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에 일상 더해 만든 ‘완벽 균형미’…갤러리 더 블루, Ash 회원전 황해연
지질학에 일상 더해 만든 ‘완벽 균형미’…갤러리 더 블루, Ash 회원전 황해연
  • 황인옥
  • 승인 2020.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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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 전공자, 생명을 담다
인간과 영원불멸의 빙하 대비
불안한 삶 지질학적 해소 시도
의연한 자연의 성향 빌리기로
화폭 속 변주되는 일상
꽃은 화산, 물잔은 빙하…
여러겹 올린 원색·굵은 선 특징
절제된 형상으로 일상 감정 포착
황해연 작가
황해연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작가 황해연이 지질 이야기에 공을 들였다. 그림 그리는 작가와 지질의 조합이 낯설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그녀가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다”고 고백했다. 자연스럽게 화산이나 빙하 등 지질과 관련된 소재들이 그림과 결합되었고, 세상 어디서도 접할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화풍을 낳았다. 미술 공부는 대학을 졸업하고 편입해서 본격화됐다. 이후 내친김에 미술대학원까지 나왔다.

“100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아웅다웅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영원불멸 하는 빙하나 화산은 의연함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인간의 불안한 삶을 지질학적 요소들을 통해 해소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청소년기의 꿈은 지질학을 공부하고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입학할 때만 해도 꿈을 향한 여정은 순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반전이었다. “학교에서 책만 팔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해머를 들고 산을 타야 했죠. 정적인 타입인 제 성향과 맞지 않았어요.” 대학 재학 기간인 4년 내내 고뇌의 시간을 보냈고, 겨우 졸업만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꿈이 과학자라고 재능이 그쪽으로만 발달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림도 곧잘 그렸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미대를 선택지 중 하나로 두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를 핑게로 어린시절 꿈꾸었던 지질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운명은 둘러가도 결국 찾아가게 되는 법.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던 차에 경북대 미대에서 경북대 졸업생에 한해 편입자격을 부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술대학 편입시험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지질학과를 공부할 때와 달리 미술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 길이 제 길이었던 것이죠.”

첫 작업은 사진 설치였다. 실험적인 요소들이 강했지만 작가의 성격과 잘 맞았다. 그러나 작업에 재미를 붙일 즈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시아버지 병간호에 매달리면서 작업과 멀어졌다. 그 시간이 10년이었다. 다시 그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시기에 가족의 적극적인 응원이 있었다. 결국 다시 캔버스 앞에 앉았다. 주로 혼자만의 시간인 밤 시간대에 일기 같은 그림을 그렸다. 혼자만의 작업은 트위트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도 시작할 수 있었다.

“세상과 다시 소통을 시작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 갔어요.”

10년이 공백기 이후 사진 대신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어떤 풍파에도 흔들림 없이 고요한 지질 요소들을 떠올렸다. “그래. 지질이 보여주는 이상향을 그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면서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고통이 없는 고요한 이상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상향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색을 쓰고 선을 올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들어왔던 피안의 세계와는 차원이 많이 달랐다. 고요하고 정제된 기운 대신 강렬한 색과 선, 초현실적인 형상 등으로 톡톡 튀다 못해 기발하기까지 하다.

작가가 “지질과 그림이 만난 세상”이라며 “작가로서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이라고 했다. “ 차갑고 냉정하지만 그 안에 큰 에너지를 닮고 있고, 겉으로는 의연하지만 따뜻하고 생명의 원천이 되어주고 싶다는 작가로써 인간으로서의 가지는 이상향이에요.”

빙하나 화산은 작가의 화폭 속에서 다채롭게 변주된다. 물을 담는 유리잔을 빙하가 녹아내리는 형상과 접목하기도 하고, 맨드라미를 화산처럼 표현하고, 그 위에 여인을 눕히고, 맨드라미 줄기부분 빙하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빙하는 흰색에 굵은 검정 드로잉선으로 드러난다. “일상 속 대상에 생명을 키워내는 빙하를 간결하게 표현하려 했어요.”

영감을 받는 대상은 일상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자연, 사물 등에서 느끼는 투박한 감정을 정제한 후 자신만의 절제된 형상으로 표현한다. 여인의 뒷모습에 화산 폭발과 결합해 나이 들어감의 쓸쓸함을 표현하거나 중국의 신화 속 혼돈의 신인 동물 제강과 결합한 여인은 자녀 양육으로 힘든 주부 황해연을 형상화했다. 일상 외에도 문학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생명의 탄생은 기쁘지만 탄생을 이루기까지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빙하도 녹기도 하고 얼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물방울 녹아내려 생명의 원천이 되죠. 그런 것들이 인간(저)의 고통과 닮은 것 같았어요.”

초현실적인 형상이 황해연을 황해연답게 한다면 색채 또한 그녀의 시그니처다. 작가는 다양한 원색을 선호한다. 원색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최대 10번까지 색을 올린다. 비현실적일 만큼 느낌이 강한 원색을 보고 사람들이 “꼴라쥬냐?”고 더러 묻기도 한다. 여기에 형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굵은 검정 드로잉선은 밝고 강렬한 색채와 쌍벽을 이룬다. 작가는 색과 선을 표현하는데 있어 주안점을 두는 요소는 ‘균형’이다.

“색과 색의 균형, 직선과 곡선의 균형 등 전체적인 균형에 신경을 쓰며 작업하고 있어요.”

색이 시각적인 몰입도나 빙하의 기운이라는 상징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빨강은 고통, 주황은 정제미, 흰색과 검정은 빙하, 오방색은 다양한 감정상태 등 각각의 색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밝은색에 대한 선호는 작가의 타고난 기질과도 맞물린다. 친구와 헤어질 때 인사말이 “발랄하게 다시 만나”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기질은 생기발랄하다. 그녀가 표현하는 이상향이 “행복한 마법이 있는 세상”인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색과 선이 화려하고 강한 반면 형상은 간결하다. 이런 작가의 화풍에 혹자는 “너무 도안 같다. 좀 풀어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그것은 나답지 않다”는 것. 친절하게 풀어서 표현하기보다 자신 만의 상징은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림은 내면의 거울인데 나의 내면이 아닌 시류가 원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나를 속이는 일 같아요. 좀 더디게 가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어요.”

김기범, 이시영, 전대춘, 최숙정, 황해연이 참여하는 시각예술단체 Ash 4회 회원전은 31일까지 갤러리 더 블루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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