조약돌 그림에 관한한 장인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우직하다거나 미련하다고 훈수를 두기도 하지만 작가의 그의 조약돌 예찬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산 위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의 기세로 세상을 호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는 발길에 체이는 미미한 존재인 조약돌에 꽂혔을까? “도대체 조약돌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자 그가 “조약돌에서 우주와 인생을 본다”고 했다. 조약돌의 근원을 찾아가면 기암절벽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 대답이었다.

“큰 바위가 구르고 굴러 바다로 흘러들고, 수많은 시간 동안 파도에 깎여서 조약돌이 됩니다. 모진 풍파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같죠. 세상의 어떤 존재도 비껴갈 수 없는 굴곡진 삶의 여정이죠.”

작품 제목이 ‘석심(石心)’. 무생물인 조약돌에 마음을 있을 리 만무한데 ‘석심(石心)’이라고 했다. 지독한 감정이입이다. 사실 남 작가가 조약돌을 바라보는 시선은 범인(凡人)의 그것과 조금은 다르다. 그에게 조약돌은 곧 작가자신이다. 조약돌에 그리움, 자유, 희망 등의 분출하는 내적 감정들을 이입한다. 돌의 표면에 그려 넣은 기호나 하트, 나비 등은 순간순간 오고가는 감정에 대한 상징들이다.

“조약돌이 비록 무생물이지만 저와 마주앉아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어느새 감정상태는 저와 일치하게 되죠. 그때의 조약돌은 생명으로서의 존재로 격상한 조약돌이죠.”

태생은 한국화였다. 10년간 한국화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현대미술에 대한 갈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누구의 그림도 아닌 오직 남학호 만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싶었다. 먼저 한지와 먹과의 이별을 고하고,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과 새로운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독자적인 화풍을 정립한다는 것이 재료 하나로 해결될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소재였다. 남학호의 작가정신을 압축적으로 펼쳐낼 그 무엇이 필요했다. 그때 추억 속 친근한 소재인 조약돌이 떠올랐다. 발길에 차여 나둥구는 조약돌이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어린시절 제 고향 영덕의 드넓은 동해바다에서 조약돌은 놀잇감이자 스승이었어요. 조약돌은 제게 공기처럼 친숙한 존재였죠.”

강렬한 서사를 펼치기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장소가 제격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이나 특별할 것 없는 장소에 시선을 주는 이는 드물다. 조약돌 또한 마찬가지. 흔하고 흔해서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소재다. 30년을 돌을 그린 그도 “돌을 돌답게 그리기는 정말 어렵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소재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어도 감동은 더 클 수 있다”는 조금은 다른 시선도 제시했다. “돌을 돌답게 그려서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지만 그것이 화가로서의 존재이유라 생각하고 돌이 돌다운 지점을 찾아 감동을 담으려고 노력하죠,”

조약돌이라고 다 같은 조약돌이라는 예단은 금물이다. 작가의 조약돌도 변화를 거듭했다. 물기를 머금거나, 따가운 해변의 메마른 조약돌을 그렸다. 회색계열 일색이지만 경우에 따라 붉은빛과 푸른빛을 사용하기도 했다. 조약돌에 나비, 하트, 한자 등의 존재들이 어우러지기도 했다. 나비는 떠나가는 님, 하트는 연인 등을 의미했다.

최근의 변화는 혁신적이다. 사진을 기반으로 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수집해온 조약돌을 정물화처럼 그린다. “산이나 바다를 옮길 수는 없지만 조약돌은 옮길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변화였다. 실물 조약돌로 작업하면서 구도도 자유자재로 가능해졌다. 조약돌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여백 조절도 다채롭게 연출한다.

“구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에요. 같은 돌을 가지고 전혀 다른 그림이 수없이 나올 수 있죠. 그리는 재미도 두 배, 보는 맛도 두 배가 되는 것 같아요.”

100호 이상의 작품 20여점을 만나는 수성아트피아 남학호 초대전 ‘Stone in heart(Life)전은 26일까지 호반갤러리에서. 010-2515-4567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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