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석실*
동천석실*
  • 승인 2020.08.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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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강

짊어진 고뇌 모두 풀고

하늘로 통하는 자리에 앉아

푸르게 단장한 세상을

멍하니 내려다보네

땅에서 끌어 올린 생각들

도르래 굴려 보지만

어부의 삶을 노래한 심상을

따라 갈 길이 없네

차바위에 퍼지는 향기

잿빛 구름도 머물고

멀리 보이는 부용동 숲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네

신선의 삶이 따로 없는

석실의 문을 열고

보이지 않는 님의 마음을 좇아

한없이 동천에 머물고 싶네

* 洞天石室 -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길도 산중턱 절벽 바위 위에 있는 한 칸 집의 조그만 정자.

◇김인강(金仁康)= 경북상주生(62),사람의 문학에 ‘맨발’ 외 4편 추천(06), 전 낙동강문학 편집위원장, 현 수성구문인협회 재무국장, 대구신문 名詩작품상 수상 ,시집 <느낌이 있는 삶>, <멸치를 따다> 등을 냄.

<해설> 시간을 짊어진 바람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호흡이 뜨거워지면, 사람들은 짊어진 고뇌의 이녘 바다에서 작별을 고한다. 여행은 절대 에누리 없는 선생, 자연으로 길을 내 그 흐름을 느끼고 싶어 하는 공간 이동이며, 일상성으로부터 잠시 누락을 부추기는 일탈이자 즐거운 유혹이다.

자연스런 변화는 거대한 시간과 흐름의 속성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무언가 변화하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오직 선택에 의한 해답만 있다. 잿빛 구름의 운행이나 계절의 흐름을 좇는 풀과 나무들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응하며 반복을 거듭하는 생, 이 순간 모든 것들은 다만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가끔 하늘로 통하는 자리에 앉아 잠시 그 흐름을 가까이서 마주한다.

푸르게 단장한 세상이 전해주는 단백함은 미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마저도 모호하다. 고통 없이 세월이 가는 건 어둠이 오지 않은 채 하루가 지나가는 느낌만큼이나 낯설고 생경하다. 밀물처럼 청춘을 흔들던 그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기억들은, 이제 보니 당장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으면서 자꾸 먼 날을 넘겨다보는 경솔함이었다. 삶에 대한 일이지만 마음에 저항을 불러오는 기억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삶을 노래하는 심상은 그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짙푸른 농도의 침묵으로 유유히 세상 바깥을 흐르고 있다.

인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의 연속이다. 오늘의 균열과 구멍을 살뜰히 점검하고 메꾸기에도 바쁜 일상이다. 아무리 일상이 흩뜨려져도, 매일 하던 습관적 일상이 무너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하자. 보람이나 의미는 다음에 부여하면 된다. 행낭을 더 간소하게 꾸려서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곤 하나 없는 텅 빈 충만함으로 일단은 너그럽게 살자.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 보다 더 나은 것이 중요하다. 순간을 있지도 않을 혹은 보이지도 않는 내일을 위한 담보로 희생시키거나 소모시키지 말고 일단은 행복하자.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빈자리를 견디는 것, 텅 빈 숲 조붓한 길에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면 우리 인생은 근사한 선택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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