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낙검(秋風落檢)이 되어서야
추풍낙검(秋風落檢)이 되어서야
  • 승인 2020.08.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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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시인·전 계명대겸임교수
가을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진다. 한 계절을 마감하고, 새로운 탄생을 위해 묵은 것들을 내려놓는 자연의 순행(順行)이다. 자연 속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맹자는 일찍이 자연의 순행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의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을 설파했다. 하지만 권력에 취하면 이런 자연의 이치조차 망각하게 되는 것일까? 한 개체가 멸종되면 생태계 사슬이 파괴되고, 그 영향이 바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엄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온난화 되면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죽게 된다. 물범 사냥을 못해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면 이런 사실을 학습한다.

요즈음 때 아닌 추풍(秋風)으로 세상이 어지럽다. 추미애장관이 윤석열총장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검찰인사를 주물러서다. 검찰은 국민의 인권과 관련된 준사법기관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부장관도 일반적으로 검찰을 지휘감독하고, 구체적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 지휘감독 하도록 되어 있다. 정치공무원인 장관이 수사에 직접관여하면 검찰이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자칫 법의 근간이 흐트러지고, 권력층의 비리마저 묻혀버린다. 그래서 선진국은 장관의 검찰권 행사를 극히 자제한다. 우리나라 검찰청법에서도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인사에서도 총장을 건너뛰었고, 이번 인사에서도 구체적 보직의견이 아닌 승진대상자에 대한 의견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지식이 일천한 필자의 생각으로도 ‘의견을 청취하라’는 것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여권과 추장관이 “들어라 했지 반영까지야” 하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검찰총장은 수사의 주체다. 직접 검사에게 업무를 지시하거나, 수시로 보고를 받으면서 전 검찰을 지휘한다. 가장 검찰을 잘 아는 총장의 인사의견을 들어주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추장관의 검사 인사를 보면 어안이 벙벙하다. 어찌 보면 추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추장관이 거물급(?) 정치인인 때문일까? 설사 탄핵사유가 생겨도 민주당이 국회의석을 3/5이상 차지하고 있어서 난공불락인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민주당이 소위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법률을 맘대로 제·개정할 수 있어서일까?

지난 1월 인사에서는 소위 살아있는 권력, 즉 울산시장선거부정 의혹사건 등 청와대관련 수사검사 전원을 좌천성 전보 조치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추장관은 이번 8월 인사에서도 윤총장의 뜻에 맞추어 열심히 일하던 검사들을 동의 없이 내쳤다. 그리고 소위 ‘빅4’를 모두 자신의 측근검사로 채웠다. 세간에는 윤총장이 고립무원(孤立無援) 에 빠졌다고들 한다. 세상에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이 팔다리를 잘라서야 될 말인가. 더구나 문재인대통령은 윤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엄명했다. 그런데 추장관이 이를 거스른다면 해임해야 옳지 않을까? 문대통령이 인사안을 결재할 때 윤총장의 의견은 무엇인지 살펴보았으면 적어도 인사전횡이라는 비난은 없었을 것 아닌가. 추장관의 검찰인사 독주, 그 끝은 어딜까?

국가사법체계가 흔들리면 국기가 문란해진다. 50일 가까이 장마와 태풍까지 겹쳐 국민들이 지쳐있다. 50명 가까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고, 8천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대피소에서 뜬눈을 새운 재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도 좀처럼 숙지지 않아 국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이런 와중에 삼복더위도 아랑곳 않고, 부동산 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집회가 주말마다 열린다. 3040세대는 ‘지금 집을 못 사면 영원히 무주택자가 된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마구잡이식 아파트 구입에 나서는 판이다. 부동산 정책 등 정책컨트롤 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가 제몫을 못한 때문인지 청와대 참모진 사표를 두고도 “공직보다 내집”이라는 조롱과 비판이 이어질 정도다. 심지어 국정을 수습할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의문마저 일고 있다. 거대 의석을 앞세워 입법 독주를 해온 민주당은 이도 모자라 일부 의원들이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선 윤석열 검찰총장이 뽑혀 나가야 한다” 는 둥 검찰총장 흔들기에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지금 이런 말을 내뱉을 상황인가.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폭우 피해가 예고된 지역에서 잇달아 술자리를 가진 사실도 드러났다고 한다. 이 정권에서 누가 나랏일을 걱정하고 국정을 챙기는 것일까? 국민은 불안하다.

21세기에 ‘추풍낙검’이라니…. 비리를 척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헌법기관인 검찰이 추장관에 의해 가을 낙엽처럼 휘둘리고 있는데도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침묵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게다가 친여성향의 여론은 찬사만 늘어놓는다. 문대통령과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가슴은 수마가 할퀴고 간 들녘처럼 황폐하다. 법무부장관이 이제 그만 검찰을 흔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권에 당부 드린다. 거대 의석수에 자만하지 말고 부디 순천자(順天者)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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