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 ‘다른 나’가 아니라 ‘새로운 나’
‘부캐’는 ‘다른 나’가 아니라 ‘새로운 나’
  • 승인 2020.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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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는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의미하는 ‘페르소나’에서 가져온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최근에는 다양한 가면으로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일상의 공간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있다. ‘멀티 페르소나’의 다른 말로 ‘부캐(부가 캐릭터)’가 있다. ‘부캐’란 온라인 게임이나 커뮤니티에서 본래 사용하던 캐릭터(원캐 또는 본캐) 외에 새롭게 만든 캐릭터를 뜻한다. 게임 사용자들이 게임을 다양하게 즐기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한 ‘부캐’는 ‘본캐’의 성능을 끌어올리기도 하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기도 하면서 게임의 재미를 더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만큼 쉽게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 ‘부캐’의 특징이고, 일부에서는 ‘본캐’가 하지 못하는 다른 역할을 위해 ‘부캐’를 이용하기도 한다.

방송사에서 ‘부캐’가 등장한 것은 2018년 ‘쇼미더머니777’에서 ‘래퍼 마미손’이 시작이다(래퍼 매드클라운이 본인을 감추고 별개의 인물로 등장했지만, 본인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부캐’로 활용했다) 방송가에서 ‘부캐’ 전성시대를 연 건은 유재석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캐’가 ‘유산슬’이다. 유재석은 이 외에도 ‘천재 드럼연주자’ 캐릭터로 ‘유고스타’를, 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라섹’, 하프 신동 ‘유르페우스’, 치킨의 맛을 설계하는 ‘닭터유’에 이어 최근에서 가수 비(비룡), 이효리(린다G)와 유재석(유두래곤)이 뭉쳐 ‘싹스리(SSAK3)’라는 그룹으로 음원 차트1위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신영의 ‘둘째 이모 김다비’, 박나래의 ‘안동 조씨 조지나’도 화제가 되는 ‘부캐’ 중 하나다.

‘부캐’는 연예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은 아니다. 특별한 이름을 짓지 않았을 뿐이지 일반인 누구나 ‘부캐’를 가지고 있다. 직장에서의 모습과. 퇴근 후의 모습이 다르듯이 일상에서의 모습과 SNS를 할 때의 모습이 다르다. 심지어 SNS에서도 운영하는 채널마다 각각 다른 정체성으로 메시지를 올리기도 한다. 게다가 이러한 정체성의 분리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개인 정체성의 분리는 다양성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부캐’를 보면 대부분이 인지도 높은 방송인이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인기(또는 본캐)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자신만의 ‘부캐’를 만들고 활동할 수는 있지만 ‘본캐’의 탄탄한 기반 없이는 ‘부캐’의 생명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러한 특성은 방송가의 인기 편중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신인이 등장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다양성을 이어가는 방송가에서 ‘부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 2019년 MBC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은 것이 신인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 아니냐며 쟁점이 되기도 했다. ‘부캐’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게임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로 시작한 ‘부캐’이므로 이 또한 하나의 놀이로 인식될 수 있어 쉽게 흥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쉽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선함을 이유로 반겼던 시청자들이 ‘부캐’의 범람에 결국 싫증을 느끼는 것도 한순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일상으로 옮겨와 보자.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만들어 놓은 일상에서의 내 ‘부캐’는 방송가에서처럼 새로움을 위한 ‘예능 트랜드’가 될 수는 없다. 한순간의 유행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직장에서 일을 할 것이고, 퇴근 후에 다른 모습으로 생활할 것이며. SNS에서 소통할 것이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여러 개의 가면을 쓰긴 하겠지만, 게임에서처럼 캐릭터를 삭제할 수도, 방송가처럼 쉽게 활동 중단을 외칠 수도 없다. 때문에 일상에서는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순간의 새로움에 끌려 일시적으로 만들어 내는 모습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이러한 모습은 단단한 ‘본캐’와 맥락이 이어져 있을 때 그 힘을 가진다. 단단한 ‘본캐’가 바탕이 되어야 ‘부캐’ 역시 그 힘을 이어갈 수 있다. ‘유산슬’이 그러했고, ‘다비이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가 아닌 ‘다른 나’는 없다. ‘지금의 나’로부터 만들어진 ‘새로운 나’가 있을 뿐. 수많은 ‘부캐’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의 나’ 즉, ‘본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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