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명창 정순임
[문화칼럼] 명창 정순임
  • 승인 2020.08.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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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판소리는 17세기부터 시작된 민초들의 문화였다. 그 후 양반층에도 스며들며 가장 사랑받는 우리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민속악이 그런 것처럼 판소리 역시 소리꾼과 고수 둘만이 아닌 추임새를 통한 청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쌍방향 장르다. 헝가리의 ‘바르톡’과 ‘코다이’가 평생에 걸친 민요채집으로 그들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한 것처럼 우리는 신재효가 그러했다. 구전으로 떠돌던 판소리가 그로 인해 현재 형태로 채집, 정리되었다.

영화 ‘서편제’를 통하여 우리는 소리꾼들의 애환과 내면을 엿보게 되었고, 판소리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동북지역의 소리제를 ‘동편제’ 서남지역의 것을 ‘서편제’라 한다. 경기·충청 지방의 소리는 ‘중고제’라 부른다. 동편제는 기교보다는 담백하고 굳센 느낌의 창법. 서편제는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기교적이며 가벼운 창법이라고 평한다. 판소리가 전국적으로 유행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계면조 서편제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형성된 지리적 영향을 받아 호남 지방에 뛰어난 소리꾼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지역에도 역사에 남는 소리꾼이 많다. 그 대부분이 동편제를 이룬다. 동편제의 이화중선, 유성준의 문하에서 칠곡 출신의 향사 ‘박귀희’(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보유자-서울국악예고 설립)가 배웠다. 송만갑(동편제), 만정 김소희로 이어지는 흐름에 ‘이명희’(대구시 무형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구미 출신의 동편제 명창 박녹주(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의 소리가 박송희를 거쳐 정순임에 이른다. 이들은 우리 소리의 도도한 흐름의 중심에 있으며 음악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많은 업적을 쌓았다.

최근 정순임씨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소리의 길, 예술가의 외길에만 헌신한 선생의 업적과 가치를 늦게나마 나라에서 인정한 것 같아 그 기쁨이 크다.

국가무형문화재는 음악·무용·공예 등 무형의 문화적 자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그리고 학술적 가치가 큰 것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람·장르를 국가에서 지정하는 제도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정받은 ‘인간(또는 장르)문화재’로서 대단한 권위와 가치를 국가적으로 공인하게 된다. 제1호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강강술래 그리고 김치·장 담그기 등 140호 정도 인정 되어 있다.

이번 정순임 선생의 문화재 인정은 지역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선생은 7세부터 어머니인 명창 장월중선(장순애)에게서 소리를 배우며 판소리에 발을 들였다. 두루 균형 잡힌 발성과 가창력을 갖춘 최고의 판소리 인으로 평가받은 선생은 30번이 넘는 완창무대와 카네기홀을 비롯한 많은 해외무대에서도 극찬을 받아왔다. 장석중(거문고 명인, 외증조부), 장판개(판소리 국창, 외조부), 정경호(아쟁, 남동생), 정경옥(가야금병창, 여동생) 등 4대에 걸친 국악 명가 후손이다. 특히 어머니인 명창 장월중선 선생이 못다 이룬 꿈을 이번에 선생이 결실을 맺게 되어 그 기쁨이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선생은 단아하고 맑은 용모와 더불어 아직도 젊은 소리를 잃지 않았다. “이 자리를 장월중선 선생님께서 받으셔야 했는데, 감사하다. 어머님과 선생님(박송희)의 공이 나에게까지 내려와 그 뜻이 하늘에 닿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팔순에 가깝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판소리 공연을 했고, 좋은 소리들을 이어가기 위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로만 살아 왔는데, 말년에 이런 좋은 일이 있으니 감사하고 감사하다”며 감격의 소회를 밝혔다. 이런 경사에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도 마음을 모아 선생의 문화재인정 기념 공연을 준비했다. 갑자기 초청을 하였음에도 흔쾌히 응해주신 선생께 감사드리며 이달 25일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선생의 국가무형문화재 인정을 계기로 지역에서도 타고난 재주를 갈고 닦는 젊은 소리꾼들이 많아 졌으면 한다. 아니리·발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소리로 승부하는, 정면 도전 정신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작은 무대에 연연하지 않고 진득이 내공을 다지는 젊은이들이 보고 싶다. 명창 이명희 선생이 가고 없는 지금 우리 지역의 소리판이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다운 음악적 정체성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우리음악을 만들기 위해 멋진 소리꾼이 더 필요하다. 판소리 완창 무대도 더 많이 열렸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창극 무대도 꿈꾸어 본다. 이런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후배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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