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들어선 남편은 곧장 생선코너 앞으로 달려간다. 장승처럼 멈춰 서더니 저녁엔 흰 쌀밥에 고등어 구워 먹자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잖아도 장마에 습하고 꿉꿉한 집안을 온통 비린내로 도배할 수 없다며 안 된다고 말하는 나의 단호한 대답에 마음이 상했는지 쇼핑카트를 거칠게 몰았다.
마트를 도는 내내 고등어가 눈에 밟혔는지 내 등 뒤에 바싹 따라붙어서는 '화덕 하나 살까. 석쇠도 사고, 연탄 몇 장 들여 바깥에서 구워 먹으면 안 되겠나. 매콤한 간장양념 끼얹은 고갈비가 먹고 싶다~고, 갈비 말이야'라며 연신 조른다. 그런 남편의 애끓는 간곡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가 담은 물품만 계산하고는 나와 버렸다. "그깟 고등어 안 먹고 만다."라며 다신 고등어 '고'자도 꺼내지 않을 테니 두고 보라며 삶은 감자를 흔들어 깨우면 분이 일 듯 분을 풀어낸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애꿎은 리모컨에다 마저 화를 쏟아 붓는다. 한 곳에 채널을 고정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까짓것 비린 냄새가 집안에 등천 하고 사나흘 빗줄기가 들이치거나 말거나 창문을 열어놓고 살지라도 고등어 한 마리 구워줄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뒤늦게야 밀려온다. 그깟 고등어 한 마리 굽는 게 뭐라고 비싼 꽃등심 구워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가끔 귀한 손님이나 친구가 찾아오면 들르는 집 근처 단골 맛집이 있다. 고등어를 노릇노릇 맛깔나게 잘 구워주는 집이다. 그럴 때마다 주인장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고등어를 더 많이 주문하고 좋아하는 편'이라며. 유독 고등어에 얽힌 추억들이 남자들 맘속에 더 많이 간간하게 배여 있는 것 같다는 얘길 들려주곤 한다. 남편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짠해 온다. 어쩌면 고등어 한 마리 속, 잘 구워진 옛 추억 한 토막 떠올랐거나 포장마차 구석진 자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고갈비에 소주잔 거하게 기울이던 청춘의 한때,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음식은 봉인되었던 추억을 풀어내는 힘을 지닌 듯하다. 어릴 적, 알록달록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밥상보를 새색시 마냥 곱게 덮어쓰고 일 나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던 개다리소반이 소환된다.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밥상 위에서 기꺼이 한 몸, 보시를 기다리고 있던 자반고등어와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아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고봉밥 한 그릇은 따뜻하면서도 비린 유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일터에서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상보를 걷어내면 뚝배기 속 된장찌개와 함께 평소와는 달리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는 가장의 힘겨웠던 하루의 노고를 보상하듯 월급날이면 행해지는 어머니만의 특별식이었다. 흔히들 경상도 남자들이 집에 들어오면 딱 세 마디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밥 도' 다. 남자들에게 있어 '밥 한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밥 한 그릇에 큰 의미를 두는듯한 표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마누라한테 밥은 얻어먹고 사냐, 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었더니 정승 판서가 안 부럽다, 배가 부르니 세상이 눈 아래로 보인다.'는 식이다. 생각건대 남자들의 로망은 아마도 잘 차려진 밥 한 그릇 먹는 데 있었던 그것은 아닐까.
얼마 전, 친정집으로 불쑥 퇴근한 남편은 친정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밥솥째 뚝딱 비우더니 "장모님 참말로 밥 잘 묵었심더."라며 지갑을 열어 만 원권 지폐를 몇 장 꺼내 밥값이라며 엄마 손에 쥐어준다. 남편의 이러한 돌발행동에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사위의 뜻을 알아채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편이 뜬 밥숟갈에 고등어 살을 발라 올려주며 "아이고 우리 밥서방 고맙네!"라며 연신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당신이 해 주신 밥을 정성껏 먹어주는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한 끼의 정성을 알아주는 사위가 고맙기 그지없었을 테다. 행여 당신 딸이 사위에게 부실하게 차린 밥상을 들이밀진 않았을까 은근 노심초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습속에, 쉰 음식은 자기가 먹을지언정 손님에게는 따끈한 새 밥 한 상 차려주는 미덕이 있다. 심지어 밥을 구걸하는 거지에게도 밥상을 차려 내 줄 정도로 밥에 대한 예의가 분명했다. 각다분한 세상, 가족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는 가장들의 수고가 한 그릇의 밥으로 보상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오늘은 간이 잘 밴 자반고등어 한 손 구워 밥상에 올리리라. 며칠 비린내를 인내하고서라도.
마트를 도는 내내 고등어가 눈에 밟혔는지 내 등 뒤에 바싹 따라붙어서는 '화덕 하나 살까. 석쇠도 사고, 연탄 몇 장 들여 바깥에서 구워 먹으면 안 되겠나. 매콤한 간장양념 끼얹은 고갈비가 먹고 싶다~고, 갈비 말이야'라며 연신 조른다. 그런 남편의 애끓는 간곡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내가 담은 물품만 계산하고는 나와 버렸다. "그깟 고등어 안 먹고 만다."라며 다신 고등어 '고'자도 꺼내지 않을 테니 두고 보라며 삶은 감자를 흔들어 깨우면 분이 일 듯 분을 풀어낸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애꿎은 리모컨에다 마저 화를 쏟아 붓는다. 한 곳에 채널을 고정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까짓것 비린 냄새가 집안에 등천 하고 사나흘 빗줄기가 들이치거나 말거나 창문을 열어놓고 살지라도 고등어 한 마리 구워줄 걸 그랬나.'라는 후회가 뒤늦게야 밀려온다. 그깟 고등어 한 마리 굽는 게 뭐라고 비싼 꽃등심 구워달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가끔 귀한 손님이나 친구가 찾아오면 들르는 집 근처 단골 맛집이 있다. 고등어를 노릇노릇 맛깔나게 잘 구워주는 집이다. 그럴 때마다 주인장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고등어를 더 많이 주문하고 좋아하는 편'이라며. 유독 고등어에 얽힌 추억들이 남자들 맘속에 더 많이 간간하게 배여 있는 것 같다는 얘길 들려주곤 한다. 남편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편이 짠해 온다. 어쩌면 고등어 한 마리 속, 잘 구워진 옛 추억 한 토막 떠올랐거나 포장마차 구석진 자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고갈비에 소주잔 거하게 기울이던 청춘의 한때, 그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음식은 봉인되었던 추억을 풀어내는 힘을 지닌 듯하다. 어릴 적, 알록달록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밥상보를 새색시 마냥 곱게 덮어쓰고 일 나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던 개다리소반이 소환된다.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밥상 위에서 기꺼이 한 몸, 보시를 기다리고 있던 자반고등어와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아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고봉밥 한 그릇은 따뜻하면서도 비린 유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일터에서 밤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상보를 걷어내면 뚝배기 속 된장찌개와 함께 평소와는 달리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는 가장의 힘겨웠던 하루의 노고를 보상하듯 월급날이면 행해지는 어머니만의 특별식이었다. 흔히들 경상도 남자들이 집에 들어오면 딱 세 마디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그 중 첫째가 '밥 도' 다. 남자들에게 있어 '밥 한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밥 한 그릇에 큰 의미를 두는듯한 표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마누라한테 밥은 얻어먹고 사냐, 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었더니 정승 판서가 안 부럽다, 배가 부르니 세상이 눈 아래로 보인다.'는 식이다. 생각건대 남자들의 로망은 아마도 잘 차려진 밥 한 그릇 먹는 데 있었던 그것은 아닐까.
얼마 전, 친정집으로 불쑥 퇴근한 남편은 친정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밥솥째 뚝딱 비우더니 "장모님 참말로 밥 잘 묵었심더."라며 지갑을 열어 만 원권 지폐를 몇 장 꺼내 밥값이라며 엄마 손에 쥐어준다. 남편의 이러한 돌발행동에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사위의 뜻을 알아채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남편이 뜬 밥숟갈에 고등어 살을 발라 올려주며 "아이고 우리 밥서방 고맙네!"라며 연신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당신이 해 주신 밥을 정성껏 먹어주는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한 끼의 정성을 알아주는 사위가 고맙기 그지없었을 테다. 행여 당신 딸이 사위에게 부실하게 차린 밥상을 들이밀진 않았을까 은근 노심초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습속에, 쉰 음식은 자기가 먹을지언정 손님에게는 따끈한 새 밥 한 상 차려주는 미덕이 있다. 심지어 밥을 구걸하는 거지에게도 밥상을 차려 내 줄 정도로 밥에 대한 예의가 분명했다. 각다분한 세상, 가족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는 가장들의 수고가 한 그릇의 밥으로 보상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오늘은 간이 잘 밴 자반고등어 한 손 구워 밥상에 올리리라. 며칠 비린내를 인내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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