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시장의 성급한 대권행보
권영진 시장의 성급한 대권행보
  • 승인 2020.08.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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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시인·전 계명대겸임교수
페이스북에 권영진시장의 ‘국가대개조론’이 떴다. 필자는 놀란 눈으로 내용을 열었다. 국가를 ‘대 개조’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지 않는가. 구상이 그럴 듯 해보였지만 적잖이 실망한 게 사실이다. 헌법을 개정하여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사를 전문가들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불쑥 발표한 것부터가 신중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 달 전에 민주당 출신 홍의락 전의원을 경제부시장으로 임명한다는 발표 역시 이랬다. 민주주의는 절차를 중시하는 제도다. 그래서 절차와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아무리 시장이라도 국가의 근본을 바꾸는 일에는 토의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권시장은 이런 절차를 아랑곳 하지 않는 것 같다. 독단이야말로 전체주의에나 있을 법한 사고(思考)가 아닌가?

권시장이 발표한 전문은 이렇다. <전문〉왜 청와대와 국회만 세종시로 옮기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과 전국에서의 고른 접근성, 법조 전통성 등을 고려하면 대구가 적지이다. 경북도청 후적지 13만2천232㎡(4만평)의 좋은 공간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미래통합당에 권고한다.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실정을 감추기 위한 꼼수 맞다. 그러나 꼼수라고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우연이 필연이 되듯 꼼수가 묘수가 될 수도 있다.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드는데 그치는 것은 수도권을 충청권으로 확대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국토균형발전에는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 추풍령 이남의 호남과 영남 그리고 강원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국가대개조가 필요하다.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권을 문화수도로,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부을경을 금융수도로,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TK를 사법수도로, 강원을 관광수도로 만들어 지방을 특색 있게 살리는 담대한 국가대개조의 큰 그림하에 국가기관을 분산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대안도 선제적으로 마련해서 이를 주도해야 한다.

아니 서울을 수도에서 뺀 채 권역별 5개 수도를 만든다고, ‘국가대개조’가 되는 건가? 누가 봐도 신 궤변이라고 할만하다. 아무리 통합당이 지리멸렬해도 소속 광역단체장이 이런 중차대한 일을 당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불쑥 ‘권고’할 수 있을까? 시쳇말로 막가는 것 같다. 더욱이 여권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믿고, 일방적으로 개헌을 밀어 붙이려는 조짐이 있어 미래통합당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을 너무 잘 아는 권시장이 아닌가. 여기에다 권시장은 한술 더 떠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대구에 유치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행정수도 이전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헌법개정에 동의한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여권에서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도 남을 일이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적극 지지자들이 줄을 이었다.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미래통합당의 중심부인 대구에서 헌법개정의 빗장을 스스로 여는 것 같아서다. 헌법개정에 어디 행정수도 이전만 들어가겠는가? 대통령중임제 외에도 토지소유 문제 등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요소들이 빈틈을 뚫고 들어갈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당론도 정해지지 않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권시장은 “여당의 ‘꼼수’가 ‘묘수’가 된다”며 통합당이 자신의 ‘국가대개조론’에 동참하라는 식이다. 권시장이 탈당이라도 한 것처럼 착시가 일어난다. 도대체 통합당은 어디로 가고 있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권시장에게 묻고 싶다. 세종에 행정수도, 부산에 금융수도, 대구에 사법수도, 광주에 문화수도, 강원에 관광수도를 하면 국가대개조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세계 어느 나라에 이렇게 많은 수도를 둔 나라가 있는가? 그리고 서울은 수도가 아니면 무엇인가? 글로벌시대는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미국은 뉴욕, 영국은 런던, 프랑스는 파리, 일본은 도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다. 여기서 국부가 창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권시장은 서울을 수도에서 뺐다. 세계 중심부에 있는 우리나라가 주변부로 밀려나가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설사 대권욕이 있다 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세상에 ‘사법수도’가 뭐꼬?” 또 “천년의 역사를 가진 ‘경주’가 문화수도고, 관광수도지 광주와 강원이 어떻게…” 차라리 헌법 개정에 동조한다고 하면 여권의 힘찬 박수를 받을 텐데 에둘러 우회하는 화법을 쓸게 뭐람. 권시장의 성급한 대권행보? 영남의 선비정신과 기개가 꺾이는 단초가 될까 두렵다. 권시장에게 차제에 2004년 헌법재판소의‘수도’의 개념을 되새겨볼 것을 권한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헌법기관들 중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을 수도로 결정하는데 있어서 특히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권시장의 수도 분류 방법은 헌법과 상당부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시공(時空)을 넘어 ‘과유불급(過猶不及)’즉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성현의 말씀이 가슴 뭉클 다가온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날로 치솟는 부동산 대책이다. 그리고 추미애법무부장관의 도가 넘는 검찰권제약에 대한 우려를 걷어내는 것과 조국 전 법무부장관 비리사건, 울산선거부정의혹사건 등 청와대관련 비리의 엄정수사이다. 어디 그 뿐인가. 행정수도보다 더 급한 게 코로나19 이후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는 일이다. 한가하게 대법원, 헌법재판소 유치타령이나 할 때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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