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권리, 좋아하지 않을 권리
좋아할 권리, 좋아하지 않을 권리
  • 승인 2020.08.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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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좋아하지 않을 자유도 동시에 가진다. 이런 것을 우리는 권리라고 말한다. 권리는 당연히 누리는 것을 말한다. 억지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1년 전쯤, 한 아름 고민을 안고 날 찾아온 청년이 있었다. 그는 군대를 전역하고 삶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민은 모두 진지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누구보다 삶에 대해 궁금해했고,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형편없다 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차례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보고 그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한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불쑥 연락이 왔다. “교수님 전화 가능하신가요?”내 폰에는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라 처음에 누군지 몰라 “누구신가요?”라고 다시 묻고 난 뒤에야 그 청년임을 알게 되었다. 어떤 하나의 사건이 있어서 그 계기로 전화번호를 바꾸었다고 한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했다. 그 청년과 긴 통화를 했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었고, 또한 어떤 일이 있어서 번호까지 바꾸게 되었는지를 30여 분간 이야기를 혼자서 했다.

처음으로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용기 내어 그에게 자신의 번호를 주고 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그냥 편하게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모양인지 그의 다가섬이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고백 이후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홀로 남게 된 청년의 마음과 눈물만 있었다. 그 계기로 전화번호도 바꾸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마음에 구름이 걷히고 난 후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여전히 그는 삶이 궁금했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나에게 묻고 있었다. 길었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을 나눴다. 그것은 충고도 아니었고, 답도 아니었다. 그냥 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그대로의 마음. 그 마음이 전달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 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이야기가 들려진 것인지 몰라도 그도 편안해했다. 그리고 내가 해준 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할 자유가 있고, 그리고 좋아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네가 강제할 수는 없어. 너의 마음을 받아주고, 받아주지 않고는 순전히 그녀의 몫이야. 그녀의 마음은 그녀의 것이고, 그녀의 자유니까. 네가 좋아한다고 그 사람도 너를 무조건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란다. 그런데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네가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용기 내어 전했다는 것이야.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잖아. 잘했어. 멋지고” 통화를 마치며, 그 청년이 내게 말했다. “통화하길 잘했네요. 고맙습니다.” 나 역시 고마움을 느낀 통화였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은 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가슴 시리고 절절한 일인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행복하고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상대방 역시 누군가를 좋아할 권리, 싫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역시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당연’의 법칙을 적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아픔을 경험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상대도 자신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고 상대가 혹여나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를 받고,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욕심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고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그의 결정이 그의 삶에 행복이길 빌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고, 또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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