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하늘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면, 태평성대를 누린다
왕이 하늘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면, 태평성대를 누린다
  • 윤덕우
  • 승인 2020.07.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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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일월오봉도
5개 봉우리·강·해·달·松 병풍
조선시대 어좌 뒷편에 배치
영원 상징하는 자연물 표현
왕 존재와 절대적 권위 염원
‘천-지-인’ 매개자
병풍만 있으면 ‘미완성’ 상태
그림에는 ‘天·地’만 내포
왕이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
일월오봉도
<그림1> 일월오봉도8곡병 19세기 지본 채색 162cm X 379.5cm 리움미술관 소장

일월오봉도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로도 불리며, 병풍으로 된 것은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라고 부른다. 조선 시대 왕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나 행차 또는 왕이 죽은 후 왕의 혼백을 모신 곳이나, 심지어 왕의 초상화 뒤에도 늘 일월오봉도가 있었다. 지금도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덕수궁에 가보면 임금이 앉는 용상의 뒤편에 놓여 있는 일월오봉도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앉은 자리 뒤편에 세워져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시대 고유의 문화와 사상이 담긴 독특한 양식의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제까지 이 그림은 통상적으로 ‘일월오봉도’, ‘일월오악도’ 혹은 ‘일월곤륜도’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는데 그러한 명칭을 누가 먼저 사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 그림이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고 되어 있다. 일월곤륜도가 왕실의 공식 명칭도 아니고, 단지 중국의 전설적인 곤륜산이 5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 데서 차용한 이름에 불과한데 이 명칭을 그대로 사전에 올린 것이다.

마치 민화라는 명칭이 아무개에 의해 이름 지어진 것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그로 인해 그림의 진정한 의미나 기원 등을 탐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화 초심자들이 꼭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니 그 기원부터 살펴 봐야겠다.

일월오봉도의 기원은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 때 최초로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조선의 건국은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여 무력을 앞세워 고려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이기에 무엇보다 명분이 필요했다. 따라서 조선 초기에는 왕권의 정당성을 세우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하늘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일이 급선무였다.
 

태조이성계어진
<그림2> 태조 어진 전주 경기전 소장.

이성계가 하늘의 뜻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해 전국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다니면서 기도를 드린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일월오봉도가 그려지게 된 유래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몇 가지 유래가 전해 오고 있다. 그 유래 중 이성계의 기도처로 유명한 진안(鎭安) 마이산(馬耳山)을 일월오봉도의 배경으로 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시경(詩經)』의 「천보구여(天保九如)」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진안 마이산에서의 일화를 보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 개국을 하기 전 팔도를 다니면서 산신(山神)에게 기도를 드렸다. 진안 마이산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 금척(金尺)으로 장차 삼한의 강토를 헤아려 보라”고 하면서 금척을 주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조선 건국에 마이산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아 일월오봉도가 마이산 다섯 봉우리를 뜻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신하들과 만백성이 성군이 되어달라는 바람이 담긴 유교(儒敎) 경전 중의 하나인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천보(天保)」라는 시(詩)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이어받지 않고 유교를 국교로 삼아 나라의 체제를 세우려 하였다. 유교는 왕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린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내세웠다. <일월오봉도>에는 왕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음양(陰陽)의 조화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춰 만백성의 어버이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신하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시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天保定爾 亦孔之固 하늘이 당신을 보호하고 안정시키사 반석처럼 굳건히 하셨네/ 爾單厚 何福不除 님에게 두터운 은혜 베푸시니 어느 복인들 아니 내리리/ 如山如阜 如岡如陵 높은 산과도 같고 대지와 같으며 산등성이 같고 언덕과도 같으며/ 如川之方至 以莫不增 강물이 흘러오듯 불어나는 복 한이 없구나/ 如月之恒 如日之升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과 같이 해가 떠오르는 것 같이/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남산이 무궁함 같이 결코 쓰러지지 않으며 무너지지 않네/ 如松栢之茂 無不爾或承 소나무 측백나무 무성함과 같이 님의 자손 길이 이어지리라.

이 시는 여(如) 자가 아홉 번 들어 있다 하여 「천보구여(天保九如)」라고도 부른다. 이 가운데 다섯 가지 물체들은 산(山), 부(阜), 강(岡), 능(陵), 그리고 천(川)이며 이들은 하늘이 내린 왕을 보호하는 상징물이다. 나머지 네 가지는 통치자가 자신의 미덕을 실행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들은 초승달이 차츰 차올라오며 보름달이 되는 것, 매일 아침 어김없이 떠오르는 해(日), 남산(南山)의 장수(長壽)와 소나무와 잣나무(松柏)의 번성과 푸르름이다. 즉 이들은 자연의 일상(日常)이자 불변의 법칙이다. 오봉병의 다섯 봉우리는 ‘보호’와 관련된 네 종류의 ‘산’과 미덕과 관련된 무궁함으로 상징되는 남산(南山)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애국가의 가사에 남산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듯 하다.

산과 강물, 해, 달, 소나무 등 영원을 상징하는 자연물을 등장시켜 왕의 덕을 칭송하고 왕에게 축복을 기원하고 있다. 왕이 하늘의 뜻에 맞게 다스리면 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는 뜻으로 왕의 위상과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자연물이 동일하게 나타나 있어 일월오봉도 역시 「천보(天保)」 시와 같은 의미와 상징, 즉 왕업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뚝 솟아 있는 바위로 된 다섯 개의 봉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는데, 일월(日月)이 음양(陰陽)이면 오봉(五峰)은 오행(五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행을 인륜으로 말할 때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고, 방향으로 보면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을 뜻한다. 오악(五嶽)을 말할 때는 각 나라마다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5대 명산으로 경복궁이 있는 서울의 북한산(삼각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금강산, 서쪽은 묘향산, 남쪽은 지리산, 북쪽은 백두산을 나타낸다.

산 위에서 내리는 두 줄기의 폭포는 음양의 조화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내리는 덕(德)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 앞의 굽이치는 물은 조정(朝廷)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파도의 조(潮)와 조정의 조(朝)의 음이 같은 동음이자(同音異字)의 원리로 조선 시대에는 왕의 앞에 조정 대신들이 모여 정사를 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물 앞의 소나무는 붉은 적송(赤松)으로 소나무 중에서도 가장 성스럽고 귀하게 생각했던 나무이다. 만물의 대표격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월오봉도의 구도는 민화 형태의 그림들이 흔히 그렇듯 단순하며 좌우대칭을 이룬다. 짙은 청자색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고, 그 아래 바위들이 첩첩이 쌓인 5개의 산봉우리가 있으며, 봉우리 밑에는 물결 모양의 문양이 이어져 있고, 그 양쪽 언덕 위에는 소나무가 있다.

흔히 산봉우리 아래는 동심반원형(同心半圓形)의 물결무늬가 연이어 있어서 바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나 이는 잘못이라고 본다. 이 그림은 전반적으로 짙은 색조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물의 원색을 거의 살리고 있다. 따라서 유독 바다만 고동색으로 나타낼 리가 없다. 또 산봉우리의 밑 부분과 물결무늬 중간에는 희게 솟구치는 포말이 보이는데, 물결무늬가 바다라면 이와 같은 포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포말은 별도로 처리된 데다 흰색으로 채색되어 있어 역시 고동색 물결무늬가 바다라는 해석과 맞지 않다. 이 물굽이는 일월오봉도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그에 대한 답은 해석을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 그림의 특징은 그냥 병풍만이 있을 때에는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이 앉아 있어야만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 일월오봉도에 담긴 삼재사상(三才思想) 때문이다. 삼재사상의 관점에서 천(天)·지(地)·인(人) 중 일월오봉도는 ‘천지’만을 표현했기에 미완성이다. 병풍에 그려진 해와 달은 하늘을 상징한다. 또한, 해는 양(陽)을, 달은 음(陰)을 상징한다. 다섯 개의 봉우리와 굽이치는 물결은 땅을 나타낸다. 왕의 존재는 세계(인간세상)와 우주(자연)의 매개, 천지인을 하나로 통일하는 매개자이다. 병풍 앞에 왕이 앉을 때, 비로소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라는 삼재, 즉 우주를 이루는 세 바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三)가 사람이라는 소우주(ㅣ)속에서 완성(三+ㅣ=王)된다.
 

일월오봉도-경북도청
<그림3> (사) 한국현대민화협회원 협동작 2018년 작 지본채색 330cm X 165cm 경북도청 소장

이제 지금의 시대는 왕도 없고 궁궐도 없다. 4차 산업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데이터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몇 년 전 협회 회원 50여 분이 마음을 모아 현대적 해석을 통한 일월오봉도 합동작을 그린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십시 일반으로 자신의 정성을 쏟은 이유는 삼재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三)가 사람이라는 소우주(ㅣ)속에서 완성(三+ㅣ=王)되는 그 원리를 몸으로 체득했고, 모두가 평등하고 평온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마음, 태평성대를 바라는 그 마음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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