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인 2020.08.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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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부

밤에는 별빛으로 흐르고
풀빛으로 스며들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 꽃을 피어내지 못할 거라며
조그만하게 보다 더 움츠린
잎사귀일지라도
이제는 꽃을 피우겠다고
푸르게 산다는 건
다다를 수 없는 깊이

가늘어도 줄기를 세우겠다고
흙 속에 몸 깊숙이 묻어
가느다란 줄기라도 피는 곳마다
완성이 되지 않아
피고
지고
피었다

◇권이부= 1962년 경북 예천 출생, 경북 외국어 대학교 졸업, 영어 전공, 문화분권으로 2019, 10, 7,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삶과 문학, 회원.

<해설> 꽃을 피어내지 못하는 풀은 신선한 허무다. 별빛으로 흐르는 것들은 뿌리를 내리지 않아도 좋다. 흙 속에 몸 깊숙이 묻은 잡초를 보면 나는 아직 네가 낯설어 아침에 떠오는 태양도 낯설다. 오늘은 남루한 희망에 기대어 지구를 떠도는 집시가 되어 초원에 성호를 그으며 없는 죄들을 찾아 뉘우쳐본다. 떠도는 것들은 피고 지고 또 피우고 완성이 되지 않아도 내일이면 또 어딘가에 닿기 위해 가느다란 줄기라도 피워 문다. 잃어버린 것들과 찾아 떠도는 것들이 한데 섞인 움츠린 잎사귀들이, 가늘어도 가지를 세우겠다고 피어오르는 날이 오면,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다다를 수 없는 깊이로 저항하며 시간의 강을 건넌다.? 파란 하늘의 의례적인 바램 속에 미리 당도한 꽃들이 시드는 저녁. 마지막까지 믿을 것도 한낱 관념으로 여기며 진리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이름모를 풀이 되어도, 아직은 가진 것이 너무 많은 듯 대지의 오랜 회유에도 투항을 거부한다. 철길에 기댄 장미는 여전히 가난을 숨기고 있지만, 어스름 풀밭의 여치 소리 우렁이들 코골음 소리에 실낱같은 그리움의 피가 돌아 나오면, 가늘고 짧은 가시가시 마다 낙타 빛 고독이 눈부시다. 뭍에 오르면 돌로 변하는 별빛 뿌리가 바다처럼 깊어질 때,반성도 없이 푸르게 흘러흘러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간다. 삶이 죽음을 피한 가까스런 늑장이라 해도, 끝내 무책임하게 흘러간다. 어차피 삶은 견고한 허무, 풀빛이 풀어놓은 도랑마다 웃음이 가득하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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