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해선 척척박사, 자신에 대해선 바보
타인에 대해선 척척박사, 자신에 대해선 바보
  • 승인 2020.08.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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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타인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지식은 타인에 대한 것이기 전에, 먼저 자신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자신 속에 타인이 있고, 자신 속에 우주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대학 학부 때부터 박사과정까지 줄 곧 심리학을 공부하였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만난 사람들이 내가 전공하는 것이 ‘심리학’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말조심해야겠는데요. 제 마음을 다 꿰뚫어 보시는 것 아닌가요?”라는 식이다. 심리학이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학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배우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과목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본인도 처음 심리학을 공부할 때는 타인 행동이 먼저 보였다. 수업시간에 배운 얕은 지식으로 ‘저 사람은 저렇고, 이 사람은 이렇고’라며 마음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진단을 내렸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런데 심리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보였다. 나의 아픔이 보였고, 나의 상처가 보였다. 그 후 나의 공부 방향은 오로지 나였다. 나에 대한 연구였고, 나에 대한 성찰이었다. 그런 과정이 깊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공부는 평생 자신을 배우는 과정이라 했지 않은가. 본인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척척박사라는 사실이다. 어쩜 그렇게도 타인의 생각과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잘 아는지 모르겠다. 타인의 속에 가지고 있는 마음을 안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그 사람이 가질 마음까지 미리 예견할 정도로 타인에 대해서 척척박사다. 뉴스에 어떤 사람이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면,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나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으로 그 사람을 평가 내린다. 그 후 나쁜 사람이라 판단 내려지면 왜 저 사람이 나쁜지를 주위에 말하기 바쁘다. 반대로 좋은 사람이라 판단 내려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믿고 싶어 한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에도 기꺼이 방패가 되어 준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진실은 무엇일지 기다리고 지켜봐 주지 않는다. 그냥 답을 딱 내려버린다. 그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줄줄이 열거하기 바쁘다. 그냥 우리는 어쩜 이렇게 남을 잘 알고 있을까? 그런데 궁금한 것은 과연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냐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할 때는 대다수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잘 알아야 할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타인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인 경우가 많다.

본인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 학생들에게 성적평가를 위해 과제를 내게 되는데, 과제는 거의 모든 과목을 자신의 생각을 담을 것을 요구한다. 책에 있는 내용을 옮겨 요약해 오라거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내용의 것을 담는 것을 과제로 내어 보지 않았다. 책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인터넷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본인만의 사례와 본인만의 생각을 담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과제를 내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작성하라”라는 말을 하면 반응이 재미있다. 갑자기 교실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아~~교수님 어려워요”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중에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재밌었던 반응은 “교수님 그렇게 안 봤는데”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그런 반응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본인이 생각할 때는 자신의 사례와 생각으로 적으라면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모두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자신을 가슴 뛰게 하고, 어떤 말이 힘을 빼는 말인지 잘 모른다. 이제 타인에게 향했던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려보자.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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