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展…최연소 작가 윤종주
대구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展…최연소 작가 윤종주
  • 황인옥
  • 승인 2020.07.26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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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물감 부었더니, 동양적 색면추상이 ‘꿈틀’
물감 붓고 캔버스 기울이고 말리고…
안료 쌓이면서 자연스레 공간감 획득
반투명 고체 파라핀으로 입체감 강화
모서리마다 색 달라, 빛 흡수하면 반짝
초기 형상 있는 색면·목탄 드로잉 등
모든 결과물 ‘형상없는 회화’로 집대성
윤종주 작가
윤종주 작가가 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전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이 한 방향만 나 있다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개척정신이 멸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도해야 될지도 모른다. 종착지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은 다채로울수록 좋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각자의 보폭과 성향에 맞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높은 효율성과 성취감을 높여준다.

작가 윤종주는 서양의 재료와 시각적인 어법으로 색면추상을 그린다. 서양의 물감과 캔버스 그리고 점, 선, 면이라는 조형요소들을 버무려 색면추상이라는 시각적 결과를 도출한다. 하지만 한 치의 틈도 없이 색면추상이라고 단정 짓기에 간과되는 부분들이 있다. 붓 대신 물감을 평면에 붓고 기울이는 방식으로 면을 채우는 방식과 구축한 색면에 스며나오는 한국의 정신성 등에서 서양의 색면추상과 다른 윤종주만의 뉘앙스가 꿈틀거리기 때문.

사실 윤 작가의 작업 여정은 탐구의 연속이었다. 서양의 재료와 표현방식을 사용하면서 윤종주만의 화면과 서사를 구축하는 일에 혼신을 기울였다. 이를테면 윤종주의 길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는 “탐구하고, 실험하고, 적용한 중첩된 시간들이 혼자만의 시간으로 끝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며 기쁨에 차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에 선정된 것. 그녀에게 중견작가로의 인정은 여전히 미완의 길 위에 있지만 풀숲을 헤쳐 뚜벅뚜벅 걸어가는 자신의 열정에 세상이 어깨를 톡톡 다독이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최연소 중견작가 타이틀을 거머쥐어 의미는 두 배로 다가온다.

“기쁨과 함께 책임감도 느낀다”는 상반된 소감을 남기는 작가 역시도 최연소가 갖는 무게감을 의식하는 듯했다.

윤종주 평면회화의 핵심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그녀는 “전통회화와는 다른 ‘무엇’”을 갈망했다. 갈망이 실행으로 이여졌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할 만큼의 위용을 갖춰 가는 부분들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작업방식과 물성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찾아가고 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탈피해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물감을 부어 기울이는 방식으로 평면을 구축한다. 이때 물감이 층층이 쌓이도록 붓기와 기울이기, 그리고 마르기의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작가는 “색이 겹쳐지면서 구축된 형태에서 깊이 있는 공간감이 드러난다면 수 백 번을 쌓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수없이 물감을 붓고, 기울여 왔다.

원하는 평면을 얻기 위한 탐구는 특히 물성에서 두드러진다. 작업 초기에는 양초, 연고, 화장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반투명 고체인 파라핀을 물감과 혼합해 사용했다. 그러나 원유를 정제할 때 생기는 파라핀이라는 재료가 가지는 민감성에 발목이 잡히면서 파라핀 계열의 화합물인 미디움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미디움은 온도나 습도에서 파라핀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장점으로 선택됐다. 최근에는 아크릴물감과 미디움, 잉크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소설가에게 문자가 문학의 출발선이듯, 화가에게 물질적인 재료는 내면을 드러내는 기초 질료”임을 감안하면 작가가 왜 그토록 물성에 열정을 쏟았는지는 명료해진다. “파라핀이나 미디움은 반투명한 미묘함과 따뜻함, 두께감이 주는 입체감에 매료돼 사용하기 시작했고, 잉크는 아크릴 물감에 비해 입자가 곱고 색감이 더 미묘하다는 장점 때문에 사용했어요.”

형상에서의 혁신은 재료나 작업방식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형상이 정신성을 담는 그릇이라는 철학을 견지하는 작가에게 도드라지는 형상은 오히려 방해요소일 수 있어 최대한 절제한 결과다. 그런 까닭에 초기에는 평면 전체에 최대한 약화시킨 색채로 뉘앙스와 성격 정도만 감지할 수 있도록 색면을 쌓았다.

이후 화면의 중앙에 원이나 사각의 형상을 색면 처리하고 배경을 도입했다. 최근에는 원이나 사각 형상에서 각도와 형태의 제한을 두지 않는 다채롭게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작가가 “여백은 형상을 비추는 거울 역할에 해당된다. 더 정확히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언급했다.

원이나 사각 등의 유동적인 형태의 색면에는 움직임과 부드러움을, 형태를 버린 색면에는 공간의 깊이를 담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작가에게 색과 형태는 미묘한 감성이나 사유를 유발하는 촉매제였다. “형태나 색이 시각적인 유희보다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도구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작업에 임해왔어요.”

작가는 하나의 길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는데 열정을 불태웠다. 선(線) 드로잉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색면추상에만 안주하지 않고 선(線) 드로잉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초기의 선(線) 드로잉은 칼로 평면을 자르고 뒷면 위에서 목탄을 그어 문질러 앞면으로 떨어진 가루가 밀려나오고 칼선에 문질러진 목탄이 하나의 드로잉이 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선 드로잉에서도 긋기라는 행위는 사용되지 않았어요.”

선 드로잉은 면분할로부터 출발했다. 선 드로잉 이전에 평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삼분할하고, 한 면을 두께가 얇은 트레싱 종이로 덮고 면분할한 사각에 목탄드로잉을 뒷면에서 긋는 작업을 먼저 시도했다. 이때 분할의 규칙이 생겨났고, 규칙은 무궁무진한 전개양상 가능성을 제공했다. 면분할이나 선 드로잉에서 규칙의 가능성을 경험하면서 색면 추상에도 규칙의 도입을 시작했다.

“색면이 정신성에 보다 집중한다면 면 분할이나 선 드로잉은 냉철한 논리전개력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개념적으로 다가왔어요.”

작업이 작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 중 일부는 우연적인 실수나 발견으로부터 촉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술도 의도치 않는 우연성은 필요하다. 윤 작가는 우연성에서 만큼은 그 어떤 작가보다 기껍게 즐기는 부류다. 작업방식과 물성에서 우연적인 효과의 개입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놓는다.

우연성을 촉발하는 긴장감을 즐기는 쪽이지만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하지는 않는다. 우연과 필연이 듀오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각적인 다양함과 개념적인 깊이를 쌓아가지만 적절한 시점에 제어기제가 작동한다. “우연적으로 드러나는 효과는 무생물인 물성에서 유기체적인 느낌을 가지게 해서 매력적인 것 같아요.”

대구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전에 출품한 색면 추상은 그녀 작업 전반의 집대성에 해당된다. 색면추상과 드로잉, 물성과 정신성의 하모니가 한 평면에서 완성도 있게 결합되었다. 배경 위에 화면의 중앙에 자리했던 원이나 사각 등의 형상이 평면 바깥으로 밀어내고 형상없는 색면추상이 구축됐다. 형상과 배경의 이분법적 구분이 사라졌다.

목탄드로잉 작품에서 선보였던 선 드로잉도 색면추상 위에 옮아왔다. 평면의 사각 모서리에 혼합 물감을 집중적으로 기울여서 선 드로잉을 구축했다. 목탄 드로잉 선의 색면추상 버전이다. 작가는 네 곳의 모서리마다 미묘한 색의 차이를 두는데, 여기에 빛이 반영되면 영롱한 반짝임으로 존재감은 더욱 짙어진다.

“목탄 드로잉으로 만든 선이 조금은 차가운 느낌이었다면, 색의 중첩으로 만든 선은 더 따뜻한 것 같아요. 저 자신의 내면이 예전보다 조금 더 안정된 결과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의 사이즈와 전시방식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층고가 높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 공간에 맞춰 직사각형 형태의 캔버스를 직접 제작해 작업하고, 몇 개의 작품들을 연결해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공간을 캔버스로 삼아 작품 속 작품 개념으로 구현한 결과다.

중견작가로 선정되고 전시 작품 제작에 몰두하면서 그동안의 작업들이 자연스럽게 한 화면에서 집대성되는 결과를 얻은 것에 대해 작가는 “내가 추구하는 색의 깊이, 색을 통한 공간감, 빛, 선이라는 핵심요소들이 만족스럽게 한 화면에서 어우러진 것이 기쁘다”며 큰 만족감을 표했다. “이전 작업을 하나의 화면에서 집대성 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이 작업이 향후 또 다른 작업으로 확장되는 전기로 작용한다는 것이에요.”

작가는 중년작가전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거듭 감사를 표하며 향후 각오도 밝혔다. “철없을 때는 빨리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어떤 책임있는 작품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아가고 있어요. 중견 작가로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번 전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에요.”

윤종주, 이상헌, 김봉천, 김영환, 김윤종 등이 함께하는 대구문화예술회관 ‘2020 올해의 중견작가’전은 8월 15일까지. 문의 053-606-613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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