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볏짚서 생명 발아…노동의 잔해에 새 숨 불어넣다
죽은 볏짚서 생명 발아…노동의 잔해에 새 숨 불어넣다
  • 황인옥
  • 승인 2020.08.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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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개인전 31일까지 우제길미술관
도마·가마솥·방앗간 기계…
삶의 현장서 버려진 사물에
예술행위 더해 노동가치 환기
숭고한 우리네 삶·애환 위무
최근 작품세계 변화·외연 확장
특정 도구서 자연물로 시선 돌려
자연·생명의 순환의 섭리 표출
볏짚·볍씨 이용 큐브작품 ‘눈길’
김결수 작 '노동, 효과'
김결수 작 ‘노동, 효과’

‘먹이를 구하는’ 1차원적인 노동에서부터 ‘자아실현’을 위한 고차원의 노동까지, 노동의 양태는 실로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종류의 다양성과는 별개로 ‘생명 유지’라는 가치는 노동의 핵심 본질로 추앙받는다. 특히나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는 인간에게 노동은 삶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핵심 수단인 까닭에, 노동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은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다.

모든 것이 그렇듯, 노동에도 급이란 것이 있고, 지구상의 모든 노동에도 가치 척도를 적용해왔다. 어떤 노동에는 숭고함, 어떤 노동에는 천박함이라는 극과 극의 가치를 적용한다. 작가 김결수의 작가정신이 발현되는 매개는 노동이다. 그 중에서도 ‘숭고한 노동’을 시각언어로 펼쳐내며, 노동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 간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결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과연 “숭고한 노동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노동의 효과’에 주목한다. 더 정확히는 ‘노동의 귀결점’이다. 그는 이 질문을 따라가다 ‘이타성’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린다. “제 작업의 주제는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타적인 노동’에 맞춰졌어요.” 이는 그의 작품 제목이 ‘노동(labor)-효과(성) (effectiveness)’이 된 이유다.

작업은 두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는 오랜 시간 누군가가 노동의 도구로 사용하다 효용가치를 다해 버려진 사물들을 찾는 수집과정이다. 가족이나 타인의 삶을 위한 ‘이익 창출’에 사용된 노동의 도구들이 주로 선택된다. 특정 도구를 사용해 이익을 창출하고, 그 이익이 이타적인 효과로 이어진 도구들이다.

이타적이라고 할 때 가장 절박한 대상은 누구일까? 바로 가족이다. 자신과 분리된 대상 주에서 가족만큼 절박하게 이타성이 이입되는 대상은 없다. 작가가 오브제로 선택하는 도구들이 향하는 지점도 바로 이 ‘가족’에 맞춰진다. 요리에 사용된 도마, 해체된 집의 구들장과 서까래, 버려진 배, 깨어진 가마솥, 방앗간 기계, 네온사인 등 하나같이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한 노동이 투입된 도구들이 해당된다.

작가는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 숭고한 노동의 효과를 재인식 하도록 이끈다. 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던 도구보다 더 숭고한 노동의 효과가 있을까요?”라며 반문한다.

노동의 효과가 서려있는 버려진 사물이 예술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동이 필요하다. 바로 작가 김결수의 감수성 짙은 노동이 가미되는 시점이자, 작업의 두 번째 단계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시공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과거의 콘텐츠에 현재시점의 작가 김결수의 감수성을 더해 미래세대의 역사와 창작원으로 전해진다”는 논리를 폈다.

말하자면 그에게 수집된 도구들은 과거 누군가의 삶을 위무하기 위한 영매이며 작가의 예술적 행위는 제의적 행위이며, 그 복합적인 노동으로부터 얻어진 결실인 그의 작품들은 미래세대를 위한 점괘에 해당된다.

그가 “내가 수집한 과거의 도구들은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의 정치, 사회, 환경에 대한 다양한 삶의 편린이 묻어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타임캡슐과는 다르다”고 했다. “과거의 도구에 작가인 저의 현재시점의 예술적 노동도 더해짐으로써 시간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죠.”

설치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던 ‘노동, 효과’라는 예술적인 주제는 평면에 이르러 보다 명확화 된다. 그는 평면에 굵은 선으로 드로잉한 집의 형상들을 배치한다. 굵은 선은 노동의 효과를 부각하는 요소다. 집을 표현하는 선굵은 드로잉과 대조적으로 배경은 예리한 도구로 표면을 뜯어 부풀린다. 표면을 뜯는 과정의 작가의 직접적인 노동은 설치작업 오브제가 가진 타인의 1차적 노동의 효과와 연결된다.

“집이 곧 가족이라고 한다면, 집은 가족의 삶이 집적된 공간에 해당되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가족의 역사는 굵은 선으로 표현한 집의 형태에서 오히려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가 ‘노동, 효과’에 주목한 것은 10년 전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위해 자주 가던 포장마차 여주인이 사용하던 도마에서 노동의 고단함과 그와 반대급부인 노동의 효과를 발견하면서 ‘노동’과 ‘노동의 효과’는 그의 예술적 주제로 부상했다.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누군가의 노동에 대해 위로를 보내고 싶었어요. 일종의 제의적인 진혼이었죠.”

최근에 그의 작업에 확연한 변화가 포착된다. 노동에 사용되었던 도구 대신 대지라는 자연과 관련된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변화의 핵심이다. 정확히 지난 5월 갤러리 오모크에 출품한 거대한 사각 흙 큐브 작품부터 시발점이됐다. 당시 그는 전시장 바닥에 사각 거푸집을 만들고, 그 속을 황토 흙으로 채운 뒤 거푸집을 제거했다. 전시기간 동안 공간을 넘나드는 바람과 관람객의 움직임에 의해 사각 큐브 흙더미는 아주 미세하게 허물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흙에 딸려온 이름 모를 씨앗이 발아하기도 했다. 이 상황들은 모두 영상으로 기록되어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상영됐다.

지난 7월 시작한 우제길미술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에서 변화는 보다 명확해진다. 작업의 재료는 볏짚. 작품 제작은 흙으로 만든 갤러리 오모크 전시작인 사각 큐브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전시장 바닥에 사각 거푸집을 만들고 볏짚을 켜켜이 올린다. 볏짚 사이사이에는 수분을 충분히 머금을 수 있을 만큼의 물을 뿌리고, 사각 모서리에 4일 동안 정성들여 발아시킨 볍씨를 심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볍씨의 발아는 더욱 속도를 내고, 볏짚 속에 묻어온 다양한 포자들에서 이름 모를 식물들도 발아를 시작한다. 작가가 “생명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인간의 순환을 흙으로 표현했다면 볏짚이 비록 생명을 다한 재료지만 예술가의 손길에 의해 새로운 생명으로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변화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발견된다. 이전 작업이 타인이 사용하다 버린 도구에 작가의 정신을 삽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의 변화된 작업들은 자연물에 작가의 노동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때 전자는 생명력이 거세된 반면, 후자에는 여전히 생명 가능성이 배태되어 있다는 차이점이 발견된다.

“전작들에서 누군가의 노동을 훔쳐왔다면, 최근작에는 보다 자연적인 산물들이 선택되죠.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점을 ‘영원한 순환’으로 확장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그가 “재료와 작업 방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언급했다. 농부의 노동 흔적인 볏짚에 김결수의 예술적 노동을 가미해 ‘노동, 효과’에 층위를 더하는 것. 이전 작업과 다른점은 ‘순환’이라는 주제의 확장에 있다.

“사람 태어나 어른 되어 인생사 다 살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결국 또 아이 태어나고 하는 과정이 자연의 생명력과 다르지 않다고 봐요. 최근의 작품들은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순환’이라는 주제로 접근할 경우 ‘집’을 그린 평면작업은 세대를 이어가는 인간의 순환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표면화로 다가온다. 작가가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은 부모 세대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당면 과제였고, 태어나는 죽는 그 모든 과정이 집에서 이뤄졌다.

집은 인간의 모든 것이자 세대를 이어주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다.

평면에 구현한 집들은 모두 흑과 백으로 표현된다. 색채를 배제하고 구체적인 형태도 간결한 선으로 대신한다. 작가가 “우리 부모 세대 주택의 도학적인 측면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무겁다”고 했다. “질펀하고 잔잔한 삶의 애환들을 집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어요. 거기에 알록달록한 칼라는 적용하면 본질적으로 제가 추구하는 순환에 대한 이야기와는 멀어지게 되죠.”

김결수의 작업은 선이 굵고 무겁다. 질펀한 노동의 도구들을 통해 삶의 애환을 위무한다. 혹자는 그런 그에게 “좀 말랑말랑한 작업도 해보라”고 조언도 하지만 그는 굳건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일관되게 작품을 통해 사유해 온 ‘노동, 효과’라는 ‘숭고함’의 측면에서는 이율배반이라는 생각의 발로다.

“예술이 주는 효과를 금전으로 환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의 예술적 노동으로 드러나는 효과는 그것보다 훨씬 높고 크다”는 것. 그러면서도 “예술가는 죄인”이라고 했다. “자신의 좋아하는 작업을 통해 아름답고 높은 경지로 나아가려는 갈망으로 가족 부양을 위한 금적적인 이익은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예술가를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시지프스에 비유했다. 시지프스는 언덕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 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인물이다. 그가 “평생 바위 산에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예술가는 돈이 되든 안 되든 평생 예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숙명”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늙어 힘이 딸려 작업을 할 수 없는 그 순간까지 가족에게 죄를 사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 작업하는데 너무 기회주의거나 현실에 맞춰 작업하면 특별하다고 이야기하는 예술에서 보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 않겠어요?” 전시는 우제길미술관에서 31일까지. 문의 012-224-660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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