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견된 말라리아 기생원충,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서…
첫 발견된 말라리아 기생원충,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서…
  • 김종현
  • 승인 2020.08.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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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26) 자연섭리의 ‘하얀 속살’을 스케치하다
프랑스 열대병학자 ‘라브랑’
1880년 말라리아 원충 발견
포착된 순간 직접 스케치 작업
600여편 연구 논문 작성·발표
190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스위스 의학자 ‘에밀 코허’
갑상선 연구로 사망률 대폭 줄여
학창 시절 그림그리기 취미 살려
연구 자료 시각화에 많은 노력
노벨생리의학상-바이러스
아주 미세한 미생물에 의한 각종 질병으로 세상의 기존 질서가 변혁되듯 미량동 작용에 주목해 노벨의학상을 타게 된다. 그림 이대영

1907년 프랑스 열대병학자 샤를 루이 알퐁스 라브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 1845~1922)에게 ‘질병을 야기하는 원생동물에 의한 역할을 규명한 연구공적을 인정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라브랑은 프랑스 파리 세인트 미셸(Boulevard Saint-Michel)에서 발드그레이스학교(Ecole Bald Grace)의 군대의학 교수를 맡았던 아버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기에 군대식으로 양육됐다. 초·중등교육은 파리에서, 고등교육은 셍트바르베대학(College Saint Barbe)에 다니다가 리세 루이르그랑(Lycee Louis le Grand)을 졸업했다. 아버지와 같은 군의관의 길을 택해 1863년 스트라스부르 보건학교(Public Health School at Strasbourg)에 등록해 보건과정을 마치고, 1866년 스트라스부르 시민병원(Strasbourg civil hospitals)의 수련의사과정까지 마쳤다. 1867년 스트라스부르대학에 박사과정을 등록해 ‘신경재생에 대한 연구(Strasbourg civil hospitals)’ 학위논문으로 의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프랑스 육군 발트그레이스학교(Ecole de Valde Grace)에서 군대질병 및 전염병 담당관(Chair of Military Diseases and Epidemics)에 배속됐다. 1870년 프랑코-프러시아 전쟁(Franco-Prussian War)이 발발하자 릴레병원(Lille hospital)에 배치됐다가 다시 생마틴병원(St. Martin Hospital)으로 파견됐다. 1874년 육군 군의관 교관에 발탁됐고, 발트그레이스학교의 군대질병 및 전염병학회장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1878년부터 1883년까지 알제리(Algeria) 콘스탄틴 군사병원에 근무하면서 1880년 원충인 기생충 플래스모디움(protozoan parasite Plasmodium)이 말라리아를 야기 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순간을 포착해 기생원충을 하나하나 스케치해서 600여 편의 연구논문을 작성 발표했다. 세간에 주목을 받았던 스케치를 모아 1881년 ‘말라리아의 기생적 특성(Nature parasitaire des accidents de l’impaludisme)’, 1884년 ‘말라리아 미생물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발열조치’등 색채감이 살아나는 스케치 그림으로 저서를 남겼다.

1909년 스위스 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에밀 테오도어 코허(Emil Theodor Kocher, 1841~1917)에게 ‘갑상선에 대한 생리학, 병리학 및 수술에 관한 연구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줬다. 스위스 수도 베른(Bern)에서 목수 아버지의 5남1녀 가운데 6번째, 2번째 아들로 태어나 1945년 부르그도르프(Burgdorf)로 옮겨 초등학교를 마쳤다. 다시 베른으로 이사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레알슐레와 문화김나지움(Realschule & Literatur Gymnasium)에서 학업을 했다. 학창시절에 그림그리기(sketch)와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중에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코허는 1858년 베른대학(University of Bern)에서 안톤 바이어머(Michael Anton Biermer, 1827~1892)와 헤르만 아스카탄 데미(Hermann Askerm Demmem) 교수의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1865년 베른대학에서 안톤 바이어머(Michael Anton Biermer) 교수의 지도 아래 ‘베라트룸 제제로 동반된 폐렴치료’ 학위논문으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은사를 따라 취리히대학으로 옮겼으나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자 즉 당대 유명한 외과의사 몇 분을 만나기 위해 연구여행(Research Tour)을 떠났다. 1872년 모교 베른대학교 외과학 교수직과 외과병원장을 맡았다. 어릴 때에 배웠던 그림그리기 취미를 살려 연구요약과 설득력 있는 시각화에 많은 신경을 썼다. 또한 울혈(congestion)과 살균치료법을 통한 무균외과치료(aseptic surgery)에 집중했고, 골수염과 총상치료에 정통했다. 249편의 연구논문과 130명의 박사학위논문을 지도·감수했다. ‘갑상선 치료연구로 갑상선종수술에서 1%이하로 사망률까지 줄이는데(reducing the mortality of thyroidectomies below 1% in his operations)’ 인류기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수상 뒤에 베른에 코허연구소(Kocher Institute)를 설립 운영했다.

조사여행(research tour)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1908년 러시아 태생 유대인으로 동물학자 및 세균학자인 일리야 메치니코프(Ilya Ilyich Mechnikov, 1845~1916)와 독일 미생물학자이며 화학요법(chemotherapy)의 창시자인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에게 ‘면역에 관한 연구결과를 인정’해 2인 공동수상자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줬다. 파울 에를리히는 오늘날 폴란드 당시 프로이센왕국 슐레지언 슈토레렌(Stollen)의 유대인 태생 독일인 가정에서 태어나 막달라 마리아학교((Maria Magdalenen Gymnasium)에 입학해 의학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교육은 브레슬라우대학(Breslau University), 스트라스부르대학(Strasbourg University), 프라이부르크대학(Freiburg University im Breisgau) 및 라이프치히대학(University of Leipzig)에서 학문쇼핑(science shopping)을 하면서도 학문탐구(science mining)를 병행했다. 마지막 박사과정은 베를린 차리테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882년 혈액학과 세포염색(cell staining)에 실험적 임상학 창시자인 베를린 차리테 의과대학교(Charite Medical School in Berlin)의 테오도르 프리츠(Friedrich Theodor von Frerichs, 1819~1885) 교수의 조교로 근무했다. 1888년부터 1889년 2년간 이집트와 주변국가의 학문탐구여행(science mining tour)을 떠났고, 결핵에 대한 실험계약을 맺기도 했으며, 돌아오자마자 색소에 의한 조직염색(staining methods) 연구를 시작했다. 가열염색 결핵균 표본을 계기로 로버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 교수의 연구소에 초빙되어 면역학 연구를 했다. 그는 치료에 화학요법(chemotherapy)과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란 용어를 도입해서 15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주요논문으로는 1897년 ‘디프테리아 혈청의 가치와 이론적 근거’, 1905년 ‘독소와 항톡신의 관계와 탐독방법’ 및 1910년 ‘나사형 박테리아의 실험적 화학요법’등이 있다.

◇ 미량동(微量動) 작용으로 세상이 변한다.

질병대유행(pandemic)은 물리학의 ‘상전이’(phase transition)를 불러온다. 중국 한서(漢書)에서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태산 같은 큰 바위를 뚫고, 노끈으로 문지르는데 기둥이 잘려나간다”는 말이 있고, 향언하(向言下)라는 책에선 “뱀에 물려서 팔이 잘리고, 개미구멍으로 대천의 둑이 무너진다”고 했다. 한 마디로 사소하고 미세하다고 무시했다가 세상이 뒤집혀진다. 마치 물이 섭씨 영도에서도 얼음으로 변하고, 얼음이 물로 변혁하는 걸 물리학에선 상전이(phase transition, 相轉移)라고 한다.

인류역사에서도 어떤 큰 전쟁보다도 아주 사소하다고 무시했던 모기에게 더 많은 희생을 당하고 있다. 모기뿐만 아니라 미생물에 의한 각종질병으로 인해 세상의 기존질서가 변혁된다. 화학에선 미세역학 작용(oligodynamic action) 혹은 미량동 작용(微量動作用)이라 한다. 생명체에 있어서도 미량의 금속이온이 생물의 발육을 방해하거나 생명을 박탈하는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런 현상을 최초로 전략과 전술로 사용한 사례는 BC 149년부터 146년까지 포에니전쟁(Punic Wars)에서 카르타고(Carthago)를 함락시킨 스키피오 아일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 Africanus Numantinus, BC185~129)다. 그는 카르타고 도시를 불모지로 만들고자 땅을 가래로 갈고 소금(Nacl)을 뿌려 농경지를 불모지로 만들었다. 자연과학에 있어 1893년 스위스 칼 네겔리(Karl Wilhelm von Negeli, 1817~1891)는 구리용기에 해캄(spirogyra)이 발육하지 않는 이유는 미량의 구리이온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를 ‘미량동효과(微量動效果, oligodynamic effect)’라고 명명했다. 환언하면 콜로이드가 세포원형질 속의 설퍼하이드릴기(-SH)의 황과 강하게 결합해 산화환원계를 저해하는 작용이다. 순수한 물에서 금속의 이온화는 금(Au)<수은(Hg)<은(Ag)<구리(C)<수소(H)<Fe3+<주석(Sn)<납(Pb)<니켈(Ni)<코발트(Co) 등의 순서이고, 미량동작용은 은(Ag)>수은(Hg)>백금(Pt)>금(Au)>코발트(Co)>구리(C)>납(Pt)>Fe2+>아연(Zn)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 = 정경은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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