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을 꿈꾸며
새로운 계절을 꿈꾸며
  • 여인호
  • 승인 2020.08.10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은희
대구도림초등학교 교장


비 온 뒤 여름은 햇살 아래 젖은 꽃잎을 말리느라 투명한 하늘을 드넓게 펼쳐 넌다. 풋풋한 바람결에 파슬파슬 실려 오는 은은한 꽃향기로 어질어질 멀미가 날 지경이다. 빗방울 머금은 채 무리 지어 나지막이 핀 자줏빛 들꽃은 가볍지 않은 웃음으로 마음 안에 냉큼 들어앉는다. 짙은 수풀 속에 숨어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쾌청하고 짱짱하다. 봄을 터트린 연한 순들은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느새 야무지게 자라 눈 안 가득 풀빛으로 물들게 한다.

이 계절 우리는 작은 새 가슴으로 한숨조차 편히 못 쉬며 졸인 마음으로 움츠리며 소낙비에도 젖지 않는 푸석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바람 지날 거리를 두고 살아야 서로 원만하다지만 멀고 먼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살라 하니 말을 아끼느라 주고받는 눈길만 깊어 간다.

어쩌다 우리는 이 어둠의 터널에 갇히게 되었을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새롭게 이어지던 그 많은 고마움을 별생각 없이 지나쳐 살았기 때문일까…

너무 좋은 것들에 젖어 작은 것의 참 의미를 놓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해와 관용을 잃고 무심히 뱉어버린 수많은 말들이 사람의 마음마다 닿아 불편함으로 쌓여가기 때문일까…

소통의 부재로 감정과 편견에 치우쳐 오해가 깊어 가도 이기적인 무관심으로 제각각 외로운 섬으로 뿔뿔이 떠 살아가기 때문일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사랑하는 일에 마음을 닫으며 게으르고 옹졸하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실되고 품위 있는 사랑의 말을 연습하라고 깊은 침묵의 시간으로 주어진 건 아닐까…

향방 없이 날아드는 여러 생각들로 마음이 흔들려 뒤숭숭하다.

우리가 다정하게 손 맞잡을 날은 과연 언제쯤 올까…

햇빛 아래 뛰놀며 한껏 뿜어내는 아이들의 웃음을 두 손 가득 받으며 큰 환호로 답해줄 날은 언제일까…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고 안톤 체홉이 말했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볼까, 어떻게 들을까, 어떻게 느끼며 살아갈까 고민할 때 세상은 오늘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아올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 밀어내지 말고 나의 몫으로 받아들여 내가 먼저 변화를 짓기 시작한다면 이 어려움, 이 고통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고통의 무게에 바닥까지 짓눌리지만 그 고통에 매이지 말고 어둠을 다스리는 자유함으로 새로운 계절이 오기를 기원하며 지나온 삶을 세심하게 되짚어보는 겸허한 시간을 가진다면 멀지 않아 어둠을 걷고 밝게 웃을 수 있는 하얀 세상이 올 것이다.

가벼운 날개를 달고 목청 돋우어 노래하는 새처럼 높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더 푸른 세상이 곧 올 것이라 기대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야 할지 묻고 또 물으며 오늘이라는 삶의 밭에 새로운 계절의 씨앗을 뿌린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