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장비로 생리의학 탐구 ‘3미의 벽’ 허물다
첨단장비로 생리의학 탐구 ‘3미의 벽’ 허물다
  • 김종현
  • 승인 2020.07.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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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25)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자
전쟁서 첨단병기로 승리 이끌듯
생리의학도 새 현미경 등 발명으로
기존학설 뒤집거나 새 사실 규명
이탈리아 해부학자 ‘카밀로 골지’
스페인 신경조직학자 ‘산티아고’
‘신경조직 연구’ 노벨상 공동 수상
뇌의 미세구조 숙련된 스케치
오늘날 뇌 과학 교재로 활용
노벨생리의학상-풍선
노벨생리의학상. 그림 이대영

◇우표모양의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로 결핵치료를

초등(국민)학교시설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표모양의 씰(seal)을 사서 소포나 편지에 붙였다. 혹은 책갈피 속에 소중히 숨겨놓았던 추억이 있었다.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 우체국장 아이날 홀벨은 연말에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씰을 붙이게 하고 동전을 모아 결핵기금을 마련하는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당시 국왕 크리스찬 9세의 지원을 받아 1904년 12월 10일 세계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판매했으며, 우리나라에선 1932년 12월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에 의해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이 처음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결핵퇴치기금모금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스마트폰시대(smart-phone age)에는 적어도 이모티콘 씰(emoticon seal)등 새로운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이렇게 무서운 결핵은 BC 7천년경 석기시대 화석에서도 발병흔적이 발견된다. 아마도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장기간 전염된 병이다. 1882년 독일 의사이며 세균학자인 로베르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34~1910)에 의해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이 발견돼 그해 3월 학회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처럼 비말핵(飛沫核, droplet nuclei)에 의해 접촉자의 30%정도 감염, 감염된 사람의 10% 정도가 결핵환자가 되나 나머지 90%는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또한 발병비율은 50%, 감염 후 1~2년 안에 발병, 나머지 50%는 일생동안 특정시기 즉 면역력이 취약할 때에만 증상이 나타난다. 2017년 국내통계로는 국민 10만 명 가운데 70.4명의 환자가 발생하며, 신생환자는 55.0명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1905년 로베르트 코흐에게 “결핵에 관한 조사연구로 결핵균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이 수여됐다. 그는 각종 전염병에 각기 특정한 병원균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특이점으로 식별하는 근본원칙을 마련했다. 1878년 ‘상처 감염증 병인학 연구논문을 발표했으며, 1882년 결핵균을 발견했다. 또한 1885년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을 발견했으며, 이어 1890년 결핵치료제 투베르쿨린(Tuberkulin)을 개발했다. 1898년 ‘선(腺)페스트(Bubonenpest)’ 및 1902년 ‘발진티푸스’ 연구결과를 저서로 남겼다.

하노버왕국 클라우스탈 마을에서 태어나, 1848년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배웠으며, 1962년 19살에 고등학교 졸업, 다음해 괴팅겐대학교 자연과학과에 등록해 3학년 때에 의학과로 전과 졸업했다. 학부 5학기부터 전염해부학자 제이콥 헨레 교수의 ‘자궁신경조직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6학기 때는 생리학회에 들어가 ‘미토콘드리아 대사에 관한 신호분자 숙신산(succinic acid)분비 연구’를 성공했다. 그런 노력과 성과로 1866년 의과대학과정에 최고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곧바로 라크비츠(Lark Beach) 마을에서 의사개업을 했으나 곧 접고 폴란드 월스타인(Wollstein, Poland) 지역에서 프랑코-프러시아전쟁의 종군외과의사로 일했다. 1872년 볼슈타인 지방의 의무관으로 임명돼 현미경을 사용해 지역풍토병인 비탄저병(Vitilus)의 원인균과 전염경로를 밝혀냈다. 1880년부터 1885년까지 왕립보건부의 정부자원의사로 수년간 임상실험을 했다. 1885년부터 베를린대학교 위생학 교수로 임명돼 결핵치료약 신약연구에 몰두했다. 1891년 전염병연구소를 설립해 초대연구소장을 역임했다. 1904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재귀열병원체(relapsing fever pathogen), 체체파리(tsetse flies)의 전염경로를 연구했으며, 1906년부터 1907년까지 수면병(sleeping sickness) 연구에 온통 넋이 빠져있었다.

◇ 지도와 나침반만으로 생리의학의 신세계를 찾아

일반적으로 공포에 대한 해독제(antitoxin)는 지식(knowledge)이다. 전염병에 대한 해독제는 바로 생리의학에 대한 상식이다. 생리의학을 탐구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이나 사회과학(social science)과 달리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3미(微) 즉 미세(微細)하고, 미량(微量)으로, 미약(微弱)이란 장벽을 부딪치게 된다. 이 장벽을 허물기 위해 특이한 수단지(手段知) 혹은 방법지(方法知, methodology)를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황무지 개척에 가장 먼저 지도와 나침판을 가져야 현재위치와 나갈 방향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의 학문탐구에 있어 “새 부대에 새 술(New Wine in New Wineskin)!”이라는 성경구절을 적용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도 새로운 현미경, 구름상자 혹은 천체망원경 등을 발명하고 이를 이용해서 기존학설을 뒤집거나 새로운 사실을 규명한다. 전쟁에서도 첨단비밀병기가 필승을 장악하는 전략이된다. 인류역사에 있어 식민지전쟁은 어떤 면에서는 질병과 전투였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전쟁에서는 키니네(quinine)가, 일본제국 GHQ(General Headquarters)는 러시아정복용 목초액(木焦液)에서 정로환(征露丸)을 개발했고, 세계최강의 관동군(關東軍)이나 가미가제 특공대에게는 히로뽕(ヒロポン, methamphetamine, C10H15N)이 주입됐다. 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화학전에 사용했던 염소가스는 전략적 제약(strategic medicine)이었다.

생리의학연구에 있어 미세한 세균을 육안으로 볼 수 없기에 i) 현미경을 사용해야 하는데 레이저주사현미경, 전자현미경, 원자간력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 X선현미경, 초음파현미경 등의 실체현미경, 위상차현미경 혹은 방사선가속기 등에서 최적을 선택, ii) 미량의 병원균으로 정량적 수치화를 위해 수백 혹은 수천 배로 배양하고자 배지, 배양접시, 인큐베이터를 사용한다. 보다 확대하기 위해 술약(yeast)를 사용해 세포분열(cell division) 촉진 혹은 크게 부풀게 한다. iii) 미약한 현상을 증폭시키는 청진기, 확성기, 증폭기 등을 적당히 사용해야 하며, 구분하기 어려운 세포(조직)의 일부를 명확히 드려내기 위한 질산은(silver nitrate, AgNO3)으로 염색(silver staining)하는 염색기법도 사용한다. iv) 가장 핵심기술은 순간현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가장 원시적 방법은 스케치(sketch)이고, 오늘날은 컴퓨터지원 각종 촬영기법이 이용된다.

이런 개인적 기본기를 갖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는 1906년 이탈리아 해부학자 및 병리학자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 1843~1926)로 “신경조직에 대한 연구공적”으로 2인 공동 수상했다. 그는 신경조직을 질산은((窒酸銀)으로 염색하는 방법((Golgi’s staining)으로 골지세포(Golgi Cell)와 골지체(Golgi tendon organ)를 발견했다. 오늘날 생리의학논문의 대부분은 염색한 세포 혹은 조직의 삽화를 첨부해서 시각적 인지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공동수상자였던 스페인의 신경조직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1852~1934)은 뇌의 미세구조에 대해 숙련된 스케치를 해 오늘날 뇌(腦)과학((neuroscience) 교제로 사용할 정도로 학문적인 분석을 시각화했다. 산티아고 카할(Santiago Cajal)은 스페인 작은 도시 페틸라 데 아라곤에서 해부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에 대한 반항적이고 반권위적인 태도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빈번히 전학을 당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11살 때는 손수 만든 대포로 이웃집 정원대문을 파손해 투옥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림그리기 하나만은 열성을 다했다. 아버지는 제화점이나 이발소에 데려가 생활안정에 필요한 숙련공이 되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1868년 아버지는 자기의 의학경력을 자식에게 전수하고자 묘지로 데리고 가, 노출된 시신의 골격을 스케치하게 했다.

그런 경험이 그에게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아버지가 강의하던 사라고사대학(University of Zaragoza)에 들어가 1873년 의학과를 졸업했다. 경쟁시험을 통해 스페인 육군에 입대, 의무장교로 근무하면서 1874년부터 1875년 쿠바전쟁에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말라리아와 결핵에 걸렸다. 치유를 위해 피레네산맥에 있는 온천마을 판티고사(Panticosa)로 옮겨 치료했다. 1877년 마드리드 모교로 돌아와서 박사과정에 등록,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드디어 발렌시아대학( University of Valencia) 해부학 교수로 임명됐고, 1883년까지 교수를 역임했다. 1892년 마드리드대학에서 교수로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와 공동연구를 하면서 골지의 염색방법을 익혀, 질산은입자를 사용해 세포체를 염색했고, 다양한 형태의 신경세포체(nerve cell body)를 관찰해서 반항기 소년시절에 익혔던 그림솜씨를 발휘해 색채감을 살려 기록했다. 1890년 ‘일반 해부병리학 매뉴얼’및 1894년 ‘인간과 척추동물의 신경계 구조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등의 저술을 남겼다.

글=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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